유공자 친일 들추면 “명예훼손”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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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가 국회 보사위에 제출한 대외비 자료 일부를 언론이 보도하자, 친일파 논쟁에 뒤늦게 불이 붙었다. 보훈처는 지난 7월8일 국회 보사위에 제출한 자료에서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인사 중에서 친일행적 조사 대상자 8명의 명단을 밝혔다. 이 명단에 이름이 오른 인사는 李甲成 尹益善 金性洙 徐 椿 李鍾郁 李殷相 尹致暎 全 協이다. 이들은 민자당 朴柱千의원이 말한 그대로 “우리가 교과서에서 훌륭하고 존경받는 인물로 배워온 분들”이어서 명예훼손 여부로 국회 보사위 여야 의원들 간에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7월 9일 열린 보사위에서 姜三載 康祐赫 박주천 등 여당 의원들은 “친일 행위는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 딱지는 곧 사형선고이다”라면서 보훈처가 객관적 근거도 없이 명단을 작성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의 金炳牛 李海瓚 의원 등은 “문민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과거를 청산해야 하며, 독립유공자 중에서 친일 행위자를 가려내는 것은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보훈처를 두둔하고 나섰다.

 결국 오후에 속개한 회의에서 李炳台 보훈처장은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명단이 보도됨으로써 당사자나 후손에 본의 아니게 누를 끼쳤다. 미숙한 업무 처리에 대해 사과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보훈처는 명단을 작성하면서 《시사저널》 제174호 ‘친일파가 애국자 심사’ 기사와 《친일파2》 《친일문학론》 《친일논설선집》 등 출판물에 거명됐던 인물 가운데서 임의로 뽑았다고 한다. 보훈처의 자체 검증은 빠진 것이다.

94년까지 독립유공자 전면 재심사

 이 날 보사위 여야 의원이 주고받은 치열한 공방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독립유공자 중에서 친일파를 솎아내는 작업은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문제와 개인의 명예훼손 문제가 함께 걸려 있어 당분간 뜨거운 논쟁을 계속할 듯하다. 게다가 보훈처가 광복 50주년이 되기 전 독립유공자를 재심사할 계획을 추진중이어서, 친일 혐의가 제대로 밝혀지건 용두사미로 끝나건 친일 논쟁은 앞으로 더욱 거세어질 전망이다.

 지난 5월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중에 친일파가 있다는 여론의 지적에 따라 ‘국가독립유공자 중 친일행위로 인한 자격 재심사 추진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따르면, 보훈처는 일제시대 신문 등 간행물과 국내외 자료를 샅샅이 뒤져 올해 안에 독립유공자 중 친일행위자 명단을 만들 예정이다. 그리고 94년 1/4분기에 친일 혐의자 또는 그 후손에게 소명 기회를 주고 2/4분기에는 사학계·친일관계 연구자·언론계·문화계·공무원 등으로 ‘독립유공자 재심사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재심사위원회는 친일 관계 자료의 객관성과 소명 자료의 타당성, 서훈 치탈(박탈) 결정 등을 심의한다. 보훈처는 전면적인 재심사가 처음인 만큼 치탈 결정자를 처리한 관련 법령도 개정해야 한다.

 이번에 언론에 공개된 8명의 명단은 이런 와중에서 불거져나온 것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자꾸 국회에서 명단을 요구하니까 급히 만들어 제출한 자료”라고 해명했다. 아직 보훈처 내부 자료에 불과한데, 언론이 보도함으로써 괜한 시비에 말려들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8명은 모두 재야 사학자 고 林(임)鍾(종)國(국)씨가 생전에 여러 글에서 친일 행적을 밝혀낸 인물들로, 선항일후친일 또는 반대로 선친일후항일 등 친일 양태는 다르지만 경력만큼은 분명하게 확인된다.

이갑성, 상해에서 밀정 노릇

 이갑성은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사람이고 광복후 초대 광복회장을 역임했지만, 그 전에 상해에서 이와모토라는 창씨명으로 밀정 노릇을 했다.(임정 서무국장 임읭택저 《증언서》). 윤익선은 지금의 동장에 해당하는 서울 苑西町總代와 京城府 北部町會總代會 간사를 지냈다. 언론 분야 항일 공적으로 대통령장을 받은 김성수는 총력연맹 이사를 역임했고 조선임전보국단에 관계하면서 학병에 참여하라고 권유했다는 기록이 있다. 2·8 독립선언을 주도했던 서 춘은 선항일후친일의 경우인데, 임전보국단 평의원과 <매일신보> 주필을 지낼 때 불교계 친일에 앞장 섰다. 이은상은 친일 신문 <만선일보>에 재직했고, 윤치영은 미영타도 좌담회에 참석해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전 협은 일진회 평의장을 지냈으며, 일진회 회장 이용구의 추천을 받아 부평군수를 지냈다.

 한편 반민족문제연구소(소장 金奉雨)는 보훈처의 친일 혐의자 명단이 언론에 보도되자 즉각 추가 명단을 발표했다(표 참조). 보훈처의 방침에는 환영하지만, 이번에 알려진 자료는 수준 미달이라는 얘기이다. 하기는 이미 80년 당시 독립유공자 중에 41명이 가짜로 밝혀진 적이 있다. 당시 국보위는 독립유공자 등에 자격이 없는 사람이 많다는 진정서를 접수해 정밀 조사할 결과 41명이 가짜 또는 친일파임이 드러나서 연금지급을 중단했다. 그러나 후손들이 강력하게 반발해 2개월 만에 ‘없었던 일’로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연금지급 중단자 41명 명단에 이번에 문제가 된 8명이 모두 포함됐는지는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이해찬 의원은 7월9일 보사위에서 “연금지급 중단자 명단을 요청했는데 왜 가져오지 않느냐”고 따졌다. 답변에 나선 보훈처 李千雨 기획관리실장은 처음에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공개하기 어렵다”고 했다가 이의원이 거듭 요구하자 “이미 폐기했다”고 번복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훈처의 폐기문서 기록대장에는 연금지급 중단 자료가 포함된 것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의원을 비롯한 몇몇 친일파 연구자들은 이를 두고 과연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중에서 친일파를 완전하게 가려낼 수 있는지 의심한다.

 가령 임정 활동으로 80년 국민장을 받은 金羲善의 경우 정부 공식 기록마저 서로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보훈처 《공훈록》 제5권 543~544쪽에는 분명히 김희선의 항일 행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공훈록 제5권 562쪽에 보면 대통령장을 받은 盧伯麟의 항일 행적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에 김희선에 관한 내용이 있다. “…1922년 1월에는 독립운동 선상에서 변심한 김희선과 소련 정부로부터 수령한 독립운동 자금을 공산 계열의 조직을 위하여 사용한 이동휘 김 립 등을 성토하는 임시정부 포고 제1호를 국무총리 대리 김규식, 내무총장 이동녕, 교통총장 손정도 등 각료와 함께 서명하여 발표하였다….” 노백린 공적에는 분명히 ‘변심한 김희선’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같은 책 김희선 공적에는 항일 행적만 적혀 있는 것이다. 《사이토(조선 총독) 문서》에 따르면, 김희선은 일제의 투항 공작에 넘어갔으며 이후 사이토 총독을 세 번이나 접촉했다.

 이처럼 친일 행적이 명백한 사람들이 독립 유공자로 선정된 배경은 역대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에 친일파가 참여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시사저널》 제174호 ‘친일파가 애국자 심사’ 참조). 이번에 친일 혐의자로 논란이 된 이갑성·이은상도 각각 63년과 77년에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었다. 독립운동가를 친일파가 뽑아온 셈이다. 내년 중순에 구성할 보훈처 ‘독립유공자 재심사위원회’의 인선에 관련 학계가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친일파가 애국자를 뽑아왔으니, 이번에는 친일파 연구가들이 독립유공자로 위장한 친일 혐의자를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반민특위 해체후 처음으로 친일 논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吳民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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