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검찰 TK, 날개가 없다
  • 김상현 기자 ()
  • 승인 199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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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내 고검장 탄생 어려워 ‘최악의 침체기’…경기·서울고 시대 올 듯

특정 학연이나 지연에 따른 검찰 내부의 불공정 인사에 대해 일선 검사들이 느끼는 문제 의식의 수위는 매우 높다. 이는 대검이 지난 6월5~19일 전체 8백86명인 검사를 3개 조로 나누어 ‘문민시대 하에서 검찰의 자세와 역할’이라는 주제로 실시한 연찬회에서 경력 10년 미만 소장 검사들이 제기한 다음과 같은 건의에서도 잘 드러난다. “검찰권 독립과 공정한 수사를 위해서는 먼저 지연과 학연과 학맥에 얽매여 온 검찰인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같은 소장 검사들의 의견과 관련해, 검찰권의 독립이 결정적인 침해를 받은 것은 90년 11월 검찰 인사 때부터라고 주장하는 유인물이 최근 언론에 유포됐다. 출처를 알수 없는 ‘통키타’라는 제목의 이 유인물에는 90년 11월 총장 퇴임 1개월여를 앞두고 전격 단행한 인사에서 ‘李鍾南 당시 법무부장관이 박철언씨의 입김에 의해 대구·경북 출신 중심으로 인사를 단행했고, 그때부터 검찰이 기득권 보호에 앞장서 왔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유인물의 제목 ‘통키타’는, 검찰 요직을 대구·경북 출신이 독식하자 한 간부가 지방으로 전보되면서 “통키타나 치시오”라고 말한 데 나온 것으로, 이 유인물에서는 대구·경북 출신을 그렇게 부른다.

 ‘통키타’는 대구·경북 인맥과 대극점에서는 분파나 검찰내 특정 집단이 행한 또 다른 집단이기주의의 표현일 수 있다. 특정 인사에 대한 인신 공격, 감정이 섞인 조악한 표현 등은 그러한 혐의를 더욱 짙게 한다. 그런데도 ‘통키타’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검찰의 위상을 실추시킨 예를 적시하면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한 새 정부의 ‘진정한 개혁’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90년 11월 이루어진 고등검찰관 1백73명에 대한 전보인사 결과는 ‘통키타’의 주장이 전적으로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시 인사에서 요직으로 꼽히는 서울지검 형사1부장·공안1부장·특수1부장·강력부장·대검 중앙수사부 1과장 등이 모두 경북고·서울법대 출신에게 돌아간 것이다. 이 자리들은 ‘이를 차지한 고등검찰관들은 최소한 검사장으로 승진할 때까지는 동기생 가운데 선두를 달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뭇 고등검찰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온 노른자위이다. 사시 9회를 제치고 11회 출신 검사가 8회 후임으로 임명된 데서 보이듯 검찰의 오랜 인사 관행이 무시된 데다, 대구·경북 출신의 독무대가 돼버린 당시 인사 조처에 대해 검사들이 보인 불만과 반발은 위험수위에 가까웠다. 일부 검사들은 집단 사의를 표명할 움직임까지 보이기도 했다.

 검찰 인사에서 대구·경북 출신을 우대한다는 논란은 5·6공을 거치는 동안 한번도 끊이지 않은 고질병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통키타’의 주장처럼 새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그들의 전성시대는 계속되고 있는가.

검사장급 이상 36명 중 TK는 3명뿐
 사법시험 2회 출신인 鄭城鎭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52)은 공직자 재산 공개 파문으로 지난 3월29일 옷을 벗기 전까지 대검중수 1·2과장, 서울지검 특수3부장, 대구검사장 등을 거치면서 뛰어난 자질을 인정받아온 수사통이었다. 당시 차관급 공무원 재산 공개 때 그가 신고한 규모는 62억원. 재산 공개 대상자 1백25명 중 가장 덩지가 컸다. 본인은 “부동산의 대부분은 지난 87년 작고한 장모 김복희씨(徐民濠 전 의원의 부인)가 포목상·임대업을 해 모든 재산을 물려준 것일뿐 투기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의 호된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정성진 중수부장과 崔信錫 대검 강력부장 두 ‘아까운 인물’이 사표를 내는 선에서 검찰의 재산 공개 파문은 가라앉았지만, 이와 관련한 뒷말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특히 이른바 ‘대구·경북 인맥’의 핵심으로 승승장구하던 정중수부장의 경우 정치적 희생양이었다는 평가가 무성했다. 상속받은 재산이 많다는 사실말고는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비위 사실이 없는데도 끝내 옷을 벗은 것은 그가 대구·경북 인맥의 핵심이기 때문이라는 관측이었다.

 정성진 중수부장의 퇴진은 지난 5월 全在琪 전 법무연수원장(54)이 슬롯 머신 사건과 관련해 사표를 낸 일과 함께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고시 16회인 전재기씨는 경북고가 아닌 경북대 사대부고 출신이지만 검찰내 핵심 대구·경북 인사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다른 어떤 조직보다 인맥 관계가 중시되는 검찰의 특성을 감안할 때, 검찰 수뇌부의 두 대구·경북 핵심 인사가 중도하차한 사건은 검찰내 대구·경북 세력의 퇴조를 증명하는 사례로 꼽힐 만하다.

 검찰에 대한 새 정부의 개혁 의지를 보여준 첫 리트머스 시험지는 지난 3월15일 단행된 검찰 수뇌부에 대한 인사였지만, 이 인사는 새 검찰상 정립과 조직 분위기 쇄신이라는 기대에 못미치는 것으로 평가됐다. 그 뒤 재산공개파문·슬롯 머신 사건 등으로 검찰 물갈이론과 체질 개선론이 제기됐을 때에도 검찰의 낡은 껍질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통키타’가 주장하는 ‘TK 세력 온존론’을 살펴보기 전에 검찰의 직급 구조와 계급 특성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검찰은 다른 조직과 뚜렷이 구별되는 몇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상명하복 관계가 철저하고, 고시 횟수에 따른 서열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이같은 검찰의 남다른 특성에서 정작 문제가 되는 학연·지연에 따른 끈끈하고 완강한 인맥이다. 그가 어디 출신이고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느냐가 승진과 보직에서 결정적 인자로 작용한다. 그에 비해 대학은 그리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검사의 절대 다수가 서울법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검사의 직급은 검찰총장·고등검사장·검사장·고등검찰관·검찰관 5개로 나뉜다. 이중 장관과 차관의 중간쯤 되는 고등검사장 보직은 대검 차장과 법무연수원장을 비롯해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고등검찰청 검사장 등 모두 7개이다. 그 아래 검사장은 전국 12개 일선 지검장을 포함해 5개 실·국장, 대검의 7개 부장, 4개 고검의 차장검사 등 31명이다. 검사장의 최고 보직으로는 서울지검장 자리가 꼽힌다. 차장검사는 일반 기관의 부장·차장과 달리 부검찰총장·부검사장처럼 단위 기관의 부기관장이라는 뜻이다.

 이 유인물에서 언급한 검사장급 이상 고위 ‘통키타’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朴鍾喆 검찰총장(56·고시 15회) 全在琪 전 법무연수원장(54·고시 16회) 鄭京植 대검 송판공무부장(56·사시 1회) 정성진 전 대검 중수부장, 金相洙 법무부 기획관리실장(51·사시 6회). 이 유인물에 따르더라도 현직에 있는 검사장급 이상의 검찰 고위 간부 36명(표 참조)가운데 대구·경북 인맥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사는 3명밖에 안된다.

 유인물에 실린 박총장 관련 내용은 이렇다. ‘TK의 대부이며 박철언의 절대적 도움을 받던 사람이 어떻게 총장이 될 수 있었는지 YS 인사의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다. 더욱이 재산 공개 때 용인군 일대 임야에 투기한 혐의가 있었고 강남에 빌딩 터까지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검찰 총수가 임야를 사면 되고 검사장이 사면 투기가 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유인물은 검찰의 총수가 대구·경북 인맥의 대부라는 점에 무게 중심을 실은 것 같다. 하지만 ‘통키타’의 주장과 달리 검찰에서 차지하는 대구·경북 인맥의 위상은 새 정부들어 크게 위축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부산·경남고 출신 ‘신주류’형성
 그것은 앞으로 2~3년 사이에 검찰의 수뇌부를 이룰 기수(사시3~7회)에 경북고 출신이 전혀 없다는 사실로부터 어렵잖게 유추할 수 있다. 경북고 출신 중 기대주로 꼽히는 朴舜用(8회) 姜 濯(8회) 姜信旭(9회) 朴珠煥(10회) 李明載(11회) 金慶漢(11회) 諸葛隆佑(11회) 白三基(11회) 씨가 고등검사장급 이상 직급으로 승진하자면 현실적으로 7~10년의 기간이 더 필요한 것이다. ‘검찰 내에서 앞으로 10년 간은 경북고 세력이 최악의 침체기를 맞을지 모른다’는 대구·경북 인맥 내부의 우려는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경기·서울고 출신이 검찰 수뇌부의 중추를 이룰 가능성이 더 높다. 金有厚 서울고검장(52) 文鍾洙 인천지검장(52) 池昌權 대구지검장(52)이 검찰 수뇌부에 포진한 경기고 출신들은 사시 11회에 동문이 많은 경북고와 대조적으로 8회 출신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다. 검찰에 재직중인 8회 출신 15명 가운데 安剛民 申鉉武 崔慶元 柳在成씨 등 4명이 경기고 출신이다.

 한편 김영삼 대통령과 연고가 짙은 ‘신주류’ 부산·경남고 출신인 金承鎬(9회) 韓光洙(10회) 崔炳國(11회) 尹東民(12회) 金永珍(14회) 黃善泰(15회) 씨도 앞으로 주목해야 할 유망주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찰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김대통령이 사정을 이끌어갈 중추로 감사원을 내세운 것이다. 김대통령의 이러한 선택은 검찰에 대한 정부의 낮은 신뢰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검찰의 자기 개혁에는 학연·지연·학맥 등에 따라 변칙·파행으로 얼룩져온 인사 문제를 개선하는 일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金相顯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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