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활동 감시하자” 움직임 확산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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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노동위 의원 ‘질의 속기록’책자 펴내…여성계 등에서도 정책성향 분석

“말씀하시는 장관이나 배석하신 관계공무원이 졸고 있지를 않나… 여기가 국회입니다. 국회의 질문에 대해 관계공무원이 답변준비를 위해 나와 졸고 앉아 있어서야 노동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겠습니까.” 제146회 임시국회 노동위에서 李海瓚 의원이 출석한 權英喆 노동부장관과 정부측 인사들을 다그친 말이다.

만일 국회 의정활동이 국민에게 고스란히 비쳐져 국민이 직접 선량들을 감시하고 그 성적을 매길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국민들은 13대 국회 초기 텔레비전으로 중계됐던 청문회를 통해 짧게나마 이런 경험을 한바 있다.

최근 한국노총이 이와 비슷한 감시수단으로 제13대 국회 노동위소속 의원들의 질의 속기록을 모아 ≪선량들, 어떻게 발언했나≫라는 책자로 펴내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제145회 임시국회(89년 2월20일~4우러7일)이후 3당합당ㆍ날치기파동ㆍ국회장기공전으로 이어진 제150회 임시국회(90년 6월21~7월12일)에 이르기지 4번 개최됐던 노동위에서 오갔던 여야의원들의 국회속기록을 옮겨싣고 있다. 물론 중복되거나 현안과 동떨어진 내용 부분은 제외되었다. 특히 노동위에 소속됐다가 다른 상임위로 옮긴 의원을 포함한 전ㆍ현 소속의원 24명의 상임위 출석성적까지 계산해내 흥미롭다. 이 책은 적어도 노동문제에 관한한 어느 의원이 얼마만큼 성실한 자세로, 어떤 관점으로 어떤 발언을 했는지 평가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된다. 노총의 李光煥(52) 정치국장은 “노동조합의 직접적인 정치참여가 배제되고 있는 현상황에서 노동위 의원들의 활동은 1천만 노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전제한 뒤 “다음 선거에서 어떤 후보를 지지할지 판단하기 위해선 13대 국회 노동위소속 의원의 활동을 먼저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 책자를 펴낸 배경을 설명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金東仁 柳昇珪 盧仁煥(이상 민자당) 의원과 평민당 이해찬 의원이 1백%의 상임위 출석률을 보였다. 그러나 노총 관계자들은 “출석률과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이 자료에 나타난 의원들의 발언을 보면 소속 정당에 따라 성향이 정반대이고 그 수준도 각양각색이다. 노조인정 여부, 산업재해나 근로시간 단축 등을 둘러싸고 구체적인 근거법률을 들이대며 따지는 전문가다운 의원이 있는 가 하면, 구체적인 내용없이 “노사분규에 대해 당국은 보다 철저한 대책을 세워라”는 식의 알맹이 없는 질의만 되풀이하는 의원도 있다.

당초 노총에서는 ‘노동자적인 관점에서’ 각 의원들에 대한 활동평점까지 매길 예정이었다. 노총 자문교수들의 자문을 얻어 일관성 성실성 전문성 노조공감도 등의 기준아래 각 의원의 ‘노조에 대한 지지도’를 A급부터 F급까지 6등급으로 매길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총측은 “평가는 1차적으로 모든 노조간부와 조합원에게 맡기기로 한다”는 이유를 들며 당초 계획을 후퇴시켜 발언내용만 그대로 수록했다. 그러나 평가 보류의 진짜 속사정은 노총 전국위원장을 지낸 민자당의 ㄱ의원 등 몇몇 노조 출신의원의 점수가 너무 낮게 나올 것 같아서였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노총 관계자들이 비공식으로 인정하는 ‘우수의원’은 이른바 ‘노동위트리오’로 불려온 盧武鉉(민주) 李相洙 이해찬(평민)의원. 이들은 서울지하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언론노련 등의 노조와 관련된 민감한 노동현안에 대해 자료제시와 함께 강도 높은 발언으로 활약해 노동자의 우군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듯하다.

‘건전한 압력’은 필요하다
노총은 내년 총선 이전까지 노동문제와 관련된 상임위인 재무위와 경과위 등의 속기록도 발췌해 펴낼 예정이다.

선량들의 언행을 감시하고 건전한 압력을 가하려는 이같은 시도는 다른 분야에서도 잇따라 나타날 조짐이다. 지난 89년 국회의 가족법 개정안 처리과정에서 여성단체연합 등 여성계는 국회의원들에게 “이번에 개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여성표를 얻을 생각말라”며 ‘조용한 압력’을 행사한 데 이어, 의원들의 대여성 관련 발언과 그들의 정책성향을 분석하려하고 있다. 또 공해추방운동연합은 환경문제에 관한 의원들의 발언을 한데 모을 계획을 갖고 있다.

서강대 박호성 교수는 “의정활동을 유권자에게 직접 전달해주는 텔레비전 생중계 등의 전용매체가 발달된 외국과는 달리 한국 선량들의 의정활동은 제대로 아려지지 않고 있다” 면서 “이런 점에서 의원들이 노동이나 주택문제 등 주요 문제에 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시민들이 지자제선거 공정감시에 팔소매를 걷어부치고, 이익집단들이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합법적인 외압’을 행사하려한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민주화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익단체의 압력단체화라는 부정적인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민이 정치의 주인’으로 제자리를 찾는 과정의 하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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