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제 논쟁’ 소화불량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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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부의 비중립성, ‘시민의 모임’ 주장 모두 문제 많아

소비자들은 약효도 없는 소화제를 복용해온 것인가. 지난 2월6일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약효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사용을 금지한 11개 약품성분이 국내에서 아무런 규제없이 소화제에 함유된 채 판매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각 일간지들은 ‘미국서 금지된 약품 국내사용’ ‘약효없는 성분 소화제에 사용’등이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는 일반인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판크레온 에프정(영진약품) 비오자임(동아제약) 아진탈(일양약품) 제스탄(종근당) 등 유명회사 제품명이 실려 있었다. 해당 제약회사는 물론 그동안 이를 복용해온 소비자들도 잔뜩 긴장할 만한 기사였다.

제약회사들은 반박자료를 들고나왔고, 보사부는 일간지 독자투고란을 통해 ‘시민의 모임’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문제는 그동안 소비자들이 복용해온 소화제가 정말로 약효가 없는가 하는 점이다.

제약협회는 “이번에 ‘시민의 모임’이 문제를 제기한 판크레아틴 등 11개 성분을 가지고 있는 약품의 경우, 미국의 일반상점에서 구입할 수 없을 뿐 병원이나 약국에서는 의사의처방에 따라 약사가 취급할 수 있다”라는 요지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보사부 약품안정과 李永泰씨는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의 독자투고란을 통해 “시민의 모임이 발표한 내용에 대한 기사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의약체계를 잘 몰라 발생한 오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번에 미국에서 사용이 금지된 것은 일반상점에서 취급하는 비처방의약품이지 의사나 약사가 취급하는 처방의약품에서는 여전히 해당 성분을 포함한 소화제가 약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의 모임’이 발표한 내용 중에 “약효가 입증되지 않은”이라는 표현은 “미 FDA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체들이 약효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서”라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약효는 있는데 자료가 제출되지 않아 공산품 품목에서 제외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보사부의 태도에도 문제는 있다. ‘시민의 모임’ 宋實炅 부회장은 “만약 약효가 있다면 보사부가 국내의 제약업체에 약효를 입증할 만한 자료의 제출을 요청할 일이지 확실한 내용이 밝혀지기도 전에 제약업체를 두둔하고 나선 것은 국민의 편에서야 할 보사부의 태도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시민단체와 보사부의 뿌리깊은 불신
그러나 ‘시민의 모임’의 발표가 각 일간지에 보도되면서 판크레아틴 등 11개 성분이 약효가 없는 것처럼 소비자들에게 비쳐진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비처방의약품과 처방의약품의 구분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에게 국내에서 판매되는 소화제가 ‘밀가루로 만든 약’처럼 잘못 인식된 면도 없지 않은 것이다. 보사부의 제약협회는 ‘시민의 모임’이 아무런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보도자료를 흘려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의 모임’측은 그동안 보사부가 보여준 태도 때문에 협의를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발표하게 되었다고 반박한다. ‘시민의 모임’ 文恩淑씨는 보사부의 무성의한 태도의 대표적 사례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발암성 기형성 쇼크사망 등 인체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는 다이피론 성분이 포함된 약품이 국내에서 버젓이 팔리는 것에 대해 ‘시민의 모임’이 세차례에 걸쳐 시정을 요구했는데 보사부는 ‘광고만 금지하는’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사부가 강력한 조처를 취하기보다는 “제약업체를 싸고도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시민의 모임’이 소화제의 약효문제를 단독으로 들고나왔다는 것이다.

보사부와 시민단체의 공방전은 뿌리깊은 상호불신에서 시작된 것이다. ‘건수’ 하나 잡았다는 듯이 ‘시민의 모임’을 물고늘어지는 보사부의 태도는 중립성을 벗어난 것이지만, ‘시민의 모임’이 우리 약품 유통구조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외국의 자료를 그대로 발표해 소비자를 혼란에 빠뜨린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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