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굴이 그 얼굴” 선거 분위기 냉랭
  • 인천ㆍ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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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주민 관심 적고 친구간 경합…전국적 현상

“동네 머슴 뽑는데 여당 야당이 무슨 상관입니까.”
3월11일 인천시 북구청 선거관리위원회에 마련된 북구甲의회의원 후보자 등록소에서 후보등록을 마치고 나온 ㅂ씨(50ㆍ사업)의 말이다. “새마을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이곳 토박이다. 인천시내 구의원 출마예정자의 30%가 그의 친구이고, 북구에서만도 26명의 친구가 후보로 나섰단다.

이렇듯 출마자들이 여야를 가리기 전에 서로 친구거나 선후배 사이인 탓 등으로 현지 선거 분위기는 의외로 가라앉아 있다. 이런 현상이 인천북갑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정당주변 이외에는 선거 분위기가 냉랭하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것은 ‘기습 선거’탓도 있다. 인천북갑의 ㅎ후보(48)는 “아직 선전벽보도 만들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할 정도여서 선거활동을 사전에 제한한다는 불평도 나오고 있다. 이곳 주민 김봉옥(52)씨는 “어떤 후보가 어떤 후보인지 알수 없는 판에 누구에게 표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부평이라는 지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인천 북구에는 인천시 전체 인구의 3분의 1 정도인 65만명이 살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부평을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고층아파트 밀집지역과 달동네가 있는가 하면 홍등가도 있고, 공단과 상업지역이 공존하는 동시에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도 적지 않다.

구의회의원 45명을 뽑는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다른 정치적 특성을 갖고 있다. 여야의 선거 전략지인 인천ㆍ경기지역의 ‘정치 풍향계’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는 특정 정당을 지지 또는 반대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림으로써 후보자의 실질적인 ‘정당표시’가 가능하게 돼, 이 지역의 정치바람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후보등록 마감 하루 전인 12일 현재까지 선거과열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이곳의 선거전은 인천ㆍ경기내 어느 지역보다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인천지역의 경우 예상 후보의 70~80% 정도가 새마을협의회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 관변조직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친여 성향의 인사거나, 재력을 바탕으로 한 지역유지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부평도 예외는 아니다. 민자당 북구갑 지구당(위원장 鄭貞薰 의원)의 金永先 사무국장은 “당 차원에서 지원할 입장이 못된다”고 밝히면서 여권성향 후보의 ‘풍년’ 사태를 푸념했다. 예를 들어 4명이 친여권 후보가 나왔을 경우 어느 한 특정인만 지원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자당의 한 지구당에선 예상후보들에게 동협의회운영위원 임명장을 주는 등 이미 여권의 은밀한 선거활동이 진행중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야권의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인천지역의 평민ㆍ민주ㆍ민중당ㆍ재야 등 이른바 범야권은 지난 1월31일 광역의회의원 선거에 야권 단일후보를 내기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이번 기초의회의원선거에서 범야권은 연대 추천을 위한 구체적인 선거전략을 아직까지 마련하지 못해 단일후보 추천은 사실상 무산된 형편이다. 더구나 민중당과 재야의 국민연합 인천본부는 아예 선거에 불참하기로 방침을 정한 탓에 기존의 지역조직을 바탕으로 한 평민당만이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평민당 인천시지부의 金太淳 대외 협력위원장은 “현수막이나 포스터에 특정 정당의 정책을 표시하는 등으로 지지정당을 간접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데도 그것마저 꺼리는 후보들이 많다”고 말한다. 정당을 업고 출마하려 애썼던 종전의 선거양상과 많이 달라진 것이다.

YMCA YWCA 경실련 홍사단 인천노총 등의 인천지역 산하조직이 공정선거감시단체협의회를 구성 불법선거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별 효험이 없어 보인다. 선거관리위원회의 불법선거 단속활동에도 한계가 있다. 북구갑 부평1동의 경우 후보 한명이 사용할 수 있는 선전벽보는 1백10매, 선거공보는 1만4백30매, 소형인쇄물은 1만9천매에 달한다. 그런데 북구갑 12개 동의 불법선거를 감시하는 선관위의 전체 인원은 구위원7명과 투표구위원 3백60명, 구청에서 단기파견된 요원 12명 등 3백79명으로 한 동에 31.6명꼴이다. 이 인원으로는 홍보물 업무만 맡는데도 벅차 애당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선거사무원의 수당도 마찬가지. 선거법상 사무장의 경우 하루에 교통비ㆍ식비까지 합해 3만5천원, 사무원은 3만2천원으로 규정돼 이다. 그러나 사무원에게 5만원 이상 주지 않으면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불합리한 선거법이 불법ㆍ타락선거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작은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인천북갑과 같은 현상은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전국적으로 엇비슷한 듯하다. 그러나 대구와 전남지역만은 후보등록 초반부터 낮은 등록률을 보이는 등 특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두 지역은 정치색깔이 뚜렷해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 어떤 양상을 띨지 궁금하다. 그 결과에 따라 기존 정당의 지역편중성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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