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맛여행 코스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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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등 산나물 제철…서울엔 강원음식점 지점도

도시에 부는 바람도 상큼한 봄냄새가 묻어난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을 헤치고 싹터 자라는 먹거리들도 우리에게 봄을 실감케 한다. 시멘트빌딩을 잠시 뒤로 하고 봄맛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그러나 정작 갈 만한 곳은 흔치 않다. 유명한 곳이라 하여 어쩌다 찾아가면 기다리기가 일쑤이고, 한끼를 먹어도 옛맛은 장사맛으로 둔갑한 경우가 허다하다. 아직도 제맛을 간직하고 있는 곳을 찾아 발걸음 가볍게 맛의 여행을 떠나보자.

강화의 메밀국수와 인천의조개탕
서울에서 교문동을 거쳐 덕소ㆍ양수리를 지나 양평으로 가면 왼쪽으로는 물이 오른 산자락이 펼쳐지고 오른쪽으로는 시원하게 펼쳐진 팔당저수지를 볼 수 있어 봄나들이의 흥이 절로 난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입구의 종합시설단지에 있는 ‘중앙식당’은 산채백반으로 유명하다. 서울의 상봉터미널에서 이곳까지 하루 4차례 직행버스가 다닌다. 3월중 맛볼 수 있는 나물은 냉이무침 취나물 다래순 원추리 등 10가지. 푸짐한 봄나물 잔치이다. 주인 李玉女(51)씨는 4월중순이 되면 모시대나물과 메나지싹나물도 상에 오른다고 알려준다. 산채 이외에 버섯찌개도 별미이다. 느타리버섯에 넙죽넙죽 썰어놓은 두부와 풋고추가 어울린 버섯찌개는 민물매운탕을 연상시킬 정도로 얼큰하다. 산채백반과 버섯찌개 각 4천원.

강화도로 떠나 메밀국수를 맛보면 어떨까. 강화의 명승고적지로 알려진 초지진에서 황산도 방면으로 3백m쯤 가면 왼편 바닷가에 ‘대선정’이 나타난다. 순 메밀로 만든 손칼국수인 칼싹두기가 이곳의 명물. 텁텁한 맛이 잃어버린 우리의 옛맛을 느끼게 한다. 또 시래기(우거지)를 넣고 지은 보리밥을 양념자에 비벼먹는 시래기밥도 강화만의 독특한 별미이다. 시래기밥과 메밀칼싹두기 각 3천원.

바닷바람을 쐬고 싶으면 훌쩍 인천을 찾아가 봄직하다. 맛이 한창인 조개에서 ‘봄조개 가을낙지’라는 말이 실감난다. 지난해 가을 인천시 남구 동막에서 송도로 옮긴 ‘동막횟집’ 주인 金順女(53)씨는 “동막에 가서 허탕을 친 사람들이 물어물어 찾아 온다”면서 “아마도 까무락탕 맛을 못잊어서 그런가보다”고 한다. 까무락은 껍데기가 가무잡잡하게 윤이 나는 조개로 서울사람이 흔히 모시조개라고 부르는 것이다. 움파와 풋고추만으로 간하여 후르르 끓여내는데 조개국물이 그지없이 담백하고 시원하다. 까무락탕 소6천원, 중1만원, 대1만5천원. 승용차로 가면 경인고속도로 끝에서 송도쪽으로 가다가 무선국을 1백m쯤 지나 유원지 방향으로 가서 좌회전하면 간판이 보인다. 전철을 타고 동인천에서 내려 시내버스 6ㆍ9ㆍ16번을 타고 무선국에서 내려도 된다.

남양주군에서 최근 수원으로 옮긴 ‘강변멧돼지’집은 스태미나식으로 권할 만하다. 15년간 멧돼지 숯불구이만 전문으로 취급해 왔다는 張基(54)씨는 “살짝 구워 부드럽고 연하다”면서 손님의 식성에 따라 양념이 가능하다고 한다. 1인분 7천원. 수원시내에 진입하여 법원 사거리로 나와 좌회전한뒤 조금 가다보면 이정표가 보인다.

유서깊은 남한산성은 도시인의 손때가 묻어 있는 듯이 여겨지지만 주위경관이 수려하여 등산겸하여 찾아가볼 만하다. 음식은 사먹기보다는 주변경관을 반참삼아 도시락 정도로 가볍게 해결하는 게 상책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한산성 한복판에 위치한 ‘백제장’은 모처럼 야유회를 겸한 단체여행으로 다소 무리를 할 의향이 있는 경우 적당한 곳이다. 산채백반 전문집이다. 1인분 8천원(불고기를 더하면 1만원).

봄맛으론 그래도 나물이 제일이다. 온실 재배로 제철 맛을 잃고 있어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강원도 깊숙한 곳에서 성가를 떨친 음식점이 서울에 지점을 내고 산나물을 직송, 바쁜 도시인을 즐겁게 한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둔내터널을 지나 강원도 평창군 하진부로 2㎞쯤 들어가면 국내 최고의 산채백반집 ‘부일식당’이 나타난다. 식도락가라면 누구나 추천하는 이곳에서는 아직 산골의 겨울이 깊어 산나물로 봄맛을 내기는 어렵다. 주인 朴正子(52)씨는 “강원도 보은 5월초가 돼야 옵니다. 그때까지는 정선에서 사온 달래로 봄맛을 꾸어다 전합니다.”라고 말한다. 아직은 지난해 오대산 계방산 함병산에서 자생했던 각종 산나물로 장식된 식탁이지만 5월이 되면 신선초 모시대 곰취나물이 합세하여 산나물의 진수성찬이 된다고 설명한다. “싸두룩한 곰취를 비롯해 산나물을 구수한 된장에 생쌈으로 먹는 맛이 제일입니다.” 박씨는 또 나물은 촉촉해야 맛있다는 지론아래 들기름으로 넉넉하게 버무리고 팍팍 찧은 참깨를 넣어만든다고 살짝 비결을 가르쳐준다. 산채백반 1인분에 3천5백원.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잇는 ‘진부식당’은 박씨의 올케가 경영하는 집이다.

강릉의 대표적 토속음식점인 ‘옛날집’은 강릉 명물 초당두부를 필두로 해서 오대산에서 나느 산채백반으로 이름을 얻고 있다. 4천5백원짜리 백반에는 잘 익은 김장배추를 송송 썰어 넣고 깨소금과 참기름이 들어간 메밀묵이 상에 오른다. 솜씨를 전수받은 딸이 서울 강남에서 ‘옛날집’을 경영한다.

열ㆍ연기만으로 구운 고기와 생선
경기도 광주읍에서 이천으로 향해 곤지암 쪽 6㎞ 우측 국도변에 있는 ‘로즈가든’은 훈연제 바비큐 전문집이다. 새로운 미각을 즐길수 있는 이 음식점은 팝송이 흐르는 등 분위기가 다소 이국적이다. 주인 李俊熙씨는 도예가로서 손수 제작한 훈제용가마에서 열과 연기만으로 고기와 생선을 구워낸다. 4년째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吳貞一(21)씨는 “고기의 종류에 따라 떡갈나무 참나무 등 다른 장작을 때고, 소스도 여러 종류여서 30여가지의 향을 즐길수 있다”고 설명한다. 바비큐모듬의 겅우 오리고기 목살 소시지 안심 갈비 등 7가지 이상의 훈제품에 샐러드와 커피가 따르는데, 2명이 먹을 수 있는 1인분에 1만6천원이다. 개별오리 6천~7천원선. 오리 반마리 1만원. 밥대신 소면도 팔고 있지만 이곳 음식은 식사보다는 술안주용으로 좋을 듯하다.

봄은 맛깔스런 음식에 묻어온다. 싱그러운 바람과 햇살 속에서 다시 찾아온 봄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도 ‘맛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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