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빠진 타이어 합작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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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미쉐린 4년만에 결별 불평등 계약부터가 잘못

 우성과 미쉐린이 ‘이혼’한다. 합작관계를 깨고 갈라서기로 한 것이다. 관계당국의 법적 절차가 진행돼야 ‘결별드라마’의 최종회가 상영되겠지만 일단 양측은 이달말로 합작관계를 끝내기로 지난달 16일 합의를 보았다. 이달말로 기술제휴협정의 시효가 끝나 경남 양산공장은 가동이 중단된다. 우성산업과 프랑스의 다국적기업 미쉐린사가 결혼해 낳은 자식인 미쉐린코리아타이어(MKT)사의 양육권은 우성이 갖게 된다. 우성과 미쉐린은 지난 87년 1월 50대 50의 투자로 자본금 4백30억원의 MKT사를 설립했다.

 지난 2일 결별한다는 소식에 접한 MKT사의 한국인 직원들은 “부모가 이혼하면 자식들만 불쌍하다”는 말로 심경을 토로했다. 우성그룹 崔主鎬 회장이 “실직은 없다. 프랑스의 특수관계인만이 나갈 뿐 회사와 임직원은 그대로 존속한다”고 밝혀지만 어수선한 분위기다.

 우성과 미쉐린이 ‘이혼’을 합의한 것은 지난 1월 미국 알래스카에서 양측 관계자가 만났을 때였다. 여기서 양측은 갈라선다는데는 합의했으나 MKT사의 처리, 출자금처리 등 세부사항의 조정에 실패, 지난달 16일 프랑스 미쉐린본부에서 다시 만났다. 이 모임에서 합작파기협약서가 전격적으로 작성됐다. 우성은 합작을 깨는 조건으로 미쉐린의 출자지분(2백15억원)을 웃도는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은 국내 타이어업계에 파문을 몰고왔다. 갈라선 사연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우성그룹 기획조정실 조계현 상무는 “생산 및 판매정책에 관한 양측의 의견이 크게 다르고 기술이전에 인색한데도 기술도입료(매출액의 3%)를 지급해야 하는 부담등 문제가 많아 프랑스 미쉐린측과 협의, 미쉐린의 주식지분을 인수하게 됐다”고 밝혔다. 우성은 1백% 미쉐린 상표가 붙는 MKT사 생산 타이어의 10% 남짓만을 국내시장에서 판매했고, 단일제품만 생산해 일방적으로 불리했다고 주장한다. MKT사는 쏘나타 승용차에 장착되는 185/70/14타이어만을 생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쉐린본부는 “현지 법인 공장은 단일제품 생산”이 경영방침임을 거듭 못박았다는 것이다. 우성은 타이어디자인?믹싱 등 핵심기술 이전에 미쉐린측이 매우 소극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 모두 “손해봤다”주장
 미쉐린은 우성에 주장에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제품단일화 및 판매비율은 합작계약 당시의 약속이라 불평할 사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MKT사 클로드 용 부사장은 “우성은 주주와 국내총판이라는 두가지 입장을 갖고 있다. 주주로서의 불만은 없다고 본다. 후자의 경우 자신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다 보니 불만이 누적된 것 같다”고 진단한다. 또 양사간 경영기법의 차이가 갈수록 커져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웠다고 말한다.

 MKT사의 프랑스쪽 관계자들은 기술이전이 안됐다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한다. 우성에서 나온 “4년의 합작기간 동안 축적한 기술을 기반으로 독자적 경영을 하겠다”는 내용의 발표문(3월8일)을 근거로 든다. 또 양산공장 종업원 9백32명중 22명이 미쉐린 본부에서 파견한 엔지니어들인데 이들이 기술을 전수하고 있고, 본부출장비로 공무부장 등 2백15명의 한국인 기술자가 프랑스에서 기술연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적자에 대해서는 타이어회사가 적정규모라고 판단되는 연산 5백만본(올해 4백20만본 계획)의 시설을 갖추려면 시설투자비용만 1억5천만달러가 들고 5년 정도는 적자일 수밖에 없는데 이제 겨우 4년 경과한 상태에서 적자 운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합작관계를 깬 후 양측은 모두 “손해봤다”고 말한다. 우성은 “제대로 기술이전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기술도입료를 줘왔고 지금도 적자상태라 이익난 게 없으나 98%나 되는 한국인 근로자의 일자리를 앗을 수 없어 구제하기로 했다”고 주장한다. 미쉐린의 응수도 만만찮다. 그동안 기술도입료로 5백만달러를 받았으나 기술을 이전한 대가로는 미흡하며 임직원 머리속에 든 노하우를 걷어갈 수는 없어 결국 많은 이익을 우성에 주고 가는 셈이라고 주장한다.

 결별 후 우성은 래디얼타이어(승용차용타이어) 부문에 역점을 두고 연차적으로 공장을 증설해 타이어를 그룹의 주력업종으로 키워갈 계획이다.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와의 기술제휴도 검토하고 있다. 아직은 MKT사를 이름만 바꿔 존속시킬지, 아니면 우성산업 타이어사업본부에 흡수?합병시킬지는 결정나지 않았다. 미쉐린도 합작생산기지를 잃게 되는 것이지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은 아니다. 판매회사를 세워 수입타이어로 한국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힌다. 현재 미쉐린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12%(미쉐린은 15%라고 주장)이다.

외국기업의 ‘본사 이익 우선’ 간파 못해
 양측의 관계가 법적으로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자산재평가 작업이 시작도 안된 상태여서 청산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양측은 감정기관의 선정을 싸고 매우 날카롭다. 실사대상 자산의 예상평가액은 1천3백억원 정도이나 최근 2~3년간 공장을 증설하면서 부채가 늘어나 양사에 돌아갈 몫은 출자액을 밑돌 것으로 추정된다.

 미쉐린사는 세계1위의 타이어 제조업체다. 매출액이 89년 1백8억달러(약 7조8천억원), 90년 1백20억달러(약 8조6천억원)나 되는 거대기업이다. 이 회사는 1백59개국에 현지판매망(해외판매비율 80%)을 갖고 있으며 17개국에 현지법인이 있다. 미쉐린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철수한 다국적기업으로는 영국의 브리티시 페트롤리옴 개스 퍼시픽(88년), 스위스의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89년), 홍콩의 훼어차일드 세미콘닥터(90년) 등이 있다.

 이번 사건은 우리 기업의 어리숙한 경영 자세를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신출귀몰하는 외국 기업의 경영전략은 철저하게 본부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합작계약 당시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내용을 간과했다. 미쉐린은 값을 치르기는 하지만 기계와 기술자료를 모두 회수해간다. 프랑스 대사관의 까롱 상무관은 “미쉐린은 한국시장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로 말했다. 다국적기업의 본질을 시사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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