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사고’인가 ‘고의방류인가’
  • 글. 정기수 기자 사진. 최종학 기자 ()
  • 승인 199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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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페놀오염, 두산전자에 궁극적 책임 있으나 정확한 원인 밝혀야

 대구시민들이 클로로페놀로 오염된 물을 마시기 약 40시간 전인 지난 14일 밤 10경. 대구시에서 낙동강을 따라 50km가량 거슬러 오르면 닿는 경북 구미시 구포동 구미제2공단의 두산전자 지하 원료공급라인에서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이지고 있었다

 원료저장탱크에서 수지제조공장(믹싱룸)으로 연결된 30여m길이의 파이프 가운데 이음새 한 개가 파열, 고압에 의해 공급되고 있던 페놀원액이 걷잡을 수 없는 양으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직원들은 지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끔찍한 사태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료탱크에서 보낸 페놀의 양과 믹싱룸에서 받는 양에 차이가 많아지자 비로소 생산라인에 비상이 걸렸다. 사고가 난 지 8시간만인 15일 아침 6시경 유출지점을 확인한 직원들은 그때서야 지하라인 사용을 중지하고 원료공급 통로를 지상에 설치된 파이프로 바꿨다.

 8시간 동안 쏟아져나온 페놀원액은 약 30톤. 밤새 얼마나 많은 페놀이 흘러나왔는지 하수구로 다 못나가고 공장 바깥 축대의 균열방지용 구멍으로도 새나와, 길바닥이 개울을 이룬 흔적이 22일 비기 내리기 전까지 남아 있었다. 6쪽 윗 시진에 나타난, 누수흔적이 있는 첫 번째 축대구멍에서 5m쯤 직선을 그은 위치가 바로 지하 파이프의 파열지점이다. 콘크리트 뚜껑을 열어 보니 파이프 아래 배수구 안에는 낙동강으로 흘러가고 남은 페놀이 얼음덩어리처럼 가득 차 있었다(7쪽 사진 참조). 페놀은 섭씨 40도 이하에서는 굳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원료의 공급라인이 땅속에 설치된 까닭에 대해 두산전자의 설비담당자들은 84년 공장 설립 당시 “미관상 좋지 않다”는 설계자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한다. 안전보다 미관에 우선한 설계, 이것이 첫번째 두산의 잘못이다.

 두산이 이러한 문제점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파이프의 이상 유무에 대한 점검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후 증설분부터 지상으로 올렸다. 하지만 지하매설분을 철거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사고가 발생한 날도 지상라인을 쓰다 파이프의 어느 지점에서 원료가 한방울씩 떨어지는 누수현상을 발견하고 지하라인으로 교체한 것인데 이것이 더 큰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땅속의 상태를 자동으로 점검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새나간 유해물질이 바깥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차선의 설비라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파이프를 설치하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통로(7쪽 사진 참조)는 빗물 및 공장의 오수가 나가는 배수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두번째로 지적되는 잘못이다.

 배수구를 통해 빠져나간 30여톤의 페놀액은 인근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오수가 합해져 흐르는 하수도를 따라 옥계천에 도달했다. 8쪽 위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하수구가 페놀이 옥계천으로 흘러간 곳인데 이는 구미시가 제2공단내에 건설한 하수도의 끝부분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하구수나 그 옆에 있는 다른 공장들이 쓰는 둥근 하수관을 보여 주면서 “이것이 문제의 비밀배출구”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15일 0시. 수자원공사가 밝힌 낙동강의 유속인 시속 약 2km를 대입하면 옥계천을 지나간 페놀원액의 선두는 구미공단 금성사 앞에 있는 낙동강 본류와 만났을 시간이다. 이 속도로 추정할 때 페놀은 두산전자 직원들이 사고를 발견한 아침 6시까지 왜관에도 미치지 못해 대구 다사수원지까지는 아직 30km 이상이 남아 있고 16시간 가량의 여유가 있었다. 낙동강물이 구미에서 대구까지 가는 데는 하루 정도가 걸린다.

 두산은 이 대목에서 가장 큰 잘못을 저질렀다. 유출사고를 관계기관에 즉각 통보하지 않은 것이다. “페놀이 유출됐다. 취수를 중단하라”고 다사수원지를 비롯한 낙동강 수계 각 취수장에 즉시 연락만 해주었더라면 대구시민들이 그처럼 고통과 피해를 받지 않아도 됐고 마산 부산 등 영남지역 1천만 주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페놀은 드디어 15일 밤부터 16일 아침까지 대구 근교 다사수원지와 낙동강수원지의 취수장으로 빨려들어갔다. 페놀은 원수 검사항목에 들어 있지 않아 함유사실이 발견되지 않은 채 살균제인 염소와 화학반응, 송수관 속에서 악취가 훨씬 심한 클로로페놀로 변해 대구시내 각 가정으로 보내기지 시작했다. 보사부 음용수 수질기준에 따라 수원지의 페놀검사는 취수장에서 하지 않고 정수장에서만 한달에 한번씩 하도록 돼 있다(허용치 0.005PPM). 이같은 제도적 문제점을 간과한 사람들에 의해 규정대로 일할 뿐인 하급공무원들이 호된 매를 맞았다.

 토요일인 16일 오후 2시10분경, 대구시 상수도본부에서 첫 항의전화가 걸려왔다. 달서구 송현동에 사는 주부가 “병원에서 나는 크레졸 냄새 같기도 하고 화장실 냄새 같기도 한 악취가 수돗물에서 난다”고 신고한 것이다. 고약한 냄새는 대구시내 전역으로 확산됐다. 잠시만 맡아도 머리가 아프고 복통에 설사까지 하는가 하면 분유를 물에 타먹는 갓난아이의 온몸에서 열꽃이 피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 식수비상이 걸렸다.

 대구시는 곧 수질관계 교수들로부터 사태의 원인이 페놀에 의한 오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따라서 염소 대신 이산화염소로 정수해야 한다는 처리방법을 자문받고 이를 수원지에 알렸다. 수원지와 시는 이에 따라 16일 오후 5시30분쯤 이미 취수?정수된 물과 시내 송수관 속의 물을 모두 빼내는 한편 새로 취수한 물부터 이산화염소로 소독하기 시작했다. 다사수원지 관계자들은 “악취가 난다는 제보에 따라 무조건 염소부터 더 많이 들이부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산화염소의 값은 1kg당 3천8백65원(연간 약품값 2백억원)으로 염소보다 10배 정도 비싸 수원지에서는 비상용으로만 보관하고 있다. 고급 소독약을 사용하고 페놀보다 더한 유해물질을 상시 검출해낼 수 있는 고도의 정수처리시설과 장비, 거기에 전문인력까지 갖추려면 현재 톤당 2백원(서울시 기준)밖에 안되는 수도요금으로는 어림없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아울러 보여주었다.

 페놀은 지난 3월 23일 한국과학기술원 전무식 교수가 盧泰愚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얘기했듯이 그 자체는 크게 유해한 물질이 아니고 휘발성이어서 오존처리 등으로 간단히 처치할 수 있다. 이것이 염소와 결합해 클로로페놀로 변함으로써 악취가 나고 유독물질이 되는 것이므로 염소를 주 소독제로 쓰는 우리 수원지 실정에서 반드시 취수단계에서 페놀성분이 검출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낙동강 페놀오염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30톤이라는 많은 양의 원액유출사고이다. 검찰도 이점은 인정하고 있다. 자연정화가 될 수 없을 만큼 일시에 다량의 페놀이 수원지에 유입되어 염소와 결합함으로써 수돗몰 파동이 일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분노는 여기에 있지 않고 두산전자가 폐수를 몰래 버렸다고 하는 ‘고의방류’에 있다. 사태는 악화돼 두산그룹이 생산하는 모든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 분노는 물론 검찰의 수사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언론의 대서특필도 얼마간 그것을 부채질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구지검 백오현 검사가 밝힌 두산전자의 페놀방류 혐의사실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 두산전자에서 발생하는 폐수의 양은 하루 평균 9.5톤이다. △ 이 폐수는 ‘페놀이 섞인 폐수’라는 뜻이다. △ 페놀원액은 83%만 제품화하고 나머지 17%는 폐수가 된다. △ 두산전자는 이 폐수를 그동안 두대의 자체 폐수소각기에서 처리해왔다. △ 그러나 지난해 10월 소각기 한대가 고장나자 이를 고치지 않고 나머지 한대만 가동해왔다. △ 고장난 시기는 10월 언제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 한대만 가동된 소각기의 처리능력은 시간당 3백50kg이다. △ 따라서 24시간 계속 가동한다면 하루에 8.4톤을 처리할 수 있다. △ 그래도 하루 폐수발생량 9.5톤보다 1.1톤 모자란다. △ 더구나 소각기 작업일지에 나타난 일일 평균 작업시간은 24시간에 못미친다. △ 그러므로 두산전자의 하루 폐수방류량은 {하루 폐수발생량 - (하루 소각기 작업시간 × 시간당 소각기 처리량)}의 공식에 의해 산출된다. △ 이같은 방법으로 소각기 한대가 고장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5개월여 동안 두산전자가 무단방류한 폐수량을 계산하면 하루 평균 1.7톤, 총 3백25톤이다. △ 두산전자는 이 폐수를 비밀배출구를 통해 버려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은 강물의 자연 정화력에 의해 페놀성분이 희석됐기 때문이다.

 우선 ‘페놀폐수’는 어떻게 발생하는 것이며 그 성분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라디오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 내부를 보면 누런 장판색의 회로판이 있다. 여기에는 다이오드 등 작은 부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가는 선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이 회로판을 인쇄회로기판(PCB ? Printed Circuit Board)이라고 한다.

 두산전자는 바로 이 PCB의 원판, 즉 회로도를 인쇄하고 구멍을 뚫는 등 가공과정을 거치기전의 ‘원단’을 만드는 회사다. 구미공장은 이중에서 백상지에 페놀수지를 입혀 말린 다음 몇겹의 구리종이를 고온 ? 고압으로 얹힌(라미네이팅) 이른바 銅薄積層版을 생산하고 있다. ‘페놀폐수’는 이 페놀수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페놀수지는 페놀원액과 포르말린 용액, 메타놀 등을 믹싱룸(합성수지제조실)에서 혼합,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만든다. 포르말린은 굳는 성질 때문에 원료 유통과정에서부터 보관 및 믹싱룸에 공급되기 전까지 물에 탄 용액 상태로 있다. 용액에서 물이 차지하는 양은 약 63%, 이 물이 ‘페놀폐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시 말해 믹싱룸의 페놀수지 제조공정이란 포르말린 용액에서 물을 짜내(응축) 추출한 순수 포르말린과 페놀원액 등이 반응하도록 하는 것인데 짜낸 물(응축수)과 이 물에 섞인 약간량의 페놀, 포르말린 등이 곧 ‘페놀폐수’이다. 페놀을 사용해 회로기판을 제조하는 업체들은 폐수 중 90% 이상이 물이고 3% 정도가 페놀, 나머지는 포르말린 등 기타 유기물질이라고 말한다. 공장에서는 이 폐수를 ‘폐액’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검찰은 ‘페놀이 섞인 폐수’라고 표현한 반면 언론은 ‘페놀폐수’라고 이름지었다.

 검찰이 밝힌 두산전자의 하루 평균 폐수무단방류량 1.7톤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 가운데 3%인 페놀의 양은 51kg. 14일 밤 유출사고로 단 8시간만에 쏟아진 원액 30톤은 하루 평균 페놀무단방류의 6백배나 되는 양이다.

 요컨대 낙동강 페놀오염의 결정적 원인은 유출사고임이 분명한데, “검찰과 언론이 고의적인 폐수방류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혐의내용 또한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두산전자쪽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죄를 진 마당에 참 미묘한 입장이다”라고 전제하는 두산전자 설비담당 간부의 항변은 이렇다. “‘소각기 고장’은 ‘소각기 운전중단’을 오해한 것이고, 소각기 처리능력도 실제보다 낮게 허가된 환경처의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에 차이가 난 것이며, 비밀배출구야말로 폐액집수탱크와 빗물 하수도가 같이 연결되도록 설치된 바람에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공장 사원들은 ‘고장난’ 1호기는 폐수를 소각로에 보내는 가압분사펌프에서 미량의 누수현상이 발생해 일시 가동을 중단한채 2호기만 돌렸던 것이고, 2호기의 실제 최대처리능력은 시간당 4백kg(하루 9.6톤)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폐액집수탱크를 제때 완벽하게 점검하지 않았을 경우 소각기로 보내지기 전에 일부가 넘쳐 하수구를 통해 빠져나갔을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다.

 두산전자와 동종업체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신성기업의 한 간부는 “철저한 단속도 좋지만 이러다 묻닫겠다”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하루 폐수발생량을 2시간만에 처리하는 6억원짜리 소각기가 작동하는 장면을 같이 확인했으면서도 조사가 끝나지 않고 있다. 소각기 연료로 드는 벙커C유 값은 한달에 기껏해야 50만원이다. 없는 비밀배출구를 뒤지다 못찾으니까 빗물이 고여 있는 하수구의 물을 속에서 휘저어 떠갔다.”

 낙동강을 포함한 4대강이 썩어가고 온 산하가 오염되고 있는데 대한 책임을 첫번째로 물어야 할 곳은 물론 기업이다. 정부가 그 두번째쯤 되고 국민도 아마 그 뒷자리에 서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 오염사건은 우리 모두가 최고의 환경교육을 받은 기회가 됐지만 특정 소수를 속죄양으로 삼은 ‘국토오염에 대한 카타르시스의 장’으로 변질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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