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한 사람이 ‘바바리’입는다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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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林淑子 교수의 ‘의복심리학’ 강의 인기

 “지성적인 여성이 되려면 지성적인 옷차림을 하세요. 물론 유혹당하고 싶을 때도 있고, ‘접근금지’라고 표시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요. 그럴 때는 어떤 옷차림이어야 할까요.”

 강당의 7백50석을 꽉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라 보조의자까지 동원한 가운데 이화여대 학생들이 수업에 몰입해 있다. 최신 패션잡지에서 방금 걸어나온 듯한 세련된 옷차림의 숙녀도 있고, 아직 두꺼운 코트를 벗지 못한 신입생도 있다. 林淑子(49?가정대학 의류직물학)교수가 강의하는 ‘의생활과 환경’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전교생이 들을 수 있는 교양과목으로 무려 8백64명이 수강하고 있다. 임교수의 이 강의는 71년 교양선택과목으로 개설된 이래 4,5년 전부터 수강생이 크게 증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대에서 가장 큰 강의실인 법정대학 강당에서 진행되고 있다. 3월 둘째 주 강의의 요지는, 의복의 기능은 장식적 기능뿐만 아니라 심리적 보호기능까지 포함하며, 후자의 기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젊음이 최고의 매력이지만 옷으로 그 매력을 더욱 가꾸고자 하는 여대생들. 앞으로 패션산업의 소비자가 될 여대생들을 상대로 한 임교수의 강의는 가끔 파격적인 방법으로 진행된다.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면서 앞자리에 앉은 학생에게 “요즘에는 실연당하면 어떻게 하니”하고 묻는다. 기습적으로 질문을 받은 학생이 멈칫거리자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거든다. “머리카락을 잘라요.” “마구먹어요.” 원하는 답이 아닌 듯 임교수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실연당한 남성은 어떤 옷을 입는가하고 질문을 바꾼다. 그러자 “바바리를 입어요”라는 합창이 나온다. “어떻게 입니?” “깃을 세워요.” “손은?” “주머니에 넣어요.”

 고함치듯 대답하는 학생들에게 “바로 그겁니다” 하고 되받은 임교수는, 남성은 실연당했을  때 심리적 허탈감을 다독거리기 위해 ‘바바리’를 입는다고 말한다. 초라한 자신을 외부의 환경과 차단하고 싶어 바바리를 입고 깃을 세우며 손마저 주머니에 넣어 감춘다는 설명이다.

입은 옷에 따라 상대편의 ‘대접’ 달라져
 의상심리학이 학문으로 처음 정립된 곳은 미국이다. 미국에서 발표된 ‘의복 착용을 통해 본 인간행동의 연구’에 따르면, 기숙사생활을 하는 미국 대학생 가운데 향수병에 걸린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의복을 한두 가지 더 껴입는다고 한다. 임교수는 이것이 의복의 ‘심리적 보호기능’을 설명하는 예라고 말한다.

 의복은 성 연령 소속 성격 가치관 기분 지위 등을 나타낸다.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주변인의 대접이 달라진다는 이론을 사회로의 진출이나 결혼을 앞둔 숙녀들에겐 절실한 ‘실천학문’이다. “4학년들, 남자친구가 있으면 점심 약속 때 한번 실험해보세요. 하얀 정장차림에 하이힐 신고 핸드백을 들었을 때와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끌면서 나갔을 때 대접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 .” 청바지차림으로 나가면 남자친구는 분식집으로 들어가지만 정장차림이면 ‘양손을 쓰는 집’으로 데려간다는 설명에 학생들은 “맞다"면서 까르르 웃는다. 게다가 임교수가 ”자주 실험하지 말고 ‘내가 이런 면도 있다’는 것을 보여줘 남자친구를 잡았다, 놨다 하라는 뜻“이라고 사족을 붙이자 강의실은 폭소로 떠나갈 것 같다.

 그러자 임교수는 기다렸다는 듯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는다. “제발 플레어 스커트에 레이스가 달린 파티복을 입고 학교에 나타나지 말아요.” 임교수는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는 ‘절충적인 의복’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면서 “눈에 띄지 않는 정장이 무난하다”고 충고한다. 수업이 끝난 후 핸드백에 넣어 둔 화사한 스카프를 목에 두르는 것만으로도 ‘화려한 외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임교수는 올바른 의생활의 정착을 위해 대학생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불어넣는 데 역점을 둔다. 최근 패션산업은 하이패션 쪽으로 치중된 채 지나치게 고가품 위주로 기울었고, 이것이 유통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와 얽혀 패션산업의 문제점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패션감각을 돈으로 사려드는 일부 여성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이 한 몫을 거들었음을 물론이다. “패션산업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의복에 대한 소비자의 올바른 의식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미래 패션산업의 소비자로서 제 몫을 다해야 합니다.”

“의복은 지배당해선 안된다”
 임교수는 미래의 소비자인 학생들을 올바른 소비자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매 학기마다 과제물을 내주는 ‘바람직한 의복발표회’가 그것이다. “지난해에는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림 중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스타일과 가장 우습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을 사진으로 발표하게 했어요. 어떤 학생은 잘못된 사례로 자신을 찍는데 본인의 차림이 멋져서 찍는 것으로 착각하고 여러 각도로 자세를 취해줬다더군요.” 또 어떤 학생은 같은 옷차림에 대한 여러 반응을 조사해 발표했는데, 한 학생이 “멋있다”고 평가내린 옷차림을 어느 할아버지는 “미쳤군, 미쳤어”했다고 한다. 이러한 발표회는 의복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교정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임교수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재미있고 유용하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후배의 권유로 수강신청을 했다는 朴惠令(21?법학)양은 “매일 옷을 입으면서도 미처 몰랐던 것을 수업을 통해 깨닫기 때문에 재미있고 보람도 있다”고 말한다. 徐喜滎(22?식품영양학)양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월20만원 정도를 용돈으로 쓰는데 의상비로 5~6만원을 지출한다”면서 “앞으로 옷을 살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임교수의 강의는 다른 대학까지 널리 알려진 명강의라고 서양은 전한다.

 의류학강의는 사회심리학적 기능에 이어 의복의 신체적 기능, 패션산업 및 의복관리로 마무리 된다. 임교수는 자신의 강의가 인기있는 이유를 “학생들이 듣도 싶었던 것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발랄해야 할 캠퍼스 분위가기 최근 들어 복고풍 유행색조의 학생들 옷차림 때문에 칙칙해져 안타깝다는 임교수는 “의복에 지배당하지 말고 그것을 도구로 이용할 때 내면의 향기도 자연스레 배어나올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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