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재벌공화국에 살고 있는가
  •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199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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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가 민주주의라면 ‘재벌의,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정치를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까. 그런 변칙적 사회, 그런 부도덕한 체제가 오늘의 문명시대에 존재할 수 있고 뿌리내릴 수 있을까.

 나는 우리가 아직 그런 ‘재벌공화국’에 살고 있다고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이 나라가 재벌 공화국으로 전락하리라고 보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어느 재벌기업이 독극물을 낙동강에 흘려보내 수백만 대구시민의 식수마저 위협하고 오염된 수돗물을 마신 시민들 가운데 두통 구토 복통 피부병을 앓는 환자가 속출하고, 심지어 임신 3개월의 여인이 심한 구토와 하혈로 임신중절 수술까지 받았다는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를 보고, 또한 몇몇 가해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의외로 미지근하고, 정부 또한 몇몇 하위 공무원만 구속할 뿐, 이 어마어마한  사태에 정치적 책임을 질 사람이 단 1명도 없다는 것을 보고, 이러다가는 혹시 ‘재벌의,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공화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수돗물 오염파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89년에도 있었고 작년에도 있었다. 대통령이 수돗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바도 있다.

돈버는 데는 수단 방법 안가리는 심리상태
 그러나 정부는 안심하고 수돗물을 마실 수 있게 하는 정치를 게을리했고 국민의 기본생존권을 보호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번 두산전자의 경우 작년 11월 페놀소각기 2대 중 1대가 고장났는데도 경비가 아까워 고치지 않고 3백25톤의 페놀을 그냥 방류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작년 한해 동안 8백25억원의 매출과 30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대기업인데. 한달에 5백만원의 경비절약을 위해 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얼마나 안이하고 방자하고 파렴치한 반사회적 행위인가. 돈을 버는 데는 수단 방법을 안가리는 심리상태가 반영된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물론 ‘자본’이다. 자본의 속성은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상품을 생산하고 매매한다. 돈과 상인을 천하게 여기던 옛날과는 달리 자본주의사회에서‘돈을 번다’는 행위는 정당한 것이고, 따라서 무조건 탓할 것도 나무랄 것도 아니다. 한걸음 나아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개개인의 경제활동으로 개인의 부가 늘어날 뿐 아니라 사회의 부 또한 증대하므로 그것이 곧 사회의 행복을 가져온다는, 그러한 도덕적 타당성까지 지적할 수 있다. 애덤스미스가 미화한 고전자본주의의 기본이론이다. 열심히 일해서 머리를 써서 부호가 되고 부호가 많이 태어나면서 나라 전체 또한 부자가 된다. 단, 정직하게 벌어야 한다. 지난 30넌간의 사회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다수기업이 생겨났고 생산이 늘어났고 고용이 증대되었다. 시장경제체제의 활력이 성취한 눈부신 경제성장은 세계적인 주목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제 선진공업국 대열을 향해 발돋움 하고 있다.

 빛이 있으면, 그러나 그림자가 뒤따른다. 급속한 사회산업화로 말미암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부정부패의 만연, 사회적 갈등 등 헤아릴 수 없는 부작용이 우리 사회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사회적?경제적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와 기업의 정통성에 다수 국민이 승복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 만성적인 위기의 바탕이 있다. 급속한 한국 자본주의 성장과정에서 숱한 부호가 태어났다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리고 한국의 공업화와 국력신장에 재벌기업의 창의력과 진취적인 기상이 크게 기여한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들이 부를 축적한 과정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지극히 부정적이고, 따라서 이 나라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재벌에 대한 시선은 따갑고 심지어 적대적이다.

자본가들은 급진혁명론이 왜 고개를 드는지 알아야 한다.
 어느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의 축적방법에 대해서 44.8%가 부동산투기 등으로 불로소득으로 돈을 벌었다는 인식이고 권력과의 유착으로 축적한 것이라는 견해도 23%이고, 근로자 착취가 6.5%였다. 현실적으로 상위 5%의 소득계층이 전체 사유지의 무려 65.2%를 차지하고, 상위 10% 계층이 사유지 77%를 소유하고 있다. 또한 금융재산 41%가 상위 10%의 호주머니 속에 있다. 역대정권의 성장 제일주의에 입각한 세제상 특혜 등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날로 심해져 계층간의 위화감과 대립?반목은 경제성장과 반비례해서 커지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회불안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공산주의가 명백히 실패했고, 소련을 필두로 동유럽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대세인데도 자본주의경제의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한국에서 왜 좌파의 급진혁명론이 고개를 들고 진지하고 헌신적인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그 까닭을 이땅의 자본가들과 그들을 감싸고 있는 국가권력은 익히 알아야 한다.

 문제는 대기업이 좀더 정의로워져야 한다는 데 있다. 식수를 오염시켜가면서까지 돈 벌겠다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좀더 성실하고 근면하고 검약하는 가운데 개개인의 부가 축적되어야지, 은행돈 꾸어 부동산 사들이고 부동산값 올려 기업이윤을 극대화하는 그런 수법, 그것은 곧 모든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꺾고, 선의의 기업가들의 기업의욕을 빼앗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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