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 ‘얼굴’잡고 이문옥 특종 땄다
  • 김당 기자 ()
  • 승인 1991.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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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정신이 신뢰감 쌓아…윤석양 양심선언 등 제보 수두룩

 흔히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한겨레성 특종’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신문에서 말하는 특종(특종 기사)이란 일반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다른 언론 매체보다 한발 앞서 전달한 것일진대 거기에 ‘한겨레성’이라는 한정어가 붙은 것은 <한겨레신문> 또는 그 신문의 기자들이 지닌 두드러진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특종은 제보특종과 발굴·기획특종으로 나뉘지만 한겨레성 특종의 경우, 취재원의 자발적 도움과 제보에 의한 것과 기자들의 남다른 관심과 문제의식에 의한 것, 그리고 <한겨레신문> 편집의 차별성에 의한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그 어느 것에도 들지 않는 것도 있고 세가지 모두에 속하는 특종도 있을 것이다.

 특종상 1호로 기록된 ‘이근안 경감 안잡나 못잡나’(당시 민권사회부 문학진 기자·89년 1월6일자)라는 제목의 기사는 <한겨레신문> 기자의 문제의식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손꼽힌다. 그때만 해도 이근안이라는 이름만 알려져 있었을 뿐 누가 이근안인지, 즉 이름이 얼굴에 대입이 되지 않던 대였다. 그런데 대표적 고문 피해자인 김근태씨와 대화 도중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특종의 단서가 되었다. 당시 치안본부에 출입하던 문학진 기자는 김씨의 말에 착안하여 ‘재주껏’ 인사기록카드에 붙은 이씨의 증명사진을 빼내어 김씨에게 사진으로 대질한 결과 김씨로부터 “맞다”는 확인을 받게 되었다.

 ‘얼굴없는 고문 기술자’ 또는 ‘성명불상의 반달곰’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근안씨의 얼굴(사진)을 밝힌 이 기사는 당시 고문피해자들의 잇따른 폭로와 여론에 밀려 ‘고문 기술자’에 대한 수사착수를 선언하고서도 정작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검찰 수사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인권 분야의대표적 5공비리로 지목된 이 사건은 끝내 이씨가 잡히지 않은 채로 끝났지만 이 사건에 관련된 경찰관 4명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고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특종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서울시장 승용차 번호판 둔갑술 부려’라는 익살스런 폭로 기사(민권사회부 이상현 기자·88년 9월21일자)도 기자의 문제의식에서 얻은 특종이다. 당시 올림픽을 앞두고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해 ‘자가용 승용차 짝홀수 격일제 운행’을 주관하던 서울시의 정책이 시민의 불편함을 무시한 행정편의 위주의 발상이라는 데 ‘분개한’ 기자가 “이를 지키지 않는 정부 고위관리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예단’을 가지고 정부종합청사 등 주차장을 뒤진 것이 적중한 셈이다. 당시 서울시청 주차장을 뒤진 이상현 기자는 김용래시장의 외제 승용차가 번호판이 떼어진 채 주차중인 것을 발견, 시청 수위들과 자동차관리사업소에 차량번호를 확인한 결과 짝수와 홀수 번호판을 번갈아 바꿔달며 운행중인 것을 알고 이를 보도했는데 결국 시청 출입기자들은 ‘눈뜬 장님’으로 만든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기자를 기자단에 끼어주지 않는 시청 출입기자들을 ‘물 먹인’ 셈이었다.

“오늘은 한겨레에 무슨 기사 나오려나”
 <한겨레신문>의 존재 가치를 분명하게 확인해준 제보특종은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실태를 폭로한 기사였다. 30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하고 있는 한 감사관이 공직을 박탈당하고 구속될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그 사실을 제보할 만큼 믿을 만한 신문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한겨레신문>의 역량을 드러내준 의미있는 변화였다.

 90년 5월11일자 1면 머리기사로 실린 ‘23개 대기업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실태 업계로비에 밀려 감사 중단’ 기사(경제부 이봉수·이홍동 기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다음날에도 1면 머리기사로 이어진 ‘23개 재벌계열사 비업무용 부동산 43% 추정-감사원 보고서, 은행감독원 1.2%와 큰 차’라는 기사는 더 충격적이었다. “오늘은 <한겨레신문>에 무슨 기사가 나오려나” 하고 국민에게 기대감을 줄 만큼 그 뒤에도 줄줄이 이어진 이문옥 감사관 관련 머리가사들은 사실 보도가 나가기 두달 전부터 치밀하게 자료를 분석하고 현장을 확인해 이미 만들어놓은 ‘상품’이었다. 이봉수 기자는 이문옥 감사관이 제시한 자료 중 특정 재벌이 비업무용 부동산을 위장분산해놓은 ‘실태사례’를 확인하려고 동료 기자의 가족과 함께 용인자연농원으로 놀러가 용인군청에서 지적도를 떼어 보고 복덕방에서 지번을 확인한 결과 삼성 계열의 부동산 개발업체인 중앙개발, 그리고 삼성생명 고려병원 등의 임직원 명의로 위장분산된 비업무용 부동산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큰 특종이 처음 터졌을 때 <동아일보> 등 일부 신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부러 모른체하거나 애써 줄여 보도하는 자세를 보였다. 신생 신문에 ‘물 먹은’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다 이문옥씨가 구속돼 비로소 ‘사건’이 되자 보도를 하는 식이었다. 어쨌건 그 뒤로 다른 언론사 보도에 힘입어 이 사건은 국민의 알권리 논쟁으로 비화되는 등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학생들 ‘거사’ 정보 한겨레에만 제공
 윤석양 이병이 양심선언을 통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것도 대표적인 ‘한겨레성 특종’으로 꼽힌다. 지난해 10월5일자에 실린 1면 머리기사 ‘보안사, 민간인 1천3백명 사찰’과 사회면 머리기사 ‘보안사 권유로 프락치 활동’은 <한겨레신문>이 윤이병과 사전에 전화로 접촉,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와 장소제공 교섭을 한 뒤에 <국민일보> MBC 등 일부 언론사에 연락해 ‘모양’을 갖춘 양심선언과 기자회견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언론들도 사찰 대상자 명단 등을 크게 보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한겨레신문>은 바로 특별취재반(민권사회부 김종구 기자 등 5명)을 구성, 발굴특종을 캐내는 기동력을 발휘했다.

 특별취재반은 윤이병이 기자회견에서 “보안사가 정보수집을 위해 경영하고 있는 위장술집이 신림동 어디에 있다”고 한 발언에 착안했다. 취재반은 사회부 경찰취재팀의 협조로 동사무소를 통해 추적한 끝에 장교는 지배인으로, 사병은 웨이터로 근무하는 등 보안사 관계자들이 운영하는 위장카페 ‘모비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밖에도 취재반은 발행인·편집국장 등이 모두 군무원으로 있는, 보안사에서 경영하는 잡지사를 추적 보도해 “정치적 목적의 대민사찰과는 무관한 것이다”라고 발뺌하던 국방부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그후 국방부장관과 보안사령관이 경질되고 ‘악명’을 떨친 보안사는 기무사로 개편되었다.

 편집국 사정으로 특종상은 못 받았지만 기자의 전문성과 문제의식이 조화된 대표적 특종 중의 하나가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자 12명 발생’ 기사(생활환경부 안종주 기자·88년 7월22일)였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환경보건을 전공한 기자가 자신의 전문지식을 토대로 발로 뛰어 기획특종한 이 직업병 기사가 나가자 국회에 진상조사단이 구성되고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적절한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밖에도 ‘전화국 블랙박스 도청장치 의혹’ 기사(생활환경부 신동호 기자·89년 9월9일), ‘공무원에 합당정당성 홍보’ 기사(정치부 정세용 기자 등 5명·90년 2월13일), ‘안면도에 핵폐기물 영구 처분장’기사(생활환경부 이재혁 기자·90년 11월3일) 등도 모두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게 한 대표적 특종기사로 손꼽힌다.

 사진으로 특종상을 받은 것은 지난해 민자당사를 기습한 대학생들이 연행되는 모습을 극적으로 잡은 사진(사진부 이종찬 기자)과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한미연합사 앞에서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및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이는 장면을 잡은 사진이 있다. 이밖에도 다른 신문에서 볼 수 없는 특종사진을 <한겨레신문>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신문에 제보할 경우, ‘거사’의 비밀이 샐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제보자들이 <한겨레신문>에만 제보를 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제보가 많다는 것은 제보자가 그만큼 믿을 만한 신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니 이 신문의 크나큰 자산이 아닐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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