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고통 덜어줍니다
  • 여운연 경제부차장 ()
  • 승인 1991.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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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 개설…여성학 전공학자 주축

 성폭력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흔들리는 바늘에는 실을 꿸 수 없다’는 통념을 갖고 있다. 성폭력의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합리화시키는 잘못된 생각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꽉 잡혀 있는 바늘’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정확한 지적일 것 같다.

 피해는 엄청난데 속수무책으로 방치되고 있는 성폭력문제를 “이제 우리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일단의 여성그룹이 발벗고 나섰다. 13일 문을 여는 한국성폭력상담소(대표 崔永愛·서울시 서초동)는 ‘여성의 전화’에 이어 성폭력사건의 피해여성들을 돕는 두 번째 전문상담기관이다. 이 상담소는 그동안 적절한 도움을 받기는커녕 주변의 불신과 냉대 속에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성폭력 피해여성들을 위한 상담활동을 펼치게 된다.

상담전화 40%가 어린이성폭행문제 호소
 많은 범죄행위 가운데 특히 성폭력사건은 우리나라의 순결우위 가치관과 성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대부분 은폐되고 있다. 강간 추행 어린이성폭력 등 여성에 대한 성폭력사건 발생빈도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강간의 경우 경찰에 신고된 건수는 지난80년 이래 매년 5천여건에 달하지만 신고율은 2.2%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실제 강간 발생건수는 연간 25만건으로 추산되며 이중 24만5천건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재작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94%가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성폭력은 한국여성이 받는 스트레스의 첫 번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상담소 대표 최영애(40) 씨는 “성폭력은 이제 더 이상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들은 이를 ‘강건너 불보듯’하고 있지만 바로 그 자신의 아내나 딸 등 가장 밀접한 여성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성폭력상담소에서는 강간, 추행, 성적희롱, 음란전화 등 갖가지 성폭력과 그 위협으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피해자들이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또한 정신과 산부인과의사 등 의료진과 변호사 등 전문가와의 연결체계를 갖춰 직·간접적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전화상담을 하지만 필요한 경우 면접상담과, 내담자 모임으로 이루어지는 집단상담도 실시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체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비인간적이고 모욕적인 데다가 후유증도 엄청나다.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인 병리현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상당수의 피해자가 불면증 우울증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약물중독이 되거나 자해행동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직장상실 결혼기회차단 인간관계손상 행동장애 임신 성병감염 상해 등 피해 양태도 다양하다.

 흔히 강간미수나 추행, 성적 희롱 등은 피해가 미미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한 조사에 따르면 심한 추행의 피해자중 8.2%가 불면·우울증을 호소했고, 가벼운 추행 피해자의 45.5%가 일이나 공부에 지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반영하듯 성폭력상담소 개설 소식이 알려지자 개소식도 갖기 전에 매일 15건 이상의 상담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이들 전화중 40%가 어린이성폭행문제를 호소해 와 상담자들도 놀라고 있다.

 이번 성폭력상담소를 만든 구성원은 여성학전공 학자를 주축으로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대표 최씨와 상근총무 李美京 鄭康子씨 등이 모두 여성학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徐洸善(이화여대 대학원장) 趙馨(이화여대 사회학) 沈英姬(한양대 사회학) 교수 등이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법조계 인사로는 姜基遠 黃山城 辛基南 번호사, 의료계 명사로는 朴孃實(여의사회장) 朴錦子(산부인과) 鄭東哲(신경정신과) 박사 등이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상담소 관계자들은 상담사례를 토대로 연구작업을 벌여 성폭행에 대한 통념과 실제는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오후 5시 사이에 전화상담을 받고, 화·목요일에는 면접상담을 실시한다. (전화 522-104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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