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총재 ‘뜻대로’ 깃발 올린 신민당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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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단일지도체제…지역성 탈피 ‘모습’은 성공적 통합서명파 ‘조용히’반발…鄭大哲 의원 유인물 돌려

 신민주연합당(약칭 신민당) 창당일인 지난 4월9일,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에 마련된 통합전당대회장은 연두색 일색이었다. 평민당을 상징하던 노란색은 대회장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창당대회치고는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평민당만이 먼저 전당대회를 치러 당이름을 신민당으로 바꾼 뒤 재야의 가칭 신민주연합당 인사들이 신민당에 통합하는 절차를 밟았다.

 대회 시작 전 기자석에 유인물 한 장이 나돌았다. ‘전당대회 의장을 고사하는 이유’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온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의미의, 그리고 궁극적인 야권통합 전당대회가 아닐진대 그저 과도기적 단계로서 묵인하고 따를수는 있으나 적극적으로 전당대회 의장으로서 대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고사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이었다. 작성자란에는 ‘소위 통합추진파의 한사람으로서, 鄭大哲’이라고 쓰여있었다. 金大中 총재의 ‘배려’로 이날 통합전당대회의 의장을 맡게 돼 있던 정의원이 의장직을 ‘고사’하는 이유를 밝힌 글이었다.
 대회가 시작되었을 때 정의원은 연단 아래 대의원석에 앉아 있었다. 대회 진행중 당헌 추인 및 개정 절차에 이르렀을 대 정의원은 대의원석에서 일어나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만장일치를 알리는 2천9백여 대의원의 박수소리에 정의원의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정의원도 더이상 말이 없었다.

 평민당내 통합서명파의 한사람으로 ‘신민당 출범’ 소식을 접한 후 주위에 탈당의사가지 밝힌 바 있는 趙尹衡 국회부의장도 잠시 대회장에 모습을 보였다가 자리를 떴다. 역시 서명파로 거론된 원내·외 대의원들도 대부분 일찍 자리를 뜨거나 굳은 표정으로 대의원석을 지켰다.

 정의원의 전당대회 의장직 고사로 이날 의사봉은 전 평민당 부총재였던 洪英基 의원이 잡게 되었다. 대회 전날까지만 해도 홍의원은 신민당의 새 지도체제인 8인 최고의원 중 한사람으로 유력했다. 그러나 대회 당일 아침에 김총재로부터 최고위원 탈락을 통보받았고, 정대철 의원이 고사로 그가 의장직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의원석 일부에서는 “억지 춘향이가 표정관리를 잘한다”고 홍의원을 화제에 올리기도 했다.

김대중 총재 지지율 90% 밑돌아
 신민당 초대 총재로 선출된 김대중씨에 대한 지지율은 예상을 뒤엎고 90%를 밑돌았다. 이날 성원 보고된 대의원 숫자는 2천9백74명, 이중 2천4백75명만이 투표에 참가했고, 찬성 2천2백14표, 반대 2백49표, 무효 12표였다. 투표에 참가한 대의원 숫자를 기준해 89.5%의 지지율을 보인 셈이다. 전 평민당 당무위원 ㅎ씨는 실질적인 찬성률은 74.4%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성원보고된 대의원 2천9백74명 중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4백99명은 사실상 김총재에 대한 불신임으로 기권한 것이므로 이들 역시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개표의 진행을 맡았던 3선인 ㄱ의원은 전당대회가 끝난 뒤 사석에서 “투표함을 처음 열었을 때 반대표가 의외로 많이 쏟아져나와 순간 아찔했다”고 말했다.

 통합서명파의 은근한 반발, 총재 신임투표에서 드러난 이탈표 등에도 불구하고 신민당의 출범은 일단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전당대회장에서 벌어진 작은 파문들은 신민당의 앞날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신민당의 지도체제는 진통 끝에 총제-수석최고의원-최고위원제로 채택됐다. 이른바 단일집단지도체제다.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김총재와 李愚貞 수석최고위원은 여전히 지도체제에 대한 시각차를 좁히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지도체제의 성격을 묻는기자들의 질문에 이 수석은 머뭇거림 없이 “일종의 절충형 집단 지도체제”라고 답했다. 이수석의 대답에는 ‘집단’이라는 부분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러자 이수석의 바로 옆에 앉은 김총재는 빙그레 웃으면서 “단일집단지도체제”라고 말했다. 김총재는 ‘단일’이라는 말에 비중을 뒀다. 두사람의 의견이 엇갈리자 배서간 朴相千 대변인은 “당내 율사들에게 의견을 물어 보니 집단성 단일지도체제라고 했다. 집단성이라는 말은 최고의원에게 당무의 심의 ·의결권이 있기 때문이고, 단일지도체제라는 것은 총재의 권한을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김총재가 도 한마디 보탰다. “본질은 단일인데 집단성이 가미되어 있다는 말이다.”

 결국 신민당의 지도체제는 근본적으로 단일지도체제인 셈이다. 재야 입당파 ㅂ씨는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 “모든 것이 김총재 뜻대로 됐다”고 촌평하면서 “신민당과 평민당이 다른 것은 무엇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신민당은 오는 6월의 광역의회선거에서 첫 심판을 받는다. 14대 총선에서의 승리와 정권교체가 최종 목표지만 우선 넘어야 할 산은 광역의회선거이다. 신민당 통합전당대회가 성급하게 치러진 것도 이 때문이다.

 평민당은 지난해 12월29일 당9역을 바궜다. 실·국장급의 당직개편은 지난 1월12일 이루어졌다. 김총재의 당초 복안은 이 체제로 기초·광역의회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초의회선거가 분리돼 치러졌고, 선거 결과는 평민당에 불리하게 나타났다. 재야의 신민주연합당이 창당되길 기다려 당대당 통합을 한다는, 당초의 야권 소통합 계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기초의회선거 이후 통합 신민당의 창당까지는 불과 13일.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전 평민당의 당직자 ㅅ씨는 “수뇌부만 바삐 움직였을 뿐 신민당 간판을 바꿔 내건 지금도 어리둥절하다”면서 “통합 절차에서 당무회의를 형식적으로 치르는 등 당규와 맞지 않는 점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신민당 8인 최고위원은 崔泳謹·朴英淑·盧承煥 의원과 朴一·朴永祿·金末龍·李龍熙·崔聖?씨 등 모두 비호남권 인사로 채워졌다. 지역성 탈피야말로 신민당의 탄생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김총재가 총재-대표최고위원-최고위원제를 지도체제로 채택, 민자당에 맞서는 구도를 거의 기정사실화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신민당의 지역성 탈피 노력이 광역의회선거에서 어느 정도 가시화될지 두고 볼 일이다.

 통합 전 재야의 신민당 대변인을 맡았던 박우섭씨는 “현재 우리측으로 시·도 광역의회의원 후보 신청서를 낸 사람이 2백여명에 달한다. 공인회계사 약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와 젊은층이 많아 기대가 크다”고 말한다. 현재까지의 신청자를 지역별로 구분하면 서울·부산·대구가 각각 20여명, 경북 15명, 경남 30명, 충청 15명, 강원 6명, 광주·전남 10명, 전북 8명 등으로, 영남지역과 중부권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통합서명파로 분류되는 韓英洙 인천시지부장도 “인천지역의 경우 지난 대통령선거 때 득표율이 21%, 총선 때 14%였는데 이번 기초의회선거에서는 25%의 득표율을 보였다. 중부권에 교두보를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고 말한다.

통합파 “이 체제로는 대권 장악 힘들다”
 신민당 창당의 주도세력이 광역의회선거에서의 낙승을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상당수 통합파 의원들은 광역의회선거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견해를 보인다. 통합파들이 당내 비판세력을 조직화해 야권통합의 ‘거사’일정을 광역의회선거 이후로 잡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통합파의 한 중진의원은 “야권통합의 흉내만 낸 이 체제로는 광역의회선거에서 신민당이 승리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잘하면 현상유지할 것이고, 낙관적으로 보더라도 지난 대통령선거 때의 특표율을 조금 앞서는 데 그칠 것이다. 그 상태로 차기 대권에 도전하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진단한다.

 통합파들은 “최종 목표는 민주당과의 통합”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제2창당 이후 주류·비주류로 나뉘어 진통을 겪고 있는 민주당 내부 사정을 감안할 때, 이른바 ‘야권 대통합’이 과연 13대 국회 회기 안에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광역의회선거 이후, 14대 총선 전인 올해 연말에 부분적인 정계개편이 예상되고 있다. 이때 야권이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신민당 통합파와 민주당 비주류파, 특히 서울을 비롯한 중부권 현역의원들이 야권 재편의 변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신민당은 이제 최연소 정당이 되었다. 13대 국회의 전반기를 장식했던 민정·평민·민주·공화 등 4당은 모두 사라졌다. 광역의회선거 때는 연두색 깃발이 휘날릴 것이다. 신민당의 백일잔치가 얼마나 성대할지는 광역의회선거 결과에 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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