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민주화와 경제 선진화
  • 구본호 (한국개발연구원장) ()
  • 승인 1991.04.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의 일이다. 일본에서 열린 어떤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을 때 북한의 경제학자와 2~3일간 조석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회의가 모두 끝난 저녁에 그간의 긴장도 풀린 느긋한 분위기에서 각국에서 온 7~8명의 학자들이 밤 늦게까지 술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 탓인지 또는 같은 말을 사용하는 탓인지 나와 북한학자 사이에는 일종의 친밀감마저 싹트게 되었다. 대화는 어느것 정치나 경제문제 등 딱딱한 내용 대신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 문제가 주가 되었다. 그러던 중 북한학자가 나에게 “슬하에 자녀는 몇이나 되느냐”고 물었다. 딸만 셋이라고 하였더니 자기는 아들이 몇이다 하며 나에게 은근히 경시와 냉소의 빛을 보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크게 놀랐다. ‘여성해방과 남녀평등은 사회주의혁명의 큰 구호였는데’하고 생각하면서.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이 정강이나 구호와는 관계없이 과연 실제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하고 속으로 궁금증이 더하기만 했다.

 89년 여름 소련 모스크바의 어느 식당에서 모스크바대학의 한 역사학 교수와 담소하게 되었다. 소련경제의 발전사에 대해 궁금해 하는 나에게 그는 뼈대있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소련의 과거 70년 경제사는 조선왕조시대의 어느 70년간을 끊어서 들여다보는 것과 대동소이할 것이라고 했다. 지속된 독재체제로 관료들이 부패하고 쇄국정책을 쓸 경우, 시대와 나라에 상관없이 경제적 결과가 어떠할지는 명백한 것이 아니냐고 그는 반문했다.

조선왕조시대와 비슷한 소련의 경제사
 볼셰비키혁명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는 결국 당간부와 관료의 독재로 전락했고, 독재는 조만간에 부패를 초래했다. 예외없는 역사적 사실을 소련에서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자녀의 과외수업료 조달에 힘겨워하는 학술원의 어느 고위간부의 이야기,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갖가지 암시장의 실태, 그리고 자신의 좁고 불편한 아파트가 불만인 한 여비서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그 ‘위대한 볼셰비키혁명’이 일반의 가정이나 일상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으며, 또 현재 페레스트로이카로 일컬어지고 있는 시장경제로의 개혁이 과연 어떻게 진전되어갈 것인가하고 궁금해지기만 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지만 한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중국학자에게 중국은 소련에 비해 시장경제로의 개혁이 훨씬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언제쯤 정착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총리가 온갖 노력을 다한다면 그는 결국 좌절과 실망으로 자살하고 말 것이고, 똑같이 시장경제를 계속 추구하는 다음 총리도 실의 끝에 사임하게 될 것이지만 아마 같은 신념을 가진 세번째 총리쯤이면 겨우 정착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장기간에 걸친 사회주의의 획일적인 이념교육과 생활화가 결국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생활을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어려운 걸림돌이 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이념이나 구호만으론 안된다
 순종을 미덕시하는 중세 기독교관을 염두에 두고 칼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라 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이 종교화되어 수없이 많은 시민이 혁명의 이념 아래 온갖 질곡을 경험하여야 했음을 그는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의 실생활을 윤택하고 자유롭게 하는 길은 이념적 혁명이나 정치인의 구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책임있는 많은 시민들이, 또 산업사회의 전문지식인들이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구경꾼이 아니라 각자 맡은 분야에서 적극적인 참여와 책임있는 기능을 다하여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점차 더욱 희망있는 사회로 이행하는 좋은 계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듣기도 싫은 수서사건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공직사회나 정계에 새로운 윤리관을 가꿀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고 싶다. 두산전자의 공해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그 회사뿐이냐 하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이차적인 문제일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모든 기업이 공해예방을 다하도록 유도하는 사회풍토를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각계의 전문인이 전문적 지식을 국민에게 가르치고, 국민들도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지속적으로 참여해야만 이루어질 것이다.

 불과 몇년 사이에 전개되어온 우리의 정치적 민주화나 언론자유의 발전이 이러한 계기를 창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선진화와 정치적 민주화는 이율배반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민주시민으로서 우리가 역할과 책임을 다할 때 발전하고 성숙한다는 생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