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 참극과 부시의 '시늉'
  • 파리.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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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 사람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더니, 부시는 지금 우리들을 침묵으로 죽이고 있어요" 백악관이 쿠르드 난민의 참상을 매정스럽게 외면하고 있을 때 한 난민이 내뱉었다는 피맺힌 항변이다.

 쿠르드 게릴라가 반이라크 항쟁을 벌일 것이라는 점은 예측할 수 있었지만, 쿠르드 사람들이 사담 후세인의 보복이 두려워 1백만명 이상이나 피난길에 나서리라는 것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쿠르드 난민을 구원하자고 제일 먼저 소리친 것은 서방측 신문들이었고, 이 소리를 받아 이라크 북부에 피난민을 위한 특수보호지역을 설치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영국의 존 메이저 총리였다. 그러나 백악관은 냉담했다. 부시 대통령은 전쟁이 끝난 뒤 미군을 빼내는 데만 관심을 두었지, 미국이 이라크의 내정문제에 휘말려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조처에 대해서는 몸을 사렸다.

팔레스타인 난민 곤경 땐 어떻게 할지…
 그러나 메이저 제안이 나온 지 열흘만인 지난 4월16일 부시가 마침내 침묵을 깼다. 영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라크 북부에 미군 병력을 투입하고 쿠르드 난민을 위한 캠프를 설치하며, 난민구호작업을 직접 담당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도 동시에 병력을 투입했다. 쿠르드 난민을 위해서 이것은 다행스러운 조처였다. 그러나 이 조처는, 이란이나 터키로 들어가지 못한 난민이 국경의 높고 험한 산악지대에서 추위와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가운데, 구호물자의 보급이 어렵고 나날이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취해진 임시조처이다. '임시'라는 말과 '인도적'이라는 말이 자꾸만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조처가 법적으로 따지고보면 명백히 이라크에 대한 내정간섭이기 때문이다.

 미·영·프 3국은 난민의 구호와 보호를 유엔 구호조직과 유엔군 병력에 넘기고 자기네 병력을 하루속히 빼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정부와 쿠르드 난민의 관계가 과연 잘 풀릴지 아무도 모른다. 또 앞으로 쿠르드 난민의 경우와 비슷한 사태가 다른 지역에서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예컨대 이스라엘 점령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서 팔레스타인 난민이 곤경에 처할 경우에는 같은 방식을 적용하느냐, 만약 중국 치하의 티베트에서 심각한 난민문제가 생길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등 심상찮은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다.

 쿠르드 난민의 참극이 그렇고, 걸프전쟁 자체가 그렇고, 국제관계는 복잡다단하여 갈피를 잡기 힘들다. 쿠르드의 비극을 잠시 덮어두고 전체적으로 걸프전쟁의 득실을 어떻게 평가해야 될 것인가 살펴보자.

 미국의 국제문제를 평론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전쟁 결과의 긍적적인 면을 대체로 세가지로 짚고 있다. △국제사회가 침략을 좌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법적으로 확립했으며 침략자는 응징을 받는다는 원칙이 섰다. △미국의 힘은 막강하며, 그 힘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미국 지도자들은 결단력을 보였다. △중동이 미국 영향권 아래 있게 되었으며 석유공급이 무난하게 되었다. 반면 부정적인 점으로는 이라크내의 비군사 목표물에 대한 심한 공습 때문에 미국이 아랍인의 생명을 경시했다는 도의적인 문제가 제기되었다.

국제사회 속 어정쩡한 한국의 태도
 미국의 힘이 재확인된 것은 멀리 북한에도 경종을 울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브레진스키는 보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안보와 석유확보 두가지 측면에서 전쟁 결과가 한국에는 이로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우 조심스럽게나마 참전을 했으며, 미국 요청에 따라 자금도 제공했으므로 이러한 결과를 어부지리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은 걸프전쟁 참전 여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광범위하게 토론하는 과정이 없이 우물우물 소규모 참전으로 낙천한 듯한 인상이 짙다. 어느 신문에 실린 여·야 토론에서는 중동이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는 점을 참전 반대의 근거로 한 야당 중진이 제시할 정도였다. 먼 나라에서 석유를 들여다 써야 하고, 수많은 먼 나라와 교역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보면, 요즘은 국제정세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한국에 대해서 갖는 기대가 점차 높아가고 있다는 것도 참고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최근에 어느 노르웨이 전직 외교관이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민주적이며 경제력이 있는 나라들만이 집결할 새 국제기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쓴 적이 있다. 평화·질서·발전을 위협하는 불합리하고 위험한 행동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이 새로운 공동체에 속해야 할 태평양지역 나라들로 그는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 나란히 한국을 꼽고 있다. 국제문제를 놓고 미국이 요청하니까 어떻게 한다, 안한다 하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맴돌아도 되는 시기는 지나간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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