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에 손대지 말라”
  • 부에노스아이레스·손정수 통신원 ()
  • 승인 199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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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미국 등 ‘외세’에 맞서 뒤늦게 “주권 우호” … 전략지대 구축키로

무진장한 천연자원과 다양하고 풍부한 생물 분포로 ‘세계의 마지막 보고’라 불리는 아마존. 6백40만㎥의 광활한 면적에 브라질 국토의 60%를 차지하는 아마존은 오늘날 여러 나라의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투쟁무대가 되고 있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금광을 찾아 헤매는 불법 광산업자나 쫓기는 범죄자, 마약 밀수업자들의 천국이다. 정부의 행정력도 아마존 구석구석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아마존의 정치적·경제적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작년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제1차 지구정상 환경회담이 열리면서였다. 이 회담에서 유엔은 아마존을 ‘인류의 재산’으로 선언하자고 제안했다. 아마존이 ‘주인 없는 땅’이 되어 불법 금광업자와 범죄자들의 벌목과 방화,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개발사업으로 파괴된 자연환경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는 데 근거한 제안이었다. 당시 이 제안은 각국의 이해가 서로 얽혀 진전을 보지 못했으나, 브라질 정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날 브라질 정부는 아마존의 주권을 수호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 8월17일 브라질 공군은 북부 아마존 국경지역에서 공군기 18대와 병력 2백8명을 동원해 2주간 훈련작전을 폈다. 그 다음날 군부는 북부 아마존 전역에 폭 20~3O㎞에 걸친 군 관할 전략지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브라질 국방위원회는 호세 사르네이 전 대통령이 발표한 ‘Chalha Norte (북쪽 길)’계획을 재가동한다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약 5억달러가 소요되는 이 계획에는 브라질 군부의 숙원인 국결지역 훈련작전 외에도 11개 진지를 구축하고 12개소에 레이더망을 설치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전례 없는 브라질 정부의 이번 조처는 하원 국방분과위원회에 제출된 한 비밀 보고서에서 비롯됐다. 브라질 군부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브라질 국경 주변의 미군 배치 상황을 상세히 보여주며, 파라과이·볼리비아·페루·콜롬비아·베네수엘라 등 인접국에서 고도 레이더 장비를 갖춘 미군의 작전이 증가 일로이므로 이런 상황에서 아마존의 풍부한 자원을 보호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의문의 ‘인디언 집단 살해사건’ 잇따라
 국방분과위원회에 참석했던 고위 장성들은 미군이 파라과이 국경 지역에 파라과이 정부의 지원으로 폭 60m, 길이 3천5백m의 전략 활주로를 건설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아마존의 자연 자원을 겨냥한 미국측 전략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사실이 보고된 후 미국과 브라질 정부는 긴급 회담을 갖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브라질 주재 미국대사관은 에콰도르·콜롬비아 등 남미 5개국에서 마약밀수 방지와 레이더 교육을 위한 미군의 작전이 늘어났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미군이 군사기지를 만들고 있다는 브라질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부인했다.

 브라질 언론들은 애초 이번 사태를 브라질 자체의 빈약한 방위능력과 인접국에 미군이 출현함으로써 생긴 가상 위협에서 출발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요즘은 이번 사태를 정부와 군부 사이의 역학관계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다. 이곳 언론들은 군의 군사훈련작전과, 과거에 사장되다시피 한 ‘북쪽 길’ 계획을 재가동한 이따마르 프랑코 대통령의 결정은 군부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조처라고 풀이한다. 일부에서는 이번 조처로 정부에 대한 군의 영향력이 오히려 증대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그 때문에 내년 10월에 있을 총선에 미칠 군부의 영향력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월평균 35%의 실업률과 극심한 빈부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군부의 쿠테타 가능성은 항시 열려 있다.

 한편 아마존을 두고 브라질·미국 양국이 긴장하고 있을 당시 아마존 원주민 인디언들이 집단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8월16일 베네수엘라 접경 아마존에서 70명의 쟈노마니스족 인디언들이 집단 살해되었는가 하면, 19일에는 브라질 접경 페루쪽 아마존에서 64명의 아샤닝카스족 인디언들이 집단 살해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페루의 아샤닝카스족은 페루 게릴라 조직인 ‘빛나는 길’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브라질 정부는 금광을 찾아 밀림을 뒤지는 백인계 불법 금광업자들이 이번 사건을 저질렀을 것으로 본다. 불법 천지인 아마존에서 땅 소유권 문제로 인디언과 범죄조직이 벌이는 혈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손대대로 땅을 지켜온 인디언들은 아마존 지역의 토지를 재정비하려는 정부와도 맞서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아마존 지역 토지정리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있는 시기에 갑자기 아마존을 문제시한 군부의 의도를 달리 풀이하는 측도 있다.

 인디언 집단 살해사건은 유럽·미국 정계 및 학계의 ‘아마존 공동관리’ 제안을 부추겼다. 그러나 이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일축한 프랑코 정부는 문제의 인디언 부락을 방문하려는 외국 외교관·학자·기자들의 접근을 금했다. 또한 정부는 아마존을 위한 특별부를 만들고 군 장성을 초대 장관으로 임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처의 이면에는 현정부가 어려운 국내 정치 상황을 타개하려는 복선이 깔려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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