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발상…화해무드 깨진다”
  • 워싱턴 · 이석렬 특파원 ()
  • 승인 1990.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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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파나마 침공에 들끓는 국제 여론 … 피신한 노리에가는 ‘결사 반미투쟁’ 호소

 크리스마스를 닷새 앞둔 지난주 수요일 한밤중에 이뤄진 미국의 파나마침공은 부시 대통령의 정당성 주장에도 불구하고 세계 여러나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무엇보다도 한 국가가 다른 주권국가의 실권자를 일방적으로 ‘기소’하여 ‘체포’하려고 군사작전을 벌였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던지는 파문이 크다. 뿐만 아니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신사고 외교정책으로 동구권을 비롯, 세계에 전반적인 화해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시점에서 감행되어 동 · 서 화해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

 미국의 파나마침공은 기습공격이라기 보다는 예상된 군사행동이었다. D데이를 예고하기나 하듯 언론들이 군사행동의 긴박성을 며칠전부터 보도하는 가운데 미군 수송기들이 파나마 미군기지로 날아가 병력과 장비를 부려놓는 것을 본 노리에가 장군은 여유있게 피신할 수 있었다.

 침공 다음날 새벽 텔레비전에 나온 부시 미대통령은 다소 지쳐 있는 모습으로 파나마에 대한 군사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성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을 했다. 노리에가 정권이 미국인의 생명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파나마운하 유지를 위해 가할 움직임을 보여 미국의 자위권을 발동, 군대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이어 국무부에서 제임스 베이커 장관이 기자들에게 배경설명을 했다. 그는 미국의 자위권발동이 유엔헌장과 미주기구(OAS)헌장에 따른 것임을 강조했다. 노리에가를 놓친 것은 작전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베이커는 원래 미군출동은 ① 파나마에 있는 미국인을 보호하고 ②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정부를 도와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며 ③ 제소중인 마약밀매자 노리에가를 체포하고 ④ 파나마운하협정이 보장하는 미국의 권리를 지킨다는 4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1가지만 빼놓고 다른 3가지는 뜻을 이뤘다고 우회적인 답변을 했다.

 그러나 베이커의 구차스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은 부시 대통령이 군대 출동을 명령한 것은 미국의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는 노리에가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고 믿고 있다. 작전개시 8시간만에 있은 체니 국방장관과 콜린 파웰 합참의장의 공동기자회견석상에서 파웰 대장이 “드디어 그놈의 나라 정부 목을 싹둑 잘라 버렸다”고 복수심에 가득찬 말을 하면서 “우리는 기어이 노리에가를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장담을 한 것이라던가 안개처럼 사라진 노리에가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결사반미투쟁’을 국민에게 호소한 뒤 부시 대통령이 노리에가 목에 1백만 달러 현상금을 건 것으로도 그 속을 알 수 있다.

 천안문학살사건 직후에 고위밀사를 북경에 파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곤욕을 치르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더군다나 몰타정상회담 이후 잔뜩 평화공존 분위기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와중에서 이웃 소국의 정부를 무력으로 무너뜨림으로써 ‘제국주의 미국’의 낙인을 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브레즈네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오랫동안 맹렬히 규탄해오던 미행정부가 어찌 중남미를 제집 뒷마당처럼 생각하여 멋대로 행동하고 있는가. 국가이익이라는 기준은 공존의 국제사회에서 만능으로 통하는 것인가. 이런 물음들이 부시 행정부의 앞길에 가로 놓이게 되었다.

 ‘올바른 방향’이라는 암호로 불려지고 있는 미국의 파나마 침공작전은 미국내의 압도적인 지지와는 딴판으로 중남미는 물론 다른 많은 나라들로부터 거센 비난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OAS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국을 규탄하는 가운데 페루는 오는 2월 콜롬비아에서 열릴 마약퇴치를 위한 미주정상회담을 거부했다. 또 OAS는 미군침공 1시간전에 미군기지 안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 기예르모 엔다라 정권을 합법정부로 승인하기를 거부하고 나섰다.

 20일 저녁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소련과 중국은 미국을 통렬히 비난하고 파나마에서의 즉각 철군을 요구했다. 특히 중국대표는 미국이 취한 행동이 “명백한 유엔헌장에 위반일 뿐만 아니라 모처럼 고조된 국제긴장완화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규탄하고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했다. 소련은 “미국의 침공이 어떠한 명분으로도 합리화 될 수 없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행위이므로 당장 파나마에서 철군해야 한다”고 비교적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미국 의회나 국민이 부정 행정부의 결단을 지지하고 나선 데 반해 저명한 미국의 국제법 전문가들 중에는 미국의 자위권 발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조지타운대학 법학과 배리 카터 교수는 “한마디로 이것은 레이건 독트린이다. 정부가 OAS헌장에 따라 취한 적법한 자위행위 운운 하지만 헌장 15조를 보면 어떤 나라도 남의 나라 일에 어떤 형태로든 간섭할 수 없게 돼 있다”고 비난했다.

 워싱턴 지역에 살고 있는 파나마 사람들의 견해는 찬반으로 갈려져 있는 것 같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노리에가와 같은 부패한 독재자 거세된 것은 다행이나 그것이 외세에 의해 성취된데 대해서는 유감을 표시, ‘국가적 자존심의 훼손’에 불만을 나타냈다.

 반대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노리에가가 권좌에 오르도록 도운 자가 바로 미국이었는데 그를 이용하다가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니까 걷어찬 것이 아닌가. 미국은 항상 국가이익을 내세워 파나마를 지배해 왔다”는 주장으로 미국의 대국주의를 불신·규탄했다.

 한편 전격적인 군사행동으로 노리에가를 ‘생포’해서 미국으로 끌고가 감옥에 넣고 엔다라 정권에게 치안유지를 맡기고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기기 전에 파나마에서 빠져나올 생각이었던 미국방부의 구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노리에가는 오리무중이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파나마 방위군과 ‘위신대대’의 패잔병들의 저항은 끈질기게 계속될 전망이다.

 사태가 이처럼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자 부시 행정부 내에서는 부정확한 정보와 정보부족에 대한 자체반성이 일고 있다. 미군의 진격을 열렬하게 환영하고 새로운 정권을 강력히 지지하리라던 파나마 국민의 민심동향에 대한 오판, 그리고 미국의 이웃나라에 대한 군사개입을 쓴 약 마시듯 하면서도 크게 반발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제여론에 대한 잘못된 기대 등을 두고 서로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노리에가 체포작전’으로 의미가 축소된 작전명령 ‘올바른 방향’은 수송기에 실려오는 전사한 미군시체를 담은 고무자루 수가 많아질수록 이를 지켜보는 미국사람들의 머리에 베트남의 망령을 되살리게 할 것이다.

 미국행정부는 걸핏하면 군대를 보내어 남의 나라 정부를 박살내는 좋지 않은 기록을 갖고 있다. 지난 83년 레이건의 그라나다 침공과 3년 전 지중해함대 함재기에 의한 리비아의 국가원수 카다피 관저 폭격, 부시가 지난 10월 파나마의 소장파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 미수사건에 미국기지의 일부병력을 동원하여 가담시킨 일, 그리고 지난 12월초 아키노 대통령을 도와 클라크 미공군기지에서 전투기를 발진시켜 필리핀 반란군을 진압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일들이 있다. 구시대 제국주의적 소행들이다.

 패권주의자의 함포외교는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나라,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지지한다는 나라, 그리고 모든 분쟁은 무력이 아닌 정치적인 수단으로 해결하도록 소력사람들과도 굳게 약속한 미국이 인구 2백40만명의 소국 파나마를 공공연히 침공했다는 사실을 미국의 그늘에 있는 중남미 국가들 뿐 아니라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새삼 외치게 된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영웅과 독재자의 두얼굴
 철두철미한 반미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인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51)는 ‘불세출의 민족영웅’에서부터 ‘무자비한 독재자’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파나마 시티의 슬럼가를 누비며 양부모 밑에서 불운한 유년기를 보낸 노리에가는 처음에는 정신과 의사를 지망, 파나마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나 중퇴하고 62년 파나마 국방경비대에 입대해 군인으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그가 파나마의 실력자로 부상한 것은 지난 81년 장군 출신의 당시 대통령 토리호스가 갑작스런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후부터이다. 68년 쿠데타로 집권한 토리호스는 반식민주의와 독립을 주장한 민족주의자로 노리에가는 그런 토리호스장군을 추종하며 15년간이나 파나마 최대의 정보기관인 G2사령관직을 맡아왔다.
 토리호스에 이어 83년 최고사령관직에 올라 파나마의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가 된 그는 대미독자노선을 강화해 야당세력과 미국의 위협에 정면으로 맞서왔다. 특히 “우리 세대가 짊어진 역사적 과제는 미국으로부터 파나마운하의 통제권을 지키는 것”이라는 평소 그의 주장은 미국을 자극해 왔다.
 그는 무자비할 정도로 야당을 탄압해 국민들로부터 불만을 사기도 했다. 집권기간 동안 수차례 대통령을 갈아치웠는가 하면 89년 5월에는 야당후보가 승리한 대통령 선거를 무효화 하기도 했다. 1만5천명 규모의 방위군을 배경으로 독재체제를 구축한 노리에가는 그동안 몇차례의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진압한 바 있다.

‘꼭두각시’ 비난 못면해
 미국의 군사적 지원 아래 파나마의 새 대통령에 취임한 기예르모 엔다라(53)는 지난 5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 야당 후보로 출마해 압승을 거두었던 인물이다.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노리에가를 해외로 추방하거나 군사령관직에서 해임, 구금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그는 개표 결과 노리에가측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이겼지만 노리에가의 강압적인 선거무효 선언으로 분루를 삼키며 잠적했었다.
 노동문제변호사로 파나마대학에서 상법 강의를 맡기도 한 그는 지난 68년 아리아스 마드리드 대통령 집권시 기획원장관으로 입각했으나 아리아스가 쿠데타로 무너지자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77년 귀국, 파나메니스타당에 입당해 사무총장직을 맡아 야당재건과 통합에 힘써왔다. 88년에는 노리에가가 이끄는 의회가 당시 델바예 대통령을 축출하자 친미성격의 ‘시민민주동맹’이라는 야당연합전선을 결성하여 반노리에가 운동에 앞장서왔다.
 그러나 미국의 사전허락을 얻어 대통령에 취임한 처지이고 보면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특히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또 망명생활도 했던 그로서는 그러한 인상을 씻어내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지난번 선거 당시에도 미국으로부터 1천만 달러의 자금지원을 받았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는데 앞으로도 파나마운하문제 등에서 미국의 이익을 국정에 반영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더구나 아리아스 같은 카리스마를 갖지 못한 것도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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