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와 정당벌립을 아십니까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3.09.2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남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 사는 강갑성씨(71) 부부는 요즘 갈꽃을 뽑느라 분주하다. 민물과 짠물이 교차하는 섬진강가의 갈대는 민물 것보다 질기고 좀체 변색되지 않아 빗자루감으로는 최상질로 치는데, 음력 7~8월에 뽑는 갈잎은 따로 오사리라 부르며 알아준다고 한다. 이곳에서 4대째 사는 강노인은 45년 전부터 농사일 틈틈이 빗자루를 만들어 왔다. 그가 만드는 비는 재래식 달비, 솔 모양의 솔비, 부채 모양의 부채비, 대자루비, 자루꽃비 등 다섯가지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 꽃비이다. 자루꽃비는 갈꽃 열두 묶음으로 만든다. 한묶음마다 적·황·녹 삼색으로 감아 묶은 다음 빗목과 자루까지 일일이 색실로 떠서 감아낸다. 근동에서 강노인의 자루꽃비가 유명한 것은 바로 이 색실 때문이다. 예전에는 물레로 실을 자아 하나 하나 물을 들여 썼으나 요즘은 손이 달려 구정 뜨개실을 사다 쓴다고 한다. 하루 종일 다른 일 전폐하고 해야 고작 서너 자루를 만든다. 한 자루에 2만원 정도 받고 파는데, 군내 높은 자리에 앉은 분들의 주문에 물건이 딸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강노인의 꽃비와 더불어 전통공예의 창의성을 높인 사례로는 제주도 홍만연씨(73)의 정당벌립을 들 수 있다.

 육지에서는 댕댕이덩굴이라 부르는 정당은 요즘이 채취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처서가 지난 직후 채취한 것을 상품으로 치는데, 그보다 이르면 덜 여물어 쓸모가 없고 늦으면 굳어서 다루기가 힘들다. 하루 종일 물에 불렸다 나일론 그물로 잘 문질러 매끄럽게 한 후 바로 엮기 시작해야 한다.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1리에 사는 홍노인은 13세 때 아버지에게 정당벌립 엮는 법을 배웠다.

 제주도의 명품으로 알려진 정당벌립은 풀로 만든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촘촘하다. 벌립, 즉 모자 하나 만드는 데 1주일이 걸린다니 어느 정도 품이 드는지 알 만 하다. 지금 제주도에서 정당벌립을 만들 줄 아는 이는 홍노인 말고는 없다. 완전히 단절된 셈이다. 대신  홍노인이 제작 방법을 간편하게 개량한 신식 정당벌립이 특산품 대접을 받는다.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형태나 재료를 살려 원형을 재현하는 일은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 것일까. 강노인의 자루꽃비나 홍노인의 정당벌립은, 전통 정신을 창의적으로 되살려내고 부가가치를 높임으로써 단순한 복고 취향이나 감상적 우월주의를 극복한 표본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