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깔고 앉은 가진자의 ‘오만’
  •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본지 칼럼니스트) ()
  • 승인 1991.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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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사람에게 정신적안식과 육체적 휴식을 주는 자연경과은 귀하고 값지다. 성루사람에겐 특히 북한산이 자랑이고 위안이다.

 북한산은 엄청난 미덕을 갖고 있다. 우선 촌각을 다투며 사는 서울사람에게 활력을 돋구는 청량제다. 광화문통을 지나는 총망중에도 잠시 눈을 들면 중앙청 바로 넘어 북악산이 솟았고, 그위로 또하나 그윽히 드높이 솟은 북한산 보현봉을 만날 수 있다. 대기오염이 만연한 요즘에는 도시환경의 건강도를 챙겨주는 경보기능도 함께 한다. 서울의 동서를 잇는 강변도로에서 주봉인 백운봉과 보현봉을 잇는 길다란 북한산의 능선이 선명하게 보이면 대기오염이 없는 날이고, 그렇지 않으면 오염 요주의의 날이라 알려주는 경보신호이다.

 멀리서 즐길 게 아니라, 넉넉한 자연의 땅을 직접 밟으려는 사람에게 북산산은 보석처럼 다가온다. 서울의 북쪽 경계를 감까고 있는 북한산은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산을 찾는 사람이 들끊는다. 큰 산이다 보니 산에 드는 길이 수십 곳이다. 평창동 쪽도 도심과 바로 지척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거길 통해 보현봉도 오르고 더 욕심을 내면 백운봉 쪽의 정상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다.

산자락에 고대광실 짓게 한 정부도 한심
 지금, 평창동과 그 주변 일대가 엉망진창이다. 대궐 같은 단독주택과 고급빌라를 세운다고 마구 파헤치고 있다. 보현봉에서 경복궁 뒤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끼고 자리잡고 평창동 일대 산기슭에 다소곳이 ‘앉히는 게’아니라 그 산등성이를 만드는 고만고만한 봉우리 위에까지 덩그렇게 집터를 ‘올려놓아’ 보현봉 아래 형제봉 같은 경관을 가리고 있다. 또 지난 수해 때는 기어코 아랫집을 덮치는 산사태를 나게 했다.

 주변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관이라 해서 무작정 집을 짓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너무한다는 것이다. 시미의 공유재산이 분명한 경관을 혼자 독점하겠다는 아집에 다름아니다. 그런 곳에 집을 짓거나 살 만한 사람은 필시 돈푼깨나 만지고, 권력에도 가까운 이른바 지도층 인사일 것이다. 그런 인사들에게 요구되는 자증하는 마음은 도무지 찾을 길 없다. 오로지 오만만 가득하다. 산꼮대기를 깔고앉아서, 눈을 내리깔고 살겠다는 그런 오만이다.

 우리의 옛 미덕은 다 어딜 갔단 말인가. 모름지기 집터는 자연을 외경하는 마음으로 그것과 어울리게 장만하고자 했다. 풍수사상이 아니라도 바람이 잔잔한 곳을 골랐다. “삭풍이 뒷산에 부딪쳐 직접 넘나들지 않아서 평균기온이 이웃 지역보다 약간 높아, 이웃으로부터 제일 먼저 매화가 피었느니 하고 부러워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곳”이 좋은 집터라 했다.

 명당을 가려잡기는커녕 땅뙈기 하나 마련하기 힘든 요즘 세상에선 남의 눈총을 받지 않는 곳이면 나쁘지 않은 집터로 삼을 만하다. 세상의 도리를 아는 사람은 예로부터 남의 눈총을 받을 만한 일을 가장 금기로 삼았다. 집을 짓다보면 제대로 마무리를 다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 해서 그건 돈을 치지 않고 일해줘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대목들은 일한 날수에서 ‘하루치를 뺀 품삯 받기’를 고집하였고, 집주인은 복을 키워야 할 집이기에 혹시 품삯을 제대로 치르지 않아 대목이 집을 지날 때마다 원망하지 않을까 경계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니 평창동 구기동 일대 산비탈은 전통적 의미로나 현대적 의미로나 마땅한 집터가 아닌 셈이다. 바람을 잠재울 수 있는 땅도 되지 못한 데다, 북한산을 매일 또는 매주말 오르내리는 사람들로부터 어지간히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곳에다 집을 짓겠다고 앞뒤 안가리는 판이니, 집짓는 일꾼에게서 분수를 아는 옛 대목들의 미덕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곳에 고대광실을 짓게 한 정부도 참으로 한심하다. 산자락 일대 높은 고도까지 주거지구로 당초 설정한 것부터 무리였지만, 그나마 풍치지구로 지정해서 부분적이나마 경관보호책을 마련해왔다. 그러던 것이 그만 5공 말기 때 선심행정용으로 풍치지구를 해제해버리자, 마치 산과 높이경쟁이나 하듯 경관을 해치는 4,5층짜리 건물이 치솟고 있다.

 북한산은 예로부터 신성시해온 산이다. 왕조시대에는,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정기가 북한산 최정상 백운봉에 모아졌다가 산세를 따라 보현봉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북악산으로 내려앉는 그 자락에 경복궁을 지어, 사직을 지킨다고 믿었다. 그 산줄기에 경복궁이 약간 비껴 서있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에 세종임금은 그의 재위기간 후반에 줄곧 노심초사했다고 전한다.

 그 산줄기에 집을 지을 수 있게 되었음은 민주사회의 덕분이다. 그러나 바로 민주사회이기 때문에, 자연경관은 시민들이 공유해야 할 공공재산이다. 그런 경관을 독점하겠다는 일부 가진 사람들의 무한한 욕심과 거기에 야합하는 정부의 태만은 자연과 질서에 대한 일대 도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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