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거목’ 이창호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1.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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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계가 또 한차례 시끄러웠다. 지난 4우럴 24일 천재 소년 기사 李昌鎬 4단은 제 25기왕위전 도전기 7번 승부 최종국에서 스승 曺薰鉉 9단을 불계로 이기고 타이틀을 차지했다. 세상이 떠들썩했던 이유는 이창호 4단이 왕위전을 계기로 ‘천하의 조훈현’을 누르고 명살상부한 한국바둑계의 새로운 왕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그의 나이는 16살. 11살의 나이로 프롸둑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6년, 89년 세계바둑사에 유례없이 어린 나이로 첫 타이틀(KBS바둑왕전)을 획득한 지 3년만의 일이다.

 “제자가 스승의 10년 아성을 무너뜨리는가.” “천하의 조훈현이 욱일승천의 이창호를 무릎 꿇리면서 1이자를 고수할 것인가.” 왕위전 마지막 대국을 지켜본 바둑해설가 金 英 6단은 “한국 바둑 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두 승부사가 자리를 뜬 뒤의 대국장은 전쟁이 끝난 뒤에 폐허와 같았다”고 그 격력했던 ‘싸움’을 묘사했다.

 사제간의 대결은 이창호의 승리로 결판이 났지만 왕위전 7번 승부는 숨막히는 혈전의 연혹이었다. 1~2국 조훈현 승. 3~4국 이창호 승. 제5국에서 제자 이 4단은 여세를 몰아 스승 조 9단에 5집반승을 거두면서 팽패한 균형을 깨뜨리고 역전의 고삐를 당겼다. 그러나 제6국에서 조 9단은 이 4단에게 불계패를 안기면서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다. 승부는 원점에서 다시 출발했다.

 “이기겠다는 욕심을 갖지 않고 부담없는 자세로 싸움에 임했습니다. 선생님이 부담을 느끼셨기 때문인지 누구나 볼 수 있는 대목에서 실착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승부가 결정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창호 4단은 언제나 그렇듯 담담한 어조로 마지막 결승대국에서 승리한 소감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조훈현 9단은 바둑이 끝난 뒤 대마가 죽은 돌을 만지면서 “사는 수가 없었나”라며 혼자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창호느 이제 더 이상 떠오로는 별이 아니다. 대국료로 벌어들인 총수입이 1억원을 넘어서, 상금랭킹 1위에 올랐고 가지고 있는 타이틀도 조훈현보다 많다. 올들어 그는 5월1일 현재 조 9단에게만 6패를 당했을 뿐 뭇 고수들에게 전승을 거두고 있다.

 이창호 4단은 86년 프로바둑 세계에 뛰어든 뒤 놀라운 기록을 숱하게 쏟아냈다. 88년 그는 75승10패의 전적으로 승률 88.2%라는 그해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듬해에는 84승27패로 다승 부문과 대국 수 부문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웠으며, KBS바둑왕전에서 우승해 조치훈의 기록보다 무려 4년이 앞선 14살의 나이에 세계 최연소 타이틀보유자가 됐다. 또한 지난해 41연승을 거둠으로써 이 부문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애늙은이 바둑’ ‘강태공의 바둑’으로 불리는 이 4단의 바둑은 참고 기다리는 바둑으로 유명하다. 김수영 6단은 “바둑은 마음 공부가 ㅁ너저”라는 오청원 9단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창호의 바둑에는 마음공부가 돼 있음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하늘이 내리 것이다”라고 평한다. 김 6단에 따르면 이창호는 종반으로 갈수록 “흐르는 물은 다투지 않는다”라는 중국의 격언대로 순리에 맞게 바둑을 둔다는 것이다. 이창호 4단의 충암고 선배이기도 한    (29) 7단은 “그의 침착성은 프로기사들 가운데 당대 최고”라고 높이 평가한다.

 이창호의 이러한 침착성은 대국중에 특히 빛을 발하지만 평상시의 생활에서도 나타난다. 오히려 평상시의 침착성이 그를 더욱 승부사다운 승부사로 만드는 요인일는지도 모른다. 무뚝뚝해보이는 외모처럼 “이기거나 지거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소년답지 않은 부동심이 나이 든 서내기사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재작년 서봉수 9단에게 연승을 거둘 때도 이 4단은 “왜 이기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지극히 무감동한 마음자세를 지니고 있었다.

“스승의 재산을 훔친 大 ”
 비록이창호가 침착성을 타고났다 하더라고 84년 조훈현 9단의 내제자(스승과 함께 기거하며 가르침을 받는 사람)로 들어가 올 2월 그 문하를 떠나기까지의 7년 세월이 없었다면 ‘이창호의 오늘’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창호의 기재는 천하제일의 실력을 자랑하는 ‘조국수’의 가르침으로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이창호는 내제자시절을 이렇게 소개한다. “처음엔 한달에 한두번씩 다른 연구생과 두었던 저의 기보를 보시고 잘못된 곳을 지적해주셨습니다. 실력이 조금씩 향상됨에 따라 선생님은 감각, 발빠른 행마법, 타개술 등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아직도 행마가 느리고 둔하다고 생각하는 이창호에게 ‘조제비’로 불릴 정도의 날렵하고 발빠른 행마를 자랑하는 조 9단의 가르침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도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이창호의 기재는 타고난 자질과 훌륭한 대장장이의 담금질만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뼈를 깎는 노력’이 이창호의 기재를 완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스승의 재산을 훔친 大 .” 이것은 내제자시절 조 9단이 소장한 바둑책 수백권을 잠을 잊어가며 탐독하고 연구했던 이창호를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바둑을 여러번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혼자서 생각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 4단은 대국이 끝난 뛰 반드시 후회하는 장면을 되짚어 보고 잘못된 곳을 분석한다고 한다.

 “저에게 너무나 헌신적이지요.” 아버지 李在龍(44)씨에 대해 묻자 이창호는 불쑥 이렇게 대답을 하고 말문을 닫는다. 전주에서 금은방을 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는 중요한 대국이 있을 때마다 아들의 곁으로 달려온다. 얼핏 보는 이창호의 표정엔 승부사다운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없지만 9살에 가족의 곁을 더나 객지에 온 뒤 외로움과 철저히 싸워온 흔적이 엿보인다. 왕위전 때문에 서울에 올라온 그의 아버지는 4월40일 아들의 5단 승단시합을 끝까지 지켜본 뒤 바쁘게 전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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