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이윤 탐낸 재벌 사치품 수입 극성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1.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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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미국압력 의식해 판촉독려…국산품질 향상 가로막아

 미국 포드사의 자동차를 수입 판매하는 기아자동차는 올해초 상공부로부터 당혹스러운 ‘충고’를 들었다. 포드자동차에 대한 판촉활동을 강화하라는 것이었다. 걸프전쟁과 과소비 억제운동 탓으로 ‘세이블’을 비롯한 수입자동차가 잘 팔리지 않자 미국의 개방압력을 의식한 당국이 먼저 손을 쓴 것이었다.

 과소비 억제운동이 선진국,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규제하기 위해 정부가 조장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받은 후 정부의 태도는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실제로 16개 사치성 소비재 품목을 정해 정밀검사를 하던 관세청이나 50개 사치성 수입품목을 지정해 감시하던 상공부는 올해부터 모두 이 제도를 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은 “특정 품목에 대한 평가강화제도가 대외 이미지상 문제가 있고 통관을 지연시킨다는 여론도 있어 91년 1월1일부터 폐지했다”고 밝히고 있다.

과소비’되살아나 무역수지 악화
 이 틈을 타 사치성 소비재가 다시 몰려들고 있다. 90년 3월 한달 동안 3백3대나 팔려 수입자동차의 대명사로 불린 세이블의 경우 올 1월(35대)까지 줄곧 하강곡선을 그리다가 지난 3월 다시 75대로 급증했다. 전체 수입차 판매량은 지난 1월 73대 수준에서 3월 1백47대선까지 급격히 늘어났다.

 이번 임시국회 때 관세청이 국회 재무위원회에 제출한 ‘최근 2년간 사치성 소비재 수입 현황’을 보면 어떤 제품의 사치재를 어떤 기업이 많이 사들이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표참조). 작년의 경우 50개 기업의 16개 사치재 수입금액만도 1억6천만 달러를 웃돈다. 이는 작년 우리나라 무역수지 적자액의 3.5%에 달하는 규모이다.

 이 자료에서 매겨진 순위에 대해 해당 업체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당국의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품목이 선정되었으며, 수입업체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불만이다. 90년 사치재 수입 1위로 나타난 기아자동차쪽은 이런 이유를 대고 있다. “포드사는 기아자동차에 자본금 10%를 출자했으며 기아의 ‘프라이드’를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연간 7만대 가량 사주고 있다. 포드자동차를 수입하는 것은 미국시장 진입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기아가 포드에 수출한 것은 약 2천5백억원인데 비해 수입한 것은 약 2백30억원어치로 수입액은 수출액의 10분의 1도 안된다”.

 최근의 사치성 소비재 수입 증가현상은 4월말까지 55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 무역구조에 몇가지 문제점을 시사하고 있다. 우선 그동안 계속 지적돼온 것이지만 수입 사치품의 상당수가 불요불급한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작년과 같은 무차별적인 수입은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러나 품목에 따라서는 수입이 급격히 증가한 것도 있다. 화강암과 대리석이 좋은 예다. 이는 최근의 건설경기 과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핀란드 브라질 캐나다 등지에서 수입되는 화강암과 이탈리아에서 수입되는 대리석은 주로 건축용 자재로 사용된다.

 화강암·대리석·비디오게임 용구 수입으로만 올해 1·4분기 사치성 소비재 수입1위 업체로 떠오른 현대종합상사의 한 관계자는 “이 집계액수가 오히려 적게 잡혀 있다”고 털어놓았다.
 더 중요한 것은 사치성 소비재 수입이 수입개방 ‘효과’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이다. 수입개방론자들은 개방의 효과로 경쟁이 유발되어 국내 제품의 가격이 떨어지고 품질이좋아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은 국내 제품의 가격인하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난달 초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산업지원 강화를 위한 관세율 구조 개편방향’이란 연구보고서(작성자 申英燮 박사)의 연구결과와도 일치한다.

 이 보고서는 지난 78년부터 87년까지 10년간 사치성 소비재를 포함한 66개 제조업부문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 특정제품에 대한 수입이 늘어나도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점을 밝혔다. 또 그 이유는 재벌이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趙東成 교수(서울대·경영학)는 “재벌을 비롯한 생산업자들이 수입을 하고 있고, 대부분의 수입업자는 국내에서 독점수입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위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수입이 곧 경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경쟁이 제한된 상태에서의 사치재 수입은 오히려 국내 제품의 가격까지 덩달아 오르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가전업계는 생산업자가 수입을 겸하는 좋은 예다. 90년의 경우에 삼성전자 금성사 대우전자 등 가전 3사는 69억원 상당의 냉장고 세탁기 컬러텔레비전을 수입했다. 올해에도 3월말 현재까지 대우전자는 약 8억원어치의 냉장고 세탁기 컬러텔레비전을 사들였다. 대우가 수입하는 냉장고는 7백53ℓ 용량의 미국 제네럴일렉트릭사 제품으로 시중에서 2백95만원과 3백 20만원씩에 팔리고 있다. 세탁기는 회전형 국산제품과 세탁 방식이 다른 유럽식 드럼형으로 역시 제너럴일렉트릭사 제품이다. 대우전자는 “대형 냉장고나 세탁기 수요가 ‘분명히’있고, 기술도입선인 제너럴일렉트릭사에 대한 배려 때문에 수입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벌의 ‘독점수입’제한해야
 금성사의 경우는 해외투자법인의 누적재고 외에는 수입을 하지 않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李健熙 그룹회장의 지시에 따라 작년 3월 이후 수입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가전 3사 외에 해태전자도 냉장고와 세탁기를 수입하고 있으며 인켈은 일본 소니사의 대형 컬러텔레비전을, 아남전기는 기술제휴선인 일본 내셔널사의 고급 스테레오카세트를 수입하고 있다. ‘제 살 깎아먹기’라는 표현이 실감나는 상황이다.

 더구나 동양시멘트 진흥 코아 두산산업 등은 대만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지의 저가가전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89년 1백60만달러에 불과하던 동남아 국가로부터의 가전제품 수입은 작년에 3배에 이르는 4백80만달러에 달했다.

 특정 업체가 로비활동을 통해 외국업체의 수입판매권을 독점하는 것도 문제다. 한성자동차는 지난 89년 7월부터 벤츠승용차를 독일에서 직접 수입하여 국내에 독점 판매 해오고 있다. 그런데 형광등에 사용되는 안전기를 수출하던 엘바상사에서도 작년부터 이 벤츠승용차를 미국에서 사오기 시작했다. 더욱이 차종에 따라서 적게는 4백달러에서 많게는 3만달러나 싼 가격으로 수입을 했다. 이렇게 되자 한성자동차쪽에서는 작년 5월 부산지방검찰청 부산세관 국세청 등에 엘바상사가 관세를 포탈하고 있다는 진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4월말 현재 관세청에서는 미국 관세관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고 한다. 한성자동차쪽에서는 “그렇게 싼 가격으로 국내에 수입될 수 없다”며 엘바상사가 틀림없이 변칙적인 방법으로 수입을 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독점수입권을 둘러싼 이같은 분쟁은 독점수입권이 얼마나 큰 독점이윤을 보장해주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학계를 중심으로 수입에 따른 가격인하와 국산품의 품질향상 효과를 위해서 생산업자가 독점수입을 하는 것은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崔廷杓 교수(건국대·경제학)는 “기왕에 시장개방이 불가피 하다면 수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통상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생산하는 재벌이 사치재를 독점수입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것이 ‘개방의 시험대’를 통과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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