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민심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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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참모 외 안기부' 치안본부' 기무사 주1회보고 여론수렴 통로 광범위…어려울 땐 김수환 추기경 만나 비서실 '인의 장막 없다'…'듣기에 앞서 색안경 벗어야'

  姜慶大군이 전투경찰에게 맞아 숨진지 28일만인 5월24일 盧在鳳 국무총리의 퇴진이 단행됐다. 새 총리 서리는 鄭元植 전 문교부 장관. '그 인물 그 얼굴'이란 범주에서 벗어나지못한 이번개각이 이뤄지기까지 치러야 했던 국가적 낭비는 얼마나 될까.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 4차례, 분신 등 자살자 5명, 자살을 기도해 중태에 빠진 2명의 희생 외에 시민의 갖가지 피해와 불편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과연 진정한 여론은 무엇이며, 이를 수렴해야 하는 대통령과 정부는 그 여론을 어떻게 듣고 판단하는가. 적어도 노재봉 내각의 개편까지 28일간 盧泰愚 대통령과 그의 정책 참모들이 보인 자세를 살펴보면, 여론은 정부의 정책과 따로 놀고 있거나 어느 한쪽에 맞춰져 있지 않았나 하는 의아심을 갖게 했다. 이런 지적은 그동안 각계각층 인사들의 증언에서도 충분히 나타났다.

  노대통령은 여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통치자인가. 노대통령이 87년 선거 당시 민정당 후보로 국민 앞에 섰을 때, 그의 선거 홍보물에는 빠짐없이 그의 큼지막한 '귀'가 부각돼 있었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그 '귀'를 자랑하며 여론을 잘 듣고 있음을 강조해왔다. 과연 노대통령의 귀는 여론을 향해 열려 있는가. 청와대비서실에 근무하는 실무자들은 한결같이 '인의 장막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눈'귀'입 '청와대비서실'
  청와대의 공식적인 여론수렴 과정부터 먼저 살펴보자.

  대통령의 여론수렴 통로 중 가장 큰 몫을 하는 것은 '작은 내각'이라 불리는 비서실이다. 대통령과 여론 사이의 공식적인 가교역할을 맡아, 실질적으로 대통령의 눈과 귀 그리고 입 구실까지 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청와대 공보비서실 文武洪 비서관은 '어떤 여론을 어떻게 대통령께 전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항상 고민한다. 업무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것이며, 대통령 보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특히 언론에 보도되는 뉴스의 가치를 평가하고 균형을 맞춰 보고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청와대비서실은 정무 민정 행정 경제 공보 등 8개 수석비서관실과 정치특보 외교안보 정책조사 등 3개 보좌관실로 구성돼 있다. 이중 민정'공보수석비서관실과 정책조사보좌관실 등 3곳이 대통령의 공식적인 여론수렴 창구다.

  민정비서실(수석비서관 安敎德)에서는 민정수석비서관이 일주일에 한 번 대통령에게 직접 '민심'을 보고한다. 비서실 직원이 전국을 암행하면서 여론을 채취, 분석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대통령에게 전하도록 돼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저속한 용어도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보고한다.

  공보비서실(수석비서관 李秀正)은 언론에 보도된 여론을 취합, 대통령에게 매일 보고한다. 일간신문의 4칸짜리 시사만화를 포함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신문 스크랩은 요약된 내용과 함께 원본을 첨부하도록 돼 있다. 주택이나 물가 등 민생과 직결된 현안이 대두될 때는 해당 비서실 주관으로 간이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도 한다. 비서관들은 노대통령의 민심파악 통로가 '광범위하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노대통령은 청와대 밖의 사람을 만날 때마다 발언을 하기보다는 질문을 많이 던지는 편이며,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여론 수집에 열광적이라고 비서관들은 말한다.

  정책조사보좌관실을 이끄는 金學俊 보좌관은 여론수집 방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달 동안 평균 3백명 정도 만난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정치학 교수 출신으로 대통령 사회담당 보좌역을 맡기도 했던 김보좌관은 '배석하는 사람 없이 일주일에 한번 정도 노대통령을 만나 1시간 남짓 보고한다. 비서실에서 서로 짜고 대통령의 귀를 막으려 한다면 모를까 인의 장막을 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하루에 수십통씩 청와대로 날아드는 민원편지나 의견개진서, 정책건의문 등만 읽어봐도 여론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여론을 잘못 판단할 수는 있지만, 여론 자체가 차단되는 것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국군기무사령부(전 보안사) 국가안전기획부 치안본부 등은 주 1회 해당 청와대비서실로 여론수렴 자료를 보고하고 있고, 국무총리의 국정보고도 빼놓을 수 없는 여론수렴 통로다. 이른바 정보기관의 여론동향 보고가 대통령의 여론파악에 크게 영향을 끼치겠지만, 10'26사건의 발생 동기 중 하나로 지적된 당시 金載圭 중앙정보부장과 車智徹 경호실장간의 과잉충성 같은 인의 장막이 6공화국에는 없다는 것이 청와대 비서관들의 말이다.

'정보판단 기술 갖춰야 한다'
  대통령을 에워싼 비서관들의 역할은 대단하다. 입법 사법 행정 등 한 나라의 3권을 조감하는 청와대비서실의 기능은, 대통령의 권한이 막중해 최고통치권자라고 불리는 한국 정치상황을 감안하면 내각에 버금갈만하다. 朴興壽(연세대'신문방송학)교수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대통령 비서관은 여론전달 과정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박교수는 '수문장이 편협된 견해를 갖고 있을 경우에는 늘 치우친 정보를 가질 수밖에 없어 잘못 판단하게 된다'면서 '편협된 정보에서 탈피하려면 여론수렴 창구를 다양하게 열어 무작위로 사람을 만나 여론을 들어야 하며, 정보판단의 기술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여론을 듣는 창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먼저 꼽히는 사람이 金玉淑 여사다. 공보비서실에서 김여사의 대민 접촉 분야를 보좌하는 문무홍 비서관은 '대통령을 직접 거론한 기사가 여론에 보도될 때마다 비서관은 난처해지기 일쑤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가 거북하고 민망한 내용이 있을 때는 비서관들이 어물어물하기 마련이다. 그때 김여사에게 전달역할을 슬쩍 미루기도 한다'고 말한다.

  김여사가 여론파악 차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꽤 광범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비서관은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파출부 여자집배원 보모 여자운전기사 등 편향되지 않게 여러 계층의 사람을 만난다'고 말한다. 그는 또 '김여사 자신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고 접촉한 당사자에 대한 예우 때문에 만난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한 비서관은 '김여사가 여성단체 회원이나 정치적 색깔이 없는 학자들, 특히 역사학자를 자주 만나는 편'이라고 귀띔했으나, 그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거부했다. 김여사가 연극인 孫淑씨 등 문화계 인사들과 자주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춘구 의원 '직언'서슴지 않아
  노대통령이 여론을 청취하는 주변 인사중 비중있는 인물로는 동서인 琴震鎬 전 상공부 장관이 거론된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金鍾仁 경제수석비서관의 경우 공적업무 외에도 자주 단독대좌하며, 여권에서 崔珏圭 부총리'趙淳 전 부총리'羅雄培 민자당 정책위의장 등이 노대통령의 '궁금증' 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金鎭炫 과학기술처 장관이 입각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었을 때 노대통령의 개인적인 여론수렴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87년 연말 구성됐던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준비위원회(속칭 정권인수반)위원 7인도 빼놓을 수 없는 여론수렴 통로이다. 김종인 경제수석비서관 외에 李春九 민자당 의원'崔秉烈 노동부 장관'玄鴻柱 주유엔 대사'康容植 국무총리 비서실장'金重緯 민자당 의원'李進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이 그들이다. 이 위원회에 참여했던 ㄱ씨는 '대통령이 위원들을 가끔 불러 6공화국 출범 당시 세웠던 목표와 어긋나는 점이 무엇인가를 점검하곤 한다'고 전한다. 특히 이춘구 의원은 월계수회 파문이 있어났을 당시 노대통령에게 '왜 당이 시끄러운지 아십니까. 박철언 장관 때문입니다'라고 특정인을 거명하는 등 직언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사회 각계의 원로 중에서는 金壽喚 추기경, 姜元龍'韓景職 목사 등 종교계 원로들이 대통령의 '세상읽기'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한 보좌관은 '대통령이 아주 어려운 시기에 찾는 사람이 김추기경 '이라면서 '만난 횟수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외국인으로서는 조지 슐츠 전 미국무장관이 노대통령의 '친구'자격으로 '밖에서 한국을 보니 이러이러하다'는 식으로 조언을 하고 있다.

  裵秉烋  <매일경제신문> 논설주간은 5공화국 때부터 경제 분야에서 대통령의 자문 역할을 해온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는 이런 소문에 대해 '언론계 여러분과 함께 대통령을 만나곤 했을 뿐이다. '자문역'이라는 말은 과장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노대통령을 만났을 때 욕 안 먹고는 개혁을 추진하지 못한다고 진언했다'면서 '집단 이기주의 등 자기 가치만을 중시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참된 여론이 형성되기 힘들다. 각 언론사나 조사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도 제각각이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획일적으로 한 묶음으로 엮어 '이것이 여론'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이 특정인의 의견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그 의견을 어떻게 정책에 반영하는지를 대변해주는 좋은 예로 全斗煥 전 대통령과 당시 KBS 해설위원장이었던 李啓謚씨의 관계를 들 수 있다. 평소 이씨의 경제해설을 좋아하는 전씨는 이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물가안정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이씨는 나름대로 방안을 설명했고 전씨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국민에게 참아달라는 캠페인을 벌여야겠다. 신문보다는 방송을 통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 같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이씨는 KBS 텔레비전의 9시 뉴스가 끝나고 이어지는 '3분경제'프로그램을 맡았다. 물가안정을 위한 국민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청와대 측근들은 대부분 보수적 인물'  
  청와대비서실의 한 수석보좌관은 '여론은 다원'다층화돼 있다. 그 여론을 조감해 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곳이 바로 청와대다'라고 말한다. 이 수석보좌관은 또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했던 5월정국의 여론을 조감한 청와대의 '판단'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은 '화염탄'이다.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일반 시민은 왜 화염탄을 던지는 사람들을 잡아가지 않느냐고 말했다. 치안책임을 맡은 우리는 그들의 견해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 '

  대통령의 '귀'구실을 하는 청와대의 공식'비공식 여론수렴에 관한 비서실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통령의 '귀'는 분명히 활짝 열려 있다. 그렇다면 노내각 개편과 새 총리서리 임명에 이르기까지 보였던 답답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에 대한 한 여권 중진은 이렇게 지적한다. '대통령을 에워싼 참모들이 모두 노란색 안경을 썼다고 가정하면, 온 세상은 노란빛을 바탕으로 해서 보이게 될 것이다. 만약 파란 색깔의 그림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빛의 혼합으로 인해 그것을 초록색으로 볼 것이다. 노대통령 측근은 '일단 안정부터 되찾아야 한다'는 보수적 색깔의 안경을 낀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민생개혁을 원하는 이른바 민주세력은 이런 보수인물들을 '5공회귀 망령'으로 매도하고 있다. 이 틈을 타 체제를 뒤집으려는 혁명세력도 일부 가세하고 있다. 노대통령과 참모들은 여론을 수렴하기에 앞서 자신의 색안경을 벗고 민주세력과 혁명세력을 구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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