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통합파 “딴 살림 차릴 수도 있다”
  • 이홍환 기자 ()
  • 승인 199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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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씨는 지금 고난이도의 곡예를 부리고 있다. 어쩌면 마지막 곡예일지도 모른다.” 야권통합파인 한 의원의 말이다. 그러나 곡예를 부리고 있기는 통합파도 3김씨와 매한가지다. 3김총재와 통합추진파가 한 무대에서 서로 뒤엉킨 채 함께 곡예를 부린다고 할 수 있다. 난이도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 3김총재가 구상하고 있는 정계개편 곡예와 통합파가 벼르고 있는 통합의 곡예가 동시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2월쯤 본격화되리라고 예상되었던 야권통합운동은 새해초에 불어닥친 정계개편의 급변기류를 만나 가속도가 붙었다. 통합운동의 진원지인 민주당 金泳三총재의 지자제 이전 정계개편 마무리 발언이 야권통합 운동을 가속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金총재가 한발 앞서 먼저 치고나온 것이다. 민주당의 소장통합파인 金正吉의원은 “金총재의 일방적인 정계개편 발표로 평민?민주 양당을 축으로 한 통합운동은 서두를 수밖에 없다”고 함으로써 맞대결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제는 쉬쉬할 이유 없다”
결국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주축이 되고 평민당쪽에서 이에 가세하는 형식으로 지하운동의 성격을 띠었던 야권통합 운동은 이제 지상으로 나와 공개적이고 본격적인 양상으로 펼쳐지게 된 셈이다. 통합파들이 두 김총재의 그늘을 벗어난 각당에서 뛰쳐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그럴싸하게 퍼지고 있고, 그후에 이들끼리 따로 원내교섭단체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정계개편에 적극적이 자세를 취하고 있는 金泳三총재가 이미 민주당내 일부 통합파 의원들의 이탈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설이 이런 관측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평민당내 통합추진 소장파 의원의 한 사람인 李相洙의원은 “당 지도부가 통합운동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면서 “통합운동이 그동안 쉬쉬하면서 진행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공개적으로 진행시킬 것”이라고 밝혀다.

평민당내 재야입당파 인사들의 모임인 平民硏에서는 지난 4일 야당통합 문제를 운영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한 바 있고, 곧 의원총회나 당무지도합동회의에 통합논의를 공식의제로 올릴 예정이어서 평민당내의 통합운동 바람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지난 5일에는 平民硏소속 의원들이 가족동반으로 1박2일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해 통합의 ‘거사’를 앞둔 단합대회 같은 인상을 짙게 풍겼는데, 金大中총재의 측근인사인 중진급 ○의원이 이에 사전제동을 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29일에 있었던 李相洙?鄭祥容?李海瓚?梁性佑?李喆鎔(평민), 金正吉?張石和?盧武鉉?申榮國?鄭貞薰?柳昇珪?朴泰權(민주), 李哲(무소속)의원 등 소장파 13명의 공동기자회견은 통합운동의 실질적인 가시화로 풀이되고 있다. 이 기자회견은 회견 내용보다는 형식과 취지가 파격적이라는 점에서 정가의 이목을 집중 시킨 바 있다.

우선 평민?민주 양金총재의 뜻을 거스르고 소장파 의원들끼리 당 구별없이 집단적으로 조직적인 행동을 취한 것은 통합파가 최초로 연합전선을 구축했다는 의미에서 충격적인 것이었다.

더욱이 이들의 연합전선은 마침내 全 전대통령의 국회증언이 있던 날 행동으로 나타났다. 청문회가 열리기 전 이들 소장파 의원들은 따로 모임을 갖고 보충질의 시간에 의사진행발언권을 얻어 1盧3金의 청와대 타협에 따른 全씨의 형식적인 증언을 문제삼기로 사전에 치밀한 작전을 세웠으나 여의치 않자 다른 행동방법을 취하기로 의견이 모아졌었다는 후문이다. 鄭祥容?李喆鎔의원의 단상 돌격이나 盧武鉉의원의 명패투척 등을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단순사건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결국 청문회에서의 연합작전은 평민?민주 양당 통합파 의원들의 연대감을 고조시킨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 현재 통합파는 재야 출신과 소장파 의원들이 연대해서 전위부대이자 돌격대 역할을 맡고 있고, 중진통합파들이 뒤를 받치고 있다. 이들은 애당초 통합에 적극 가담하는 통합파끼리만 개별적으로 통합을 선언할 계획이었으나, 정계개편 논의가 급진전되고 이에 반발하는 다른 의원들의 숫자가 하나둘씩 늘어나자 이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가고 있다.


원내교섭단체 30명선 확보 낙관
金泳三총재는 평민?민주간의 통합을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야권연합’이라는 말을 굳이 피하면서 범보수세력의 결집을 시사하고 있다. 민주?공화의 합당설이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는 와중에서 金鍾泌총재는 계속 시기상조론을 펴며 소극적인 반면, 金泳三총재는 의외로 적극적으로 덤벼들고 있다. 金泳三총재의 이런 자세는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인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민주당내 통합바람을 최대한 막아보려는 방파제 구축이라는 풀이가 가능하다. 崔炯佑의원을 비롯해 辛相佑?金正秀의원 등 통합에 가담하는 것으로 거론되는 중진급 의원들과, 金正吉?盧武鉉의원 등 소장통합파들이 민주당의 지지기반인 부산에 지역구를 가진 의원들이라는 점에서 金泳三총재로서는 이들의 ‘반란’을 결코 가볍게 보아넘길 수 없는 것이다. 원외의 金相賢?金鉉圭부총재, 원내의 黃珞周?朴容萬의원 등 거물 중진급들도 ‘출전’태세를 갖추고 있고, 金在光 국회부의장의 경우는 평민?민주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5월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을 정도이다.

사정은 평민당도 마찬가지다. 평민당 소장 통합파의 한 의원은 “金大中총재가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제2여당론을 언급한 것은 金총재 정국구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부인하기는 했지만 민정?평민의 연합구도를 염두에 둔 구상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민주?공화의 연계에 대해 “3공을 청산해야 한다”고 양당 합작을 꼬집고 있는 趙尹衡부총재를 비롯한 중진통합파들의 움직임이 예전과 달리 조금씩 구체화되는 것도 평민당내 통합움직임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점이다. 趙부총재가 전당대회에서의 부총재경선에 불출마 의사를 곧 밝히고 통합파를 이끌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고, 호남 출신 중진급 ㅅ의원이나 오랫동안 동교동계 인물로 金총재 곁을 지켜온 서울 출신의 초선 ㄱ의원 등도 金大中총재의 우산밑에서 나와 통합파에 가세할 뜻을 비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제 金총재가 통합운동을 더이상 강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는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韓光玉의원 등 金총재 측근인사들이 최근들어 부쩍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金총재의 통합운동 진화작전이 시작된 것으로 풀이된다.

통합운동의 주된 관심거리는 과연 통합파들이 20명선을 넘어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공식?비공식적으로 양김총재가 극약처방식 정계개편 구상의 일단을 밝히고 나오자, 이에 위기를 느끼고 양당에서 통합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일부 중진급 의원들이 통합파에 가세해 당을 뛰쳐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조심스런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통합파는 30~40명선에 이르게 돼 충분히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통합파들이 양金총재의 그늘을 벗어나 딴집 살림을 차린다는 것은 현 정치현실속에서 자칫 정치적인 고아가 될 가능성이 높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통합운동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극단적인 경우에 양金총재가 고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양김씨가 지금 정치적 무덤을 파고 있다”는 통합파 의원들의 일치된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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