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본질은 계층간 소득 불균형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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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문가 신년 대담 … “갈등해소 위해 성장 희생해야” - “성장 무시하면 활력 잃어”

 90년대의 첫 해를 여는 우리 경제의 날씨는 매우 을씨년스럽다. 88년 후반부터 몰아닥친 경기둔화의 조짐이 본격화되면서 불황의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 등 각종 총량지표들이 크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근원적인 성장잠재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올해 경제전망은 비관론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지금의 경제난국은 어디에서 연유하며 우리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진단해 보기 위해 曺圭河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와 李大根 성균관대 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

李大根교수=지금의 한국경제를 ‘위기’라고 진단한다면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지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도율과 도산율이 높아져 정책금융이 대량 지원되고 이윤율의 급격한 저하 등 위기의 징후들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어 판단을 내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경제성장률 등 총량지표들이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경제를 에워싸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오늘이 파국적인 위기상황이라기보다는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위기인 셈이죠.

曺圭河전무=경제현장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최근의 위기상황은 1∼2차 석유파동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구조적 위기라고 보여집니다. 근대화 과정 30년만에 처음 맞는 새로운 위기라고나 할까요. 전경련에서도 이런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골몰했었습니다. 그런데 대책이 없다는데 다들 심각한 우려감을 표시했어요. 과거처럼 정부에 환율절하하고 금리 낮추고 세제상의 지원 등을 요구하는 대증요법으로는 해결이 안된다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죠. 몇번의 경기활성화책으로도 경기가 되살아나지는 않았던 게 이를 입증하고 있는 겁니다.

=경제침몰에 대한 우려는 성장률이 떨어지고 수출이 안되는 데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물론 과거 3년간에 비해서는 절반밖에 안되지만 6%의 성장률도 크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2∼3%의 경제성장을 이루어도 환호성을 지르지 않습니까. 정작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양대지주인 자본과 노동의 결합이 만든 질서와 그 위상이 대단히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경제질서로 자리매김을 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격렬한 것이죠.

=그렇습니다. 과거의 어려움과는 상황이 매우 복잡다기해 처방 도출이 어려운 것이죠.

=오늘의 어려운 상황은 경제논리만으로는 풀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치?사회적 혼란 등 경제외적인 악재들이 경제를 쥐고 흔드는 인상이 짙습니다. 최근 KBS와 쌍용경제연구소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을 초래하는 주범으로 노사분규와 임금인상을 꼽는 사람이 41%나 됐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물론 현상적 원인 규명으로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 접근엔 불충분합니다. 환율절상 때문이라는 응답도 31%나 됐는데 일본이나 대만은 끄떡없는데 우리는 채산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를 곰곰이 되씹어 보아야 합니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많은 요인이 저는 정치권에 있다고 봅니다.  4당의 황금분할체제니 하고 떠들고 있지만 서로 당리당략에만 골몰, 싸우고만 있지 않습니까.  지난 13대 국회에서 민생법안들이 얼마나 입법되었습니까.

=소득의 개념을 임금이라는 근로소득만 인식해 자산소득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실질임금이 올랐는지는 따져보아야 하지만 어쨌든 임금은 최근 3년간 60%나 올랐어요. 그러나 이보다 더 땅이나 집으로 자산소득을 올리는 이들이 엄청나게 많다보니 임금인상을 더 요구하게 되고 노사분규는 끊이지 않는 게 아닙니까. 또 노사분규를 경제침몰의 원인으로 보면 분규를 일으킨 사람들인 근로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노사분규를 야기케 했던 근본원인부터 규명해야 합니다. 경제체질을 더욱 허약하게 만들었던 정국불안, 사회적 혼란의 책임은 마땅히 정치권이, 좀더 넓게 보면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그 책임이 있습니다.

=노사분규 건수가 늘고 임금인상폭이 커진다고 해서 이것이 곧 경제위기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선진경제구조라는 것은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해 고임금을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많은 성과를 근로자들에게도 배분해 주어야 합니다. 결국 고임금에도 견뎌내는 경제체질로 만드는 것이 이 문제를 보는 바른 처방이겠지요. 감기가 들면 열이 나게 마련입니다. 이 열을 내리기 위해 해열제를 먹게 되는 것이 수순인데 여기엔 신중한 선택이 요구됩니다. 몸에 맞지 않아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현 경제의 문제점은 30년 동안 계속해온 양적 성장 위주 전략에서 파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주력하다보니 소득불균형이 심화되고 지역간의 격차도 날로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적성장에 너무 치중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 전략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경제의 궁극적인 목적인 성장에 따른 배분이 잘 되었느냐는 따져 보아야 하지만 계층간, 지역간, 산업간 불균형이 배태되었다고 해서 양적 성장이 필요 없었다고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런 그릇된 인식을 가지다 보면 문제를 풀기보다는 더욱 꼬이게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물론 사물의 변화는 양적 팽창 없이 질적 변화를 도모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양적 성장전략이 낳은 어두운 면을 자꾸 묻어두려고 했던 데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젠 양적성장도 하기 어려운 질곡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죠. 이런 이중구조의 척결 없이 우리경제는 체질을 튼튼히 할 수 없습니다.

=우리경제의 문제가 이중구조에 있다는 것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성장과실을 많이 받은 계층과 그렇게 못한 계층간의 갈등, 지역간 불균형 심화, 근대화된 경제부문과 상대적으로 낙후된 부문, 이런 여러가지의 불균형들이 우리경제의 성장 발목을 잡는 복병들입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앞서 있는 부문의 지원을 줄이고 과감히 낙후산업, 낙후지역에 투자를 늘려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외의존도를 줄이는 쪽으로 정책전환이 있어야 하는데 성장은 다소 희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수출 증가는 대외경쟁력을 높여 얻어야 합니다.

=이중구조 중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는 부문을 지원하되 대외경쟁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경제활력을 잃지 않으면서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방법에 지혜를 모아야 하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중구조의 악순환을 끊는 길은 제도개혁에 있다고 판단합니다. 부동산투기를 잡고 근로자의 건전한 재산형성 대책도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무시돼왔던 복지제도를 확충하는 것이죠.

=曺전무께서 하신 말씀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복지와 균형을 앞세우다 보면 생산력이나 대외경쟁력에는 부정적인 효과를 끼친다는 논란에 대해선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논쟁의 여지는 많지만 저는 성장과 복지라는 두마리 토끼가 조화될 수 있다고 낙관하고 있습니다. 흑백논리로 어느 하나를 희생시키는 것은 더욱 무모한 일입니다. 저는 지나친 복지 치중은 성장을 저해하지만 국민경제가 견딜만한 수준이면 오히려 촉진시킨다고 봅니다. 지금 당장 어느 정도의 욕구를 만족 시키지 않으면 노사분규는 더욱 격화될 게 틀림없습니다. 물론 로마시대의 ‘빵과 서커스’교훈처럼 지나치면 문제가 되겠지요.

=이중구조의 해소와 함께 저는 권력으로부터 경제활동이 좀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시장경제체제가 복원되고 고질적 문제인 외국자본과 기술의존에서도 점차 독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참 잘하셨습니다. 금융과 조세를 극단적으로 쥐고 있는 정부가 걸핏하면 기업인들을 윽박지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자유기업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습니까. 경제효율 저해는 물론 복지의 밑돈인 종자돈도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5공시절 일해재단에 기부금을 내라고 압력이 오면 어떤 기업인이 이를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왜 그같은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인가를 우선 묻고 싶군요. 우리나라는 분단상황이라는 특수성으로 방위비 부담이 많고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우위에 있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를 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선 기업인들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의식이 정치인들에게 심어져야 합니다. 또 기업공개주의도 제창하고 싶군요. 이와 함께 기업인들은 부동산투기나 재테크에 열중하지 말고 정당한 기업활동을 펼칠 것을 주문하고 싶습니다.

=재벌을 보는 국민들의 혐오감이 있다는 것을 유의하면서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기업들이 회사의 지분을 많이 소유해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사복을 채우는 등 기업윤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지적에 대해선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백보를 양보해서 기업에만 독야청청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또 기업가=악덕자본가=타도대상이란 사시적 인식은 자본주의를 안한다면 모를까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대책을 말해왔지만 우리경제를 살리는 방안은 뭐니뭐니해도 기술개발에 모아집니다. 대내외적 어려운 상황은, 특히 앞으로 가속화될 어려움 극복은 이 방법 밖에 없다는 결론입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미국과 같은 산업공동화 현상까지는 이르고 있지 않지만 제조업이 날로 침체되고 있다는 것은 우려할 문제입니다. 이를 집중 지원할 대책 마련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반기업적인 李교수와 친기업적인 제가 싸우지 않고 우리경제의 앞날을 걱정했다는 것은 퍽 고무적인 현상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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