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업의 저력,‘인간종중’에서 나온다
  • 이원호(기아산업 승용도장부 직장) ()
  • 승인 199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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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다상, 나좀 볼까요.” 일본 3위권 자동차회사인 마쓰다사의 공장장은 부하직원을 이렇게 불러낸다. 그것도 공장 사무실로 불러올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내려와서 은밀히 말을 건넨다. 현장근로자를 불러낸다는 자체가 조업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생산차질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노력으로도 비쳐졌다. 우리 기업들의 상급자가 하급자에 대해 ‘야’ ‘자네’라고 부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생산차질쯤이야’하는 안일한 생각과 권위의식이 팽배, 바쁜 아랫사람을 불러올리는 것이 예사인 우리나라 기업 현실과는 크게 달랐다.

지난해 마쓰다 자동차 공장을 견학하면서 일본이란 나라가 왜 경제대국이 됐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쉽게 풀렸다. 노사 모두 서로를 존중하는 풍토가 정착돼 있었고, 이는 곧 생산성 향상, 매출액 신장으로 이어졌다. 일본에선 평범한 이 진리가 내눈엔 놀라운 비결로 비쳐졌다.

이렇게 인격적 대우를 받다보니 일본근로자들은 회사일을 곧 자기일로 여기는 듯했다. 자동차 한대라도 더 많이, 더 좋게 만들려고 그들은 무진 애를 썼다. 만약 오늘 하루 책임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할 듯하다 싶으면 점심시간을 줄이고 잔업시간을 더 늘려 반드시 책임량을 채우고 귀가하는 것을 보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품’ ‘소모품’ 취급을 받는 우리 근로자들이 ‘어떻게 하면 오늘 일을 적당히 마치고 퇴근할까, 지옥같은 일에서 헤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와는 사뭇 달랐다. 노동과 생산에 관한 한 일본과 우리 현실과의 거리는 현해탄보다도 멀게 느껴졌다. 경제대국 일본의 강점이고 우리가 근본적으로 변신하지 않는 한 따라잡기 어려운, 무서운 힘이었다.

 내가 본 마쓰다인은 시간관념이 철저했다. 관리감독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치지 않아도 스스로 한 대라도 더 생산하겠다는 애사심을 갖고 있었다. 설사 생산라인이 어떤 이유로 중단되더라도 다시 가동되었을 때의 순조로운 조업을 위해 이들은 바삐 손을 놀렸다. 이때 부족한 부품이 없는가 점검하는 일들이 이루어진다. “고립된 섬나라에다 지하자원도 없는 처지이니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죠. 노사관계도 그렇습니다. 50~60년대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노사분규가 모두의 가슴속에 뼈아픈 교훈으로 자리합니다. 우리는 과욕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측과의 협상은 탁자위에서 바로 끝납니다.” 한 마쓰다 근로자의 말은 한국인에 대한 과시용은 아니었다.

이는 연수기간중 중식시간을 이용, 노조에서 집행하는 집회에서도 확인이 됐다. 며칠전부터 홍보가 있었던 터라 중식도시락을 먹는둥 마는둥 호기심에 가득찬 마음으로 집회장소로 향했다.  마침 노조간부가 메가폰을 잡고 몇가지 조합할동과 회사의 경영실태를 전달하고 있었다.  “상여금 10% 인상을 요구하기로 했습니다”라는 짤막한 말이 끝나자 노조원들이 동의조의 박수를 보내며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업시간 10분전에 그들은 정확히 각자의 부서로 돌아가 있었다. ‘최소한 오늘 오후조업은 틀렸구나’하는 내 통상관념이 산산조각나는 광경에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후에야 들은 얘기지만 한 조합간부는 근무시간에 집회를 한다는 것은 자기들 모두의 살인행위라고 말했다. 주어진 시간에 고품질?고생산을 하여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야만 국제경쟁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는 태연스레 설명했다.

전세계가 석유파동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살인적인 엔高까지 겹친 최악의 경제 환경에서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지만 마쓰다 자동차는 고용확대, 재고일소, 판매확대 등을 위해 전종업원이 판매전선에 나섰다.

‘한배를 탔다’는 노사의 이런 의식으로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일본 노조활동의 기본이념은 ‘행복추구’이다. 이를 위해 마쓰다 노조는 종합적 근로 조건 향상과 노사대립보다는 노사협조를 강조한다. 생산성향상운동으로 노사협의, 고용확대, 공정한 성과배분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 또 적극적인 제안 활동으로 넓은 의미의 경영활동도 노사가 함께 하고 있었다.

물론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논란처럼 사용자가 권위주의를 버리니까 노조도 따라왔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하는 점은 쉽게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굳이 말한다면 동시 발생적으로 노사화합과 산업평화를 이룬 것으로 보였다.

헤이세이(平成)景氣를 만끽하고 있는 일본, 이 나라를 경제대국으로 만든 이들 근로자들, 마쓰다인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결국 생상량보다도 근로자들의 안전을 더 중시하는 기업인의 인간존중의식이 이를 가능케 한 것으로 느껴졌다. 생산현장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오를 때 이들이 외치는 ‘안젠니야로’(안전 제일)소리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내 귓전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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