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받침돌 ‘의정지기단’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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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원 21명, 부천시의회 의정활동 감시 … ‘학교’ 개설, 전문성ㆍ 참여도 높일 계획
 광역의회 의원선거를 앞두고 온 나라가 선거열풍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30년만의 풀뿌리 정치”라고 법석을 떨었던 기초의회는 개원 한 달 반만에 남의 일같이 됐다. 정치권이나 국민이나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4월15일 일제히 문을 연 대부분의 시·군·구 의회는 5월 정국 속에서도 임시회의를 열어 동네살림 꾸리기에 나름대로 애쓰고 있지만, 방청석은 텅텅 비어 있거나 몇몇 관련 공무원만이 자리를 메워 ‘주인 잃은’ 지방자치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 부천시의회(의원 45명)는 그렇지 않다. 회의가 열리는 날이면 의원들보다 먼저 나와 방청석을 지키는 열성적인 여성시민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의원들의 발언과 시 공무원의 답변을 일일이 기록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질의하는 의원과 답변하는 시 관계자 모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단골 방청객은 바로 부천시의회 의정을 감시하고자 나선 민간단체 ‘참여와 자치를 위한 부천시민연대회의 의정지기단’(이하 의정지기단) 단원들이다. 이 기구가 발족한 것은 지난 4월15일. 의정지기단원 21명은 모두 여성으로, 평소 부천 YMCA에서 교육·환경·언론·지역생활 분야에 활발하게 참여해온 이들로 구성됐다. 의정지기단의 결성 취지는 시의회와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감시하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YMCA 활동을 통해 익힌 각 분야별 시민생활의 불편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시의회에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목표까지 세워놓고 있다.

 ‘의정지기단’의 첫 작업은 45명의 의원이 선거 때 내건 공약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수집한 것이다. 이 자료를 전산화해 ‘실천도’를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의정지기단원 成秀烈(36) 씨에 따르면 후보들이 기초의회의 역할과 한계를 충분히 모르는 상황에서 공약을 남발했기 때문에 그 실행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됐다고 한다.

“의원들, 예상보다 성실하다”
 5월27일 개원 이후 첫 임시회의가 소집되자 의정지기단원들은 바빠졌다. 방청석의 ‘녹음불허’ 규정 때문에 단원들은 두셋씩 조를 짜 방청하며 회의 요지를 기록했다. 이날 상정된 안건은 91년도 추가경정예산안, 부천시 노동복지회관 사용조례안, 부천시 사무의 동·구 위임건, 부천시립예술단 설치조례 개정안, 부천시 도시계획 기본안 등이었다. 이에 대한 의정지기단의 평가는 이렇다. “의원들의 질문에는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조리 있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내릴만했다. 시의회 의사국의 회의 준비는 성실해 칭찬할 만했다.”

 첫날 회의에서 몇몇 의원은 부천시가 예산 증액을 요청한 부천시립교향악단과 합창단 충원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의원들은 “소수만이 향유하는 고급문화 육성에 얼마 안 되는 문화부문 예산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서는 안된다” “대중문화의 탄탄한 기반 없이 고급문화에만 붕 떠서 예산을 배정하는 건 곤란하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의정지기단원들은 고급문화의 육성에 초점을 두는 시 당국과 대중문화의 저변확대에 비중을 두는 시의원들과의 찬반토론을 지켜보면서 ‘풀뿌리 정치의 참뜻’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공청회 등 민의수렴을 거치지 않고 부천시가 확정한 ‘민간자본에 의한 부천역사 신축계획’의 배경, 부천시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5개 위탁업체의 담합 여부, 모 의원이 사장인 ㅅ여객의 노선독점 문제 등이 일반 현안으로 제기됐다.

 의원들이나 의정지기단이 갖는 한계도 드러났다. 의원들은 사회복지 분야에서 한결같이 경로당을 신설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부천시는 노인복지 문제뿐만 아니라 심각한 청소년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소 소홀했다. 의정지기단원들은 “의원들이 지역정책 제시에 깊이 있고 균형 있는 감각을 갖기 위해 지역문제 전반을 파악할 수 있는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정지기단은 “상정되는 안건의 심의나 조례 제정 등이 의외로 전문적인 것이어서 제대로 감시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의정지기단은 6월부터 단원 교육과 전문가의 참여 확대를 위한 ‘의정지기학교’를 개설할 계획이다.

 의정지기단의 한 단원은 기초의회 개원 한 달 반을 평가하며 “의원·시민·공무원 모두 시행착오를 겪으며 공부하는 과정이었다. 서로 노력하면 지자제의 앞길은 분명히 밝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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