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선거 돈바람 시민이 붙잡을 때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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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총선 ㆍ 차기대권 전략과 연결돼 금권타락 과열

 전국이 ‘돈바람’에 휩싸이고 있다. 5월 위기 시국의 혼란을 틈타 은밀히 번지기 시작한 광역의회 선거의 타락상은 6월로 접어들면서 노골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더구나 선거의 과열이 민자·신민 양대 정당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심각성을 한층 더한다.

 이번 광역선거의 혼탁상은 정당 후보 공천 과정에서의 금품거래와 금권타락 선거운동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공천 과정의 금품수수설은 민자당 의원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심각하다. 민자당의 한 의원은 “兪棋濬의원 사건은 정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앞으로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가면 많은 부정 사례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라고 선거의 타락상을 걱정했다. 그는 또 “민자·신민 양당의 공천자 중에 상당수의 전과자가 포함돼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하면서 “이런 후보를 내보내는 지구당 위원장이나 현역 의원들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민자당의 중앙당 공천심사위는 전과 경력 후보자의 처리문제로 곤욕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심사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공천심사위가 지구당에서 공천한 후보의 전과 경력을 문제삼으면 해당 지구당 위원장이 나서 “그 사람이 공천 안되면 안된다”고 통사정을 하는 바람에 ‘억지춘향격’으로 공천할 수밖에 없었던, 정말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민자당 서울 노원 갑(위원장 白南治의원·민주계)에서 공천을 받고 나온 ㄱ후보는 폭행 등의 전과자로 밝혀졌다. 이런 후보들은 앞으로 더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 위반으로 이미 고발돼 있는 인사들이 공천된 경우도 있다. 서울 서초 갑(위원장 李鍾律·민정계) 서초1구의 민자당 후보 李聲九(49·부위원장·회사 대표)씨는 지난 연말연시에 자신의 인사하는 모습이 담긴 연하장 수천장을 지역 주민에게 돌린 혐의로 경실련에 의해 고발됐다. 또 서초3구의 민자당 후보 李丁煥(39·건설업)씨는 서울시 선관위에 의해 지난 1월에 고발돼 있다. 민자당 관악을구 지구당(위원장 金守漢·민주계)에서 공천을 받아 관악4구에서 나온 吳柳根(57·부위원장·회사 대표)씨도 자신의 사진과 경력이 담긴 연하장을 돌린 혐의로 지난 1월에 고발됐다.

탈당 당원 ‘반민자 연합전선’ 구축
 민자당에서도 공천 탈락에 대한 반발은 심각하다.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서울 부산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벌어진 민자당원들의 대거 탈당은, 민자당 전략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지역부터 살펴보자.

 민자당 서울시 마포 을 지구당 (위원장 姜信玉 의원·민주계)의 경우 지구당 수석 부위원장이었던 黃庚燮(51·민주계)씨가 지난달 18일 민정계 이춘응 부위원장 등 4명의 부위원장과 여성부장·자문위원 등 상당수의 당원과 함께 탈당, 민주당에 입당했다. 옛 통일민주당의 창당발기인이기도 한 황씨가 탈당한 직접적 이유는 마포6구의 공천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씨의 한 측근은 “강의원이 당원들 앞에서 황부위원장에게 공천을 주겠다고 몇 번씩 약속했다. 그런데 돈 많은 재력가에게 공천을 준 것은 명분도, 정치적 신의나 의리도 없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황씨는 마포6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온다. 마포6구는 지난해 12월 여야간 선거구 조정 당시 망원 1·2동과 성산 1·2동을 분리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선거구를 조정, 신민당으로부터 “황씨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만들었다”는 비난을 들은 곳이다.

 민자당 동작을 지구당(위원장 劉容泰·민정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곳에서는 중앙당 부녀회 부위원장이었던 金昌姬(58·법학박사)씨가 공천에 탈락되자 탈당, 신민당 후보로 동작6구에 나와 민자당 공천 경쟁자였던 金禹仲씨(49)와 겨루게 됐다.

 부산 지역의 경우는 서울보다 훨씬 심각하다. 부산은 이미 7백여명 이상의 민자당원이 탈당,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들 탈당자들 중에는 민자당 부산시 지부 부위원장 田信浩(62) 宋日永)씨를 비롯, 崔炯大(45·금정 지구당 부위원장) 金信夫(47·민주산악회 서·사하 지부장)씨 등 민정·민주계 핵심 당직자 20여명이 포함돼 있다. 공천 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은 대부분 무소속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별도의 무소속 동지회를 결성, 제3의 세력으로 등장했다. 무소속 동지회에는 부산 지역 무소속 출마 예상자 50여명 중 30여명이 가입할 것으로 한 관계자는 내다봤다.

 민자당 내부 사정에 밝은 탈당 당원들은 5월28일 성명을 통해 “반 민자당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선거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동지회 결성 이유를 밝히는 등 민자당에 공식적인 도전장을 냈다. 이들이 과연 어느 정도의 강도로 반 민자·반 김영삼 대표 운동을 펼쳐나갈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광역선거 이후 14대 총선과 대통령 선거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당수의 민주산악회 회원이 동지회에 동참, 민자당 김영삼 대표의 ‘본토’ 입지를 흔들어놓고 있다.

 민자당 아성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공천 몸살은 여전하다. 6월1일 현재 대구에서는 18명이 탈당, 이중 3명이 민주당에 입당했고 15명이 무소속 출마를 준비중이다. 경북에선 공천 탈락자 69명 가운데 31명이 탈당, 이중 13명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대구·경북의 민자당 공천자가 1백29명임을 감안하면 4명에 1명 꼴로 당내 공천 탈락자와 경쟁을 벌이게 되는 셈이다. 민자당은 이같은 사태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나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민당은 이미 현역 의원들의 탈당 사태가 속출하는 등 선거 홍역을 치르고 있다. 李喆鎔(서울 도봉 을) 金吉坤(담양·장성) 李海瓚(서울 관악 을)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은 공천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으나, 소위 ‘동교동 왕당파’에 의해 당이 비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현실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터진 것으로 보인다.

신민, 후보공천 막판 뒤집기로 홍역
 신민당내 잡음은 4월말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탈당한 세 의원 외에도 공천에 불만을 품고 있는 10명 안팎의 초선 의원들이 당 지도부를 겨냥한 ‘불화살’을 당길 기세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그 표적은 김대중 총재의 측근이면서 공천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權魯甲 의원 등 ‘측근’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겉으로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불만이 없는 의원이 하나도 없다”는 볼멘소리가 당내에서 공공연히 나돌 정도이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호남의 경우 몇몇 지역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이 공천 분쟁에 휩싸여 있다. 광주시의 경우 5개 지역구 중 동구와 서구 외의 나머지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광산2구의 경우 총재비서 출신인 金甲吉(35)씨가 가장 유력했던 후보를 제치고 공천돼 ‘측근’의 위력이 유감 없이 발휘됐다. 전남의 18개 지역구는 金琫鎬(남해·진도) 許景萬(순천) 柳晙相(보성) 등 중진급 의원 지역구를 제외한 대부분 초선 의원들의 지역구에서 말썽을 빚고 있다.

 신민당의 공천 말썽은 대부분 중앙당 공천심사위원회의 일방적인 ‘막판 뒤집기’로 빚어졌다. 서울 지역의 지구당 위원장 ㄱ씨는 “중앙당 몫이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렇다면 사전에 지구당 위원장과 상의하며 양해를 구하는 흉내라도 내야 될 것 아닌가. 공천 발표 하루 전날까지도 아무런 말이 없기에 잘된 줄 알았는데, 공천 발표 당일 명단에서 빠진 것을 알게 되는 판에 무슨 면목으로 지역구민을 만나고 어떻게 위원장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이 위원장은 또 “이런 낙하산 공천이 거듭된다면 지구당 위원장의 할 일이 없다. 공천 희망자는 중앙당이나 총재를 찾아가면 될 것”이라며 당 지도부의 전횡을 비난했다.

선거운동 기간에 1조원 풀릴 듯
 민자·신민의 양대 정당에서 이같은 추태가 잇따르는 이유는 명료하다. 지구당 위원장으로서는 광역의회 선거에서 소속 후보를 몇명이나 당선시키느냐가, 자신의 14대 총선 후보 공천과 당선 여부를 결정짓게 돼 선거가 과열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상당수 위원장들이 다음 총선에 대비한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광역후보의 공천을 이용한 ‘검은 돈’을 받기 때문이다.

 민자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이번 광역선거에서 민자당 후보의 당선이 과반수를 넘지 못하는 지구당 위원장은 사실상 14대 공천을 받기 힘들 것”이라고 부추겨, 선거 결과가 공천에 연결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같은 사정은 신민당도 다를 바가 없다. 대구·경북과 호남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의 현역의원, 지구당 위원장들은 이번 선거가 자신의 선거라는 위기의식을 가질 정도다.

 차기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대권전략까지 연계된 이번 광역선거는 여야 수뇌부의 ‘야욕’까지 겹쳐져 있어 과열과 타락은 불 보듯 환한 일이다. 더구나 엄정한 공명선거 분위기를 지켜야 할 정부마저도 전국 2백24개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1억 원에서 1억5천만 원의 지방교부금을 배정, 민자당 지구당과 합의해서 각 지역 숙원사업에 활용하도록 지시해 ‘행정선거’의 의혹을 사고 있다. 불법 선거운동을 단속하겠다는 선관위의 성명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민자당 유기준 의원에 대한 사법처리가 늦어지고 있어 탈법 선거운동이 방치되는 듯하다.

 서울 강남의 민자당 한 지역구는 최근 고속터미널 옆 초대형 음식점 ㅊ회관에서 8차례의 당원단합대회를 가졌는데 한차례에 4천만~5천만 원을 썼다고 한다. 이 행사비용만도 모두 3억 원을 훨씬 웃돈다. 민주당 서초 갑 지구당(위원장 朴燦鍾 의원)의 金載萬 사무국장은 “서초구가 정치 1번가가 아니라 부정 1번지로 변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서초2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玄相鎬(48·전 협동조합회장)씨는 “우리와 여당 후보의 씀씀이를 비교하면 한마디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면서 “서울시에 납품을 하는 회사 대표들이 시의원 후보로 나설 때는 그들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뻔한 일 아니냐”고 비꼬았다.

 현실적으로 선거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은 다음의 예만 보아도 명백하다. 현행 선거법상 가구별 방문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후보는 선거 홍보물을 우편으로 발송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 4만 명으로 한 선거구를 가정한다면 한 차례의 홍보물 발송에 우표값만 4백만원이 든다. 인쇄비와 인건비를 감안한다면 1천만원이 소요된다. 지역과 후보에 따라 개인차는 있겠으나 서울에서 출마한 여·야 선거구 한곳씩을 표본으로 삼아 자체 조사한 선거비용은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정계에 정통한 한 광고전문인은 이번 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는 1인당 최소 5억 원 이상을 쓸 것으로 진단했다. 민자당 1차 공천자 8백 22명을 기준으로 5억 원씩 쓴다고 해도 모두 4천1백10억 원을 쓰게 된다. 신민당의 경우는 1차 공천자 5백65명을 기준 할 때 1인당 1억원씩 잡아도 모두 5백65억 원이다. 이 금액은 최소액을 기준으로 했고 민자·신민 두 당의 경우에만 한정한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20일간의 단시일 내에 약 1조원에 육박하는 거액이 풀릴 것으로 보여 물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30년만의 풀뿌리 정치’가 이대로 방치되면 ‘해걸러 치러야 하는 돈뿌리 정치’가 될지 모른다는 개탄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맑은 정치는 깨끗한 정당에서 출발한다는 엄연한 진리를 새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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