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처벌보다 치료가 우선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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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뽕 상용하면 극심한 피해망상… 국내 마약환자 전문치료기관 ‘全無’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 현행 마약류관리법에 따르면 마약류는 크게 痲藥, 大麻류, 향정신성 의약품의 세가지로 나뉜다. 이 범주를 적용하면 아편, 헤로인, 코카인 등은 痲藥으로, 대마초는 大麻류로, 암페타민, 환각제 등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된다.

소위 ‘마약선진국’들에 비해 아직까지는 그 종류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 우리나라 마약류 가운데서도 80년대부터 부쩍 늘어나 현재 주종을 이루고 있는 히로뽕은 바로 암페타민류의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을 가리킨다. 히로뽕이란 일본의 한 제약회사가 만들어낸 각성제의 특정상품명인 ‘필로폰’(philopon : 일을 사랑한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의 일본식 발음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메스암페타민을 총칭하는 대명사로 통한다. 세계 2차대전중에 일본제국이 작업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군대나 공장 등지에서 반강제적으로 복용시켰을 만큼 뛰어난 각성효과를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약리적 작용을 보면 중추신경을 이완하고 억제시켜주는 아편제와는 달리 히로뽕은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각성제이므로 그 효과는 당장엔 피로감을 감소시키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 초기에는 확신감과 힘이 월등히 세지는 느낌, 도취감 등을 느낄 수도 있다. 또 식욕부진 및 입맛 억제 때문에 단기적인 체중조절의 효과도 지니고 있다. 바로 그 점을 이용해서 히로뽕 밀매조직은 ‘살빼는 데, 정력에, 피로회복에 좋은 만병통치약’이라는 식으로 수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히로뽕은 신경억제제인 아편처럼 몇차례 복용하다가 안하면 당장 재채기가 나고 콧물이 나고 오한과 떨림이 나타나는 신체적인 의존현상, 즉 禁斷현상은 거의 없는 대신 정신적 의존은 매우 높은 점이 더 위험한 요소라고 지적한다. 서울대 정신병원의 김경빈박사는 “히로뽕 주사를 몇차례 맞았다고 해서 당장에 신체적으로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안심하고 복용하다가 서서히 중독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고 말한다.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정한 한계량과 복용기간(3~6개월)을 넘을 경우 반드시 중독현상이 일어나는데, 그 현상은 주로 정신적인 것으로 환청, 환시, 환각 등 피해망상이 주조를 이룬다.

서울시립병원 신경정신과의 南亨子과장은 “대마초나 모르핀도 환각을 일으키긴 하지만 히로뽕 중독자들이 겪는 피해망상의 내용은 사실은 허구인데도 환자들에겐 너무나 생생하다”고 전한다. 흉기를 휘두르다 잡혀온 중독 환자도 알고보면 자신에겐 너무 위협적인 시뻘건 불이 달려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극심한 공포감속에서 자기방어를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지난해말 마약중독자 지정치료병원인 ㅅ병원에 수용되었던 20대의 한 농촌총각은 88년 겨울 읍내에 나갔다가 “피로회복에 좋다”는 낯모르는 청년의 권유에 멋도 모르고 처음엔 공짜로 히로뽕 주사를 맞았다가 그 효과에 매료돼 그뒤부터 자청해서 한대에 1만5천원씩에 주사를 맞았다. 한번 맞으면 피곤을 모르고 기분이 날아갈 것 같고 이틀쯤 밥을 안먹고도 견딜 수 있었지만, 그러다 보니 그 맛에 주사 횟수를 자꾸 늘려갔다. 그런 생활이 1년쯤 계속되자 히로뽕 주사를 안맞을 때는 까닭없이 무섭고, 불안하고, 사람들이 자꾸 쫓아오는 것 같아 집안에서도 문을 꽁꽁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쓰게 되기에 이르른 것. 텔레비전을 보고나서야 자신이 중독자란 것을 안 그는 망설임 끝에 경찰에 자수, ㅅ병원에 옮겨져 한달간 치료를 받은 끝에 겨우 회복되었다.

그러나 정신과 육체를 망치고 결국은 ‘약을 쫓는 인생’으로 전락시키는 주범은 히로뽕, 대마초 등 마약류만이 아니다. 마약류가 아닌 독극물로 분류된 본드 및 벤젠, 톨루엔, 부탄가스같은 휘발성용제와 아예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 감기약 계통의 ‘러미라’ 등도 마약류처럼 습관성과 중독성을 지니기는 마찬가지다.

朱王其 강원대 약학대 학장은 “비록 마약류는 아니지만 본드류야말로 종류가 많고 위험하다. 서서히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다른 마약류와는 달리 인체에 직접 작용해서 뇌세포, 신장, 콩팥을 망가뜨리고 호흡중추를 마비시키는 경우도 있다”며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본드류는 히로뽕이나 대마초와는 달리 철물점이나 문방구점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점, 일단 본드류의 맛을 본 청소년층이 자라면 또다른 마약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또다른 문제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각종 마약류상용자 숫자는 보사부 추산으로 13만 정도로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중독자일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이런 환자들을 치료하는 전문기관은 단 한군데도 없다. 다만 보사당국이 치료지정병원으로 지정한 19개 병원에서 무료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지나 한해동안 마약류 중독으로 치료받은 환자들은 3백35명에 불과하다. 이렇듯 실제 잠재적인 중독자수에 비해 입원환자가 터무니없이 적은 것은 입원환자들을 반드시 의사가 신고하도록 되어있는 규정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마약을 추방하기 위해서는 ‘마약류를 만들고 퍼뜨리는’ 밀매조직은 마땅히 강력하게 법으로 단속해야 하지만, 그 피해자일 수도 있는 단순 복용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엄격한 법 적용보다는 치료를 통해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하도록 ‘이중의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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