痲藥확산 급한 불은 껐다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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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히로뽕’사범 40% 감소… 코카인 등 ‘수입상품’ 침투 막아야

작년 한해는 ‘마약의 해’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대규모 마약류 밀조 · 밀매조직 검거, 연예인 재벌2세 등의 상습투약자 적발, 마약류 관련 폭력 · 살인사건 등이 거의 매일같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그때마다 ‘백색공포’라는 등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심각한 마약류 복용실태가 반복적으로 소개돼왔다.

痲藥을 ‘악마의 약’이란 뜻의 魔藥으로 착각하게 할 정도의 이같은 마약류 보도 ‘홍수’속에서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어느새 마약천지가 됐으며 도저히 뿌리뽑기 어려운 망국병 하나를 더 얻게된 것으로 느꼈을 법하다. 과연 그런가? 다행히도 아니라는 것이 보다 적절한 진단이다. 적어도 국민적 위기의 수준은 아니다. 급속확산의 고삐가 일단 잡힌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뿐만 아니라 “2~3년내 마약류사범 완전제압” 이란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말까지 수사당국자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는 상황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표에서 보듯 지난 85년 이후 매년 70%에서 무려 1백30%까지 가공할 속도로 불어나던 메스암페타민(속칭 ‘히로뽕’, philopon)사범의 수효가 작년에는 1천9백94명으로 88년에 비해 40% 가량이 줄어들었다. 向精神性의약품으로 분류되는 메스암페타민은 다른 마약류에 비해 사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사실상 우리나라 마약류문제의 핵심이다.

유통물량 감소로 히로뽕 가격 크게 올라

‘히로뽕’사범의 현저한 감소는 따라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며 수사당국에서는 전체 마약류의 근절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는 ‘획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정도이다. 급증추세의 고삐가 이처럼 갑자기 잡히게 된 것은 89년 2월13일 대검찰청에 마약과가 신설된 이후 대규모 공급조직의 잇따른 적발로 공급부족, 가격상승 등 수요억제 요인이 발생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공급조직의 분쇄가 곧 마약류문제의 해결이라는 등식을 입증해준 셈이다.

출범 1년째를 맞고 있는 대검 마약과(과장 柳昌宗고등검찰관)는 그동안 공급측면에서 마약류 밀조 · 밀매 · 밀수출입 조직 1백71개파 7백10여명의 계보도를 완성, 추적수사를 펴왔으며 수요측면에서는 유흥업종사자 · 연예인 · 운전기사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집중단속을 우선적으로 벌여왔다. 그 결과 수사요원 확보, 첨단 수사장비 도입, 정보수집관리 전산화, 국제협력문제 등 마약류 수사체계의 전문화를 위한 전체적인 작업이 이제 시작단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실적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이후 검거된 주요 ‘히로뽕’ 공급조직은 이황순파 이래 국내 최대밀조조직 최재도파 9명, 80년 만다린호 사건 이래 최대 원료 밀수입조직 차영수파 3명, 기업화 조직으로 충격을 준 피터팬파 30명 등으로 이들이 검거될 때까지 제조한 ‘히로뽕’의 총량은 무려 637.07kg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 연 추정생산량의 30~50%에 이르는 규모인데 그 이전 5년간의 검거자 제조량 1백83kg의 3.5배나 되며 약 3천만명이 1회씩 투약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히로뽕’ 상용(남용)인구는 한해 동안의 검거인원에 100을 곱하는 통상적인 추정치로는 20여만명, 작년에 특히 단속이 집중적으로 실시됐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최소 10만명이 넘을 것으로 어림잡아진다. 따라서 이들이 매일 거르지 않고 1회씩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에 거의 맞먹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히로뽕’을 이들 밀조범들은 생산해왔던 것이다.

총 밀조규모 중 절반에 가까운 양을 생산해온 조직들이 파괴됨에 따라 유통물량이 크게 줄어 작년 하반기부터는 가격이 대폭 오르고 일부지역에서는 품귀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히로뽕’ 상용자의 격증추세가 절정에 이르렀던 88년10월의 경우는 1회용(0.03g) 가격이 5천~1만원 하던 것이 89년 10월에는 1~3만원, 올 1월 들어서는 3~5만원으로 껑충 뛰고 그나마 부산지역 등에서는 없어서 못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불과 1년여만에 500~600%나 오른 가격은 3~5천엔(2~3만원)하는 일본, 50달러(3만5천원) 정도의 미국 등 ‘마약선진국’의 가격수준도 능가하는 것이어서 이제 ‘재벌2세 아니고는 쉽게 구경할 수 없는’ 물건이 됐다. 말하자면 ‘히로뽕 최염가지대’ 가 최고가지대로 전락(?), 사양산업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요자들은 주로 단순투약자와 청소년계층 사이에서 투약을 중단하거나 일부는 대마로 전환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검찰의 분석이다. 국내제조와 판매는 물론 국외밀반출도 어려워진 공급자들은 또다FMS 판로개척의 방법으로 서독과 함께 세계적인 ‘히로뽕’원료(염산에페드린 : 감기약 원료의 일종)의 산지이자 유출지인 대만에서 직접 제조, 일본 등에 밀수출하기 위해 대거 몰려갔다는 소문도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검찰은 국내 ‘히로뽕’ 가격이 계속 앙등할 경우 대만산 등 값싼 외국제품이 밀반입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또 현재 국내공급이 거의 없는 헤로인, 몰핀 등의 마약류는 국제적 이동에서 우리나라가 그것의 중각기착지로 이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크랙’이 대종인 미국의 코카인은 자국내에서 공급과인상태에 이르러 이미 유럽시장에서 헤로인의 양을 앞지를 만큼 꾸준한 시장개척을 하고 있으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지역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중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작년부터 각성제(‘히로뽕’)와 대마초의 밀수사범이 격감한 반면 헤로인과 코카인의 경우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검찰은 지난 88년 모델 김모양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모씨가 코카인을 흡입하고 있다고 들었다”는 ‘전문증거’를 확보, 노씨를 추궁했으나 완강한 부인으로 기소에는 실패했으나 현재 우리나라도 잠복기에서 곧 발현기에 이르러 코카인이 ‘90년대의 마약’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해당국가 수사기관과의 국제협력 등 밀반입 차단을 위한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나라 마약류의 주종인 메스암페타민, 즉 ‘히로뽕’의 수요는 공급조직에 대한 계속적인 수사강화와 함께 이와 같은 새로운 종류로 옮겨가는 국제적 추세가 반영돼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리게 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는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취약계층으로 불리는 직업군에서 모든 사회계층으로 확산되고 있고 지역적으로도 특정지역에서 전국으로 퍼지는 대중화 현상이 매우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주부 · 학생 · 회사원 마약사범 꾸준히 증가

특히 주부, 학생, 회사원 등 비교적 안전한 ‘모범계층’에서 나타나고 있는 메스암페타민사범의 격증현상은 일반국민들의 경각심을 높여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전체마약류사범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89년의 경우 각각 0.6, 2.5, 2.3%로 많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증가 정도는 지는 86년에 비해 3~5배나 되는 것이어서 국민모두가 말 그대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약류에 접촉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마약전담반 수사요원들이 밝히는 ‘히로뽕’ 유통실태에 따르면 윤락여성 · 접대부 · 유흥업소 종사자들은 많이 알려진 대로 수치심을 없애거나 술에 덜 취하기 위해 복용 또는 주사가 강요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일부 룸살롱에서는 ‘덜 취하게 하여 술을 많이 팔아주고 술맛도 좋게 함으로써 자주 찾아오게 하기 위한’ 수법으로 화채그릇 같은 곳에 ‘히로뽕’가루를 몰래 타 회사원 등의 손님들까지 중독시켜 결국 ‘백색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주부들은 미용실, 쑥탕 또는 계모임 등에서 ‘살빼는 약’ ‘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약’등으로 소개를 받아 한두번 사용하다 결국 중독돼 파국의 길로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에 사는 주부 정모(41)씨가 헬스클럽에서 그러한 꾐에 빠져 중독되는 바람에 2년여 동안 ‘히로뽕주사’를 맞아오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비관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이 있었다.

학생들은 더욱 안전지대에 있지 못하다. 호기심이 가장 많은 계층이어서 쉽게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디스코테크 등지에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종업원의 말에 접하기 시작하다가 나중엔 스스로 찾게 된다. 아니면 처음부터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기웃거리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고 수사요원들은 말한다.

평범한 학생들에게도 ‘백색의 마수’는 뻗치고 있다는 것인데 독서실 같은 곳에서 ‘시험볼 때 머리가 맑아지는 약’이라든가 ‘잠깨는 약’이라고 속여 야쿠르트류에 타서 먹게 하는 사례가 적발된 적도 있다고 한다. ‘잠깨는 약’은 특히 운전기사들에게 깊숙히 파고들어 이들이 각성제 취약계층으로 분류될 만큼 남용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히로뽕’사범의 지역적인 대중화 현상은 ‘본거지’인 부산과 마산 · 경남에서 대구 · 경북을 거쳐 서울 · 경기지역에 이르는 ‘히로뽕 띠’(전체의 93.7%)의 형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정확히는 중 · 서부지역을 제외한 동부 대도시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공급조직도 수도권지역으로의 북상현상이 뚜렷한데 이에따라 부산의 ‘히로뽕 시세’가 서울보다 더 높게 형성되고 있는 전에 없던 일도 일어나고 있다. 광주 · 전남 등 일부지역에서 남용자수가 최근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였으나 여전히 절대규모에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이러한 직업별, 지역별 그리고 연령별 대중화 현상은 지난해 처음으로 제동이 걸린 마약류사범의 급증추세가 그 고삐를 조금만 늦추어도 곧바로 가속도를 회복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요소들이다.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는 것은 곧 무엇인가.

柳昌宗 대검 마약과장은 “‘지속적인 공급조직 분쇄와 체계적인 투약자 수사’라는 공급과 수요를 양쪽에서 틀어막는 단속활동이 기본적인 대책”이라고 말한다. 밀조 · 밀매 · 밀수출입 조직에 대한 계보가 완성됐고 과학적 정보관리를 위한 전산화 프로그램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신고 · 검거 정신을 높이기 위한 보상금제도가 확충돼 작년보다 더욱 의욕적으로 뛰어볼 수 있다는 기대이다.

그러나 장비라고는 거의 유일한 마약견도 그나마 아직 실험단계에 있을 정도로, 각종 첨단탐지기, 소변반응검사시약 등 과학적 수사장비확보가 시급한 실정이고 선진수사기법도 배워야 하는 등 과제들이 많다. 국제적인 수사공조체제를 활성화하는 일도 작년에 이어 올해로 이어지고 있는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柳과장은 “마약수사체계를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 마약과 출범 당시의 계획이었는데 이외로 빨리 자리잡고 있다”면서 “예산편성 등 국가적 지원이 충분치는 않으나 2~3년내에 수사체계의 전문화를 실현, 마약류사범을 완전히 제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관리들이 흔히 쓰는 ‘근절’이란 표현 대신 굳이 ‘제압’이라고 바꿔 말했는데 이는 마약류사범이 단 한명도 없게 되는, 문자 그대로 근절 또는 박멸은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같은 ‘마약선진국’에서는 마약공급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마약정상회담’까지 벌일 만큼 마약문제가 ‘국가적 위기’로 인식되고 있는 점을 생각한다면, 또 1년내내 거의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던 선동적인 언론의 보도를 떠올린다면 “제압하겠다”는 공언이 선뜻 납득이 가질 않는다. 유과장은 이에 대해 나름대로 몇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 마약범죄계수는 9.2, 미국은 328.2

가장 객관적인 요소는 우리나라의 ‘마약범죄계수’가 통제가능권인 한자리수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마약범죄계수란 인구 10만명당 마약류사범(1년 동안의 검거자수)의 비율을 말하는 것으로 89년 우리나라는 9.2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18.7, 프랑스 55.9, 스페인 65.8, 태국 98.1, 미국 328.2 등으로 월등히 높은데 과거 10년간에 걸친 ‘사토’에도 불구하고 계수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는 일본의 예가 보여주듯 계수 20선만 해도 ‘공권력에 의한 제압이 불가능한 한계수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잡을 수 있으며 이때를 놓치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반공검사 오제도’만큼이나 ‘악명’ 높았던 ‘마약검사 하일부’가 남긴 전설적인 업적이다. 다름아닌 60~70년대에 아편과 대마를 그야말로 제압한 “세계 마약단속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아직까지는 우리의 청소년 대부분이 선진국과 달리 “부모의 통제속에 있다”는 사실도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유과장은 강조한다.

그러나 ‘마약검사’로 상징되는 공권력에 의한 제압은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향락 · 퇴폐풍조, 입시지옥과 같은 ‘마약을 권유하는’ 보다 궁극적인 사회문화적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계수 9.2’는 위험수위는 아닐지언정, 언제든지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불씨와 폭발요인을 우리 내부에 지니고 있는 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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