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일본정치의 흐름을 좌우할 지난 18일의 일본 중의원선거는 안정다수 의석 확보에 성공한 자민당의 승리와 사회당의 현저한 진출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에따라 향후 일본정국은 총선결과에 따른 여 · 야간의 관계설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탐색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참의원선거 패배 이후 여건상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중의원선거를 맞았던 자민당은 선거 초반부터 예상목표치를 과반수 의석(2백57석) 확보로 하향조정하는 등 긴장된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나 투표일 바로 직전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민당의 우세가 계속 발표되면서 자민당의 승리는 개표 직전에 이미 점쳐졌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민당의 승리는 일본 유권자들의 소비세법 개정안이나, 농정문제, 정치개혁 등 자민당의 정책일반에 대한 지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사회당 중심의 연합정권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작용한 ‘일과성’ 선택에 의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야당측은 자민당이 공식집계만으로도 2백40억엔에 달하는 엄청난 선거자금을 동원했고, 그 과정에서 거대재벌과 기업들의 자금 및 인력동원이 이뤄진 것이 여당 승리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 향후 자민당의 금권정치에 대한 공세를 가속화 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한편 나카소네(中會根康弘) 전총리를 비롯 후지나미(?波孝生) 전관방장관, 다케시타(竹下登) 전총리,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외상, 미야자와(宮澤熹一) 전대장상 등 리크루트 관련인사들이 대거 당선되고, 친 · 인척간에 선거구를 물려받는 소위 ‘세습후보’들의 진출도 두드러져 이번 선거를 통해 일본식 정치풍토의 한 단면이 드러났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선거 이후의 정국구도와 관련해서는 자민당과 사회당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공명 · 민사 · 공산 등 군소야당들의 세가 감소함에 따라, 앞으로 상당기간 자민-사회의 양당체제로 정국이 운영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참의원에서의 여야 역전의 세력분포가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자민-사회 양당체제는 자민당 일당지배와 군소야당의 할거로 특징되는 소위 ‘55년체제’와는 그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즉 참의원에서의 여소야대의 상황에서의 정국운영은 선거 직전 오자와 (小澤一郞) 자민당 간사장의 말대로 “야당이 종전처럼 자민당案에 반대할 경우 예산안이 중의원에서 성립돼도 실제 집행법안은 단 하나도 통과되지 않는” 파행적인 형태를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민당이 향후 정국운영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서는 야당과의 협조 내지는 제휴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자민당내에서는 선거 이전부터 공명 · 민사 등 중도정당과의 제휴를 주장하는 다케시타 전총리의 ‘부분연합론’과, 사회당우파까지 포함한 근본적 정계개편을 선호하는 가네마루(金丸信) 전부총리의 ‘대연합론’ 등 논의가 분분했는데, 최근에는 오자와 자민당 간사장까지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공식 거론, 귀추가 주목된다. 야당들 사이에도 사회당과 공명 · 민사당 사이의 이념 및 정책의 차이는 고사하고 이번 선거 결과 의석수에 있어서도 ‘야당연합정권’ 실현은 이미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이합집산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밖에 당내기반이 취약한 가이후 총리의 유임도 확실시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 가이후는 선거 직후 “임기 만료(내년 10월)까지의 정권담당 결의를 표명하는 등 기염을 토한 바 있는데, 곧 있을 2차 조각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산적한 정치 현안을 살펴볼 때 가이후 정권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것 또한 지적되고 있다. 국내적으로 가이후 총리는 90회계연도 예산안을 통과시켜야하고,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소비세제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만 한다.
또한 대외정책에서도 3월중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과의 구조협의 및 주일미군 방위분담금 증액문제 등의 난제들이 놓여 있고, 3월중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의 방일을 계기로 제기될 소 · 일관계 개선문제 등을 원만하게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만약 이러한 구내외 현안에 대해 가이후 총리가 잘못 대응하여 “지도력”에 타격을 입게 될 경우 아베 신타로 등 자민당 실력자들에 의한 ‘가이후 밀어내기’가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