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으로 돌아가라”
  • 여운연 편집위원보 ()
  • 승인 199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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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송환되는 홍콩의 ‘보트피플’ … 하노이측은 “못받겠다”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던 살벌한 냉전시대가 숨을 죽이면서 이제 세계 각국은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뜨거운 경쟁을 시작하고 있다.

 들끓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홍콩이 베트남 난민들을 본국으로 강제송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익추구의 한 단면일 것이다.

 홍콩은 배트남 난민문제를 중점 토의하는 18일의 제네바 유엔난민회의에 앞서 또다시 홍콩거주 베트남 난민들을 강제송환할 것으로 알려져 홍콩과 동남아시아 각국에 있는 10만여명의 ‘보트 피플’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홍콩당국은 지난 12월11일 1차로, 불법이민자로 분류된 51명의 베트남 난민들을 보도진 등 일체 외부인의 눈길을 차단시키는 엄중한 경비 속에 하노이로 강제송환시킨 바 있다. 대처 영국총리는 이들 대부분이 정치적 난민이 아니며 단지 경제적 이유로 탈출한 불법이민자임을 내세워 ‘강제송환’이란 강경책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대처 총리 “미국도 불법입국자 쫓아내면서…”
 이같은 조치에 대해 세계도처에서 거센 비판이 일었다. 미국은 “베트남내 사정이 호전될 때까지 강제송환은 중단돼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고, 교황 바오로 2세도 이례적으로 특정 정부를 향해 비판을 가하면서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소중하게 여길 것을 촉구 했다. 또한 세계 주요구호단체, 유럽의회 등도 영국 정부에 대해 이를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인간 찌꺼기’로까지 불리며 천대를 받고 있는 ‘보트 피플’에 대한 포용을 호소하면서 부시 대통령에게 홍콩의 베트남 난민들에게 ‘살 곳’을 제공하도록 선진국가들을 설득하는 일에 앞장서는 한편 베트남에 대한 경제적 제재조치를 완화할 것도 촉구했다.

 홍콩당국이 내세우는 이유를 보면 무조건 비인도적 처사로만 볼 수도 없는 사정이다. 세계 최대 인구과밀지역인 홍콩은 이제 더 이상 인간홍수를 감당할 수가 없는 지경이며 홍콩주민의 적대감, 난민수용소의 과밀해소를 위해서도 강제송환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강제송환을 두고 홍콩주민들 가운데 ‘도덕성’을 거론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최근 홍콩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90%가 강제송환에 찬성을 표시했고, 응답자중 절반이 새로 들어오는 ‘보트 피플’은 그대로 추방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한편 대처 총리는 “워싱턴도 경제적 이유로 밀입국하는 하이티, 맥시코인들을 국경에서 곧바로 추방하지 않는가”라며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조사에서는 이번 송환대상 난민들은 정치나 종교적 박해를 피해온 사람이 아니라 불법이민자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면위원회 등 인권단체는 강제송황의 즉각 중단을 요청하면서 난민분류 심사과정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강제송환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의견은 홍콩 안에서도 일고 있다. 변호사인 마틴 리 같은 사람은 “도덕적으로 그릇될 뿐 아니라 오는 97년 이후 홍콩주민들의 안전 여망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홍콩에 있는 베트남 난민은 5만7천명 정도로 전체인구 5백60만명의 1%를 점하고있다. 이 중 1만3천명만이 정치적 난민으로 분류돼 다른 정착국가로 떠나기 위해 대기상태다. 이들 유입인구는 최근 부쩍 늘어나 88년6월 이후 지난해말까지 4만4천명이 홍콩에 들어왔으며 금년에는 9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자진 귀국자도 1천여명
 강제송환이 물의를 빚고 있지만 그중에는 자진해서 송환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지난해 3월부터 실시된 UN후원하의 자진송환 계획에 따라 이미 8백74만명이 베트남으로 되돌아갔다. 이들 대부분은 “초만원 캠프에서 무작정 몇달, 몇년씩 기다리기보다 차라리 돌아가는 게 낫다”며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다.

 또한 탈출이 그들이 취할 최선의 자구책이 아니라는 베트남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5개월전 베트남 북부도시 홍 가이로 돌아온 팜밤 치엔(23)씨는 주변에 홍콩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주저없이 “가지 말라. 금방 수치와 슬픔으로 죽을 것 같은 상황에 빠지고 만다”고 충고해 준다는 것이다.

 베트남 당국이 난민 유출을 위해 오히려 묵인, 방조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베트남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왔는데 베트남측은 여전히 불법출국자는 처벌대상이란 입장만 되풀이 강조하고 있을 따름이다.

 강제송환자들에 대해 또 우려되는 것은 하노이당국의 보복조치을 가하지 않을 것인가하는 점이다. 베트남 관영언론은 지난번 1차 강제송환자는 일단 받아들였으나 앞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하노이 정책임을 못박고 있다. UNHCR 관리들은 아직까지 군탈영자를 포함, 이미 귀국한 송환자들에 대한 징계조치는 알려진 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먹고 살기 어려워 배띄우는 경제난민들은 이제 냉혹한 국제현실 속에서 노골적으로 외면당하고 있다. 밀어내면 또다시 들오고 쫓아내도 죽기살기로 달라붙는 이들의 ‘설 땅’은 과연 어디인지. 강제송환은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난민들의 안타까운 절규에도 아랑곳 없이 계속 추진될 전망이어서 베트남 난민문제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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