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넘은 분단비극
  • 이세용 (영화평론가) ()
  • 승인 1991.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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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를린 리포트

감독: 박광수
주연: 안성기 강수연 문성근

 박광수 감독의 <베를린 리포트>는 분단된 나라에서 온 세 남녀가 통일된 베를린에서 펼치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이다. 마리엘렌(강수연), 그녀의 한국 이름은 이영희이다. 프랑스로 입양되어 성장한 그녀는 양부 살인사건의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리고, 그 사건 기사를 접한 한국 신문의 프랑스 특파원 박성민(안성기)이 취재차 그녀를 찾아간다.

 마리엘렌을 찾아간 성민은 그녀가 한마디 말도 없이 총을 들이대는 바람에 놀라 도망치지만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성민은 그녀의 삶을 추적한다. 양부 살해사건의 담당 형사를 만난 성민은 그녀에게 동독으로 망명한 오빠 영철(문성근)이 있음을 알게 된다.

 성민의 노력으로 남매가 상봉하는 이 영화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그러나 이 극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인물들의 심리상태와 배경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해외에 입양된 고아 남매, 유럽에서 또다시 이산가족이 되는 이들이 겪는 좌절과 고통은 우리 민족의 비극에 다름아니다.

 더 이상 비극적일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성민이 마리엘렌과 그녀의 오빠를 추적하고 만나는 과정, 그 사랑과 이해의 과정을 추리적인 방식으로 전개하여 극적인 긴박감은 물론 관심과 호기심을 고조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감독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쓴 <베를린 리포트>에서는 감독의 개별적인 이해 및 해석이 가해진 감성의 표현단위(영상언어)를 볼 수 있다. <베를린 리포트>의 박광수 감독은 해방 이후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작가’라고 불릴 만하다.

 안성기 문성근 강수연 등의 일류 연기자와 정광석의 카메라를 비롯, 편집 음악 등 일류 제작진이 만들어낸 이 작품은 감독의 연출에 의해 분단의 비극이 어떻게 예술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베를린 리포트>의 녹음상태가 현재보다 조금 나아질 수 있다면 세계 어디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작품이다.

 베를린 장벽을 허무는 텔레비전 뉴스 화면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가 ‘서울 혹은 평양 리포트’로 곧장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마지막 장면들에서 보여주는 감동은 분단 극복의 가능성을 예고하는 듯하다.

 특파원인 성민은 영희를 데리고 베를린으로 가서 오빠와 만나게 한다. 그러나 만남의 순간은 잠시뿐, 영철을 범인으로 추적하던 형사들이 들이닥쳐 총을 겨눈다.

 이때 영희는 온몸으로 형사들의 총구 앞을 가로막고, 성민은 차를 몰아 경찰차를 훼방한다. 도망치는 영철. 하지만 생각을 바꾼 영철이 스스로 다시 나타나고 두 남매는 힘껏 포옹한다.

 느린 동작으로 처리된 이 장면에서 관객은 목이 메게 되는데 그것은 이 영화가 전해주는 이해와 사랑의 힘, 화해와 용서의 힘 때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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