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들러리 불교 탈피해야”
  • 금산사.·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1.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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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宋月珠스님

 최근 일고 있는 불교계의 대정부 규탄 움직임은 일반인에게 우선 ‘뜻밖’이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제등행렬에 최루탄을 난사한 경찰 폭력에 항거하여 26개 종단으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5월25일과 6월8일의 범불교도 대회를 통해 ‘불교탄압 규탄’ ‘폭력정권 퇴진’ ‘불교자주화’를 주장했다.

 다른 종교에 견주어 친정부적인 성향이 짙은 불교계가 정권에 반기를 든 원인은 무엇인가. 또 정권 유착의 질진 고리를 끊고 불교자주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이 시대 불교인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불교 개혁운동에 앞장서온 송월주 스님을 만나 그 답을 구해 본다. 전북 김제 금산사의 서늘한 신록보다 더 청정한 스님의 눈빛은 초지일관 흔들림이 없었다.

제등행렬을 향해 최루탄을 난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평화스러운 제등행렬을 탄압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입니다. 5월18일은 광주민주화운동과 강경대군 치사사건으로 학원과 정치권과의 대결 상황이었으니 봉축위원회에서도 날짜를 조정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사려깊게 판단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치안당국도 기왕에 진행 중이던 평화스러운 제등행렬을 강제 진압한 것은 불교를 무력하게 보고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라고 봅니다.

청년 불교인들은 이 사건을 수십년간 계속돼 온 권력의 불교 탄압과 소외정책의 연장선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불교인들이 왜 그런 대우를 받게 되었다고 보십니까?
 대승불교는 다른 사람의 무지를 일깨워주고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없애도록 하는 보살도(菩薩道) 정신이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는 시비를 초월해서 수행하는 것이 올바른 승가상인 것처럼 잘못 인식되어 사회참여나 사회고통에 동참하는 것보다는 수행에만 경향이 있습니다. 또 이조시대 배불승유정책 이후부터 오랫동안 승려들에게는 세속을 여의고 산중 수도생활이 관습화되었습니다. 이같은 전통 때문에 불교는 사회 개혁의지나, 비판 기능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승려나 신도들의 관심이 교단 운용에만 쏠렸고, 그 과정에서 일부 승려는 정권과 유착해서 편리하게 종단을 운영하고 종권을 지켜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내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정부가 불교를 사회 개혁에의 적극적인 의지나 힘이 없는 집단으로 간주하고 소홀히 취급했다고 봅니다.

규탄법회에서 청년불자가 부상했고, 길에 누운 스님이 군홧발로 짓밟히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같은 탄압을 받을 때, 불교인의 바람직한 대응방법은 무엇입니까?
 당국의 불교 탄압에 대해 대통령의 사과와 일선 경비책임자 문책을 요구한 것은 좋은데 방법론에서 ‘가두시위’는 숙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에서 목소리를 합리적으로 높여 유인물도 만들고 건의문도 내고 결의도 다지고 언론매체를 통한 여론 환기 등 평화적인 방법이 바람직합니다.

이번 사건을 제2의 ‘10·27 법란’으로 인식한 불교인들은 26개 종단으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모처럼 일사불란하게 대정부 규탄의 움직임을 보이는 듯싶었습니다. 그런데 제2차 대회를 앞두고 대책위원장이었던 조계사의 진현근 스님이 위원장직을 사퇴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처럼의 범종단운동이라고 알려졌지만 주로 청년불자와 청년학생 젊은 승려들 중심의 움직임입니다. 전체 불교인들이 심정적으로 공감을 하면서도 행동면에서는 다 동참한 것이 아닙니다.

지식인사회에서는 불교자주화를 외치는 이번 움직임을 반가워하면서도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죽고,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데도 남의 집 불보듯하다가 불교 행사에 최루탄을 맞으니 겨우 반응한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불교에 대한 불신이 깊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요.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평소에 사회개혁이나 부조리 시정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불교계가 제등행렬 과정에 탄압받았다고 해서 들고 나왔다는 것은 교권 수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고통받는 이에는 소홀하지 않았느냐는 점에서는 그런 말을 들을 만합니다.

기독교나 천주교 단체들이 인권·노동운동에 직접 참여해왔던 데 비해 불교는 ‘호국불교’라는 미명하에 대체로 친여적인 입장을 보여 왔고, 그것 때문에 정권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왔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옛날에는 ‘호국’의 개념을 ‘호왕정’과 동일시해왔는데, 오늘날은 그 개념이 ‘호정권’이 아닌 ‘호민’ ‘호정법’의 개념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종전의 ‘호왕정’이 ‘호국’의 개념으로 관습화되어왔던 전통을 과감하게 탈피해야 합니다. 불교가 때로는 ‘호정권’적인 들러리를 서고, 때로는 이용을 당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시대 바람직한 불자상은 어떤 것입니까?
 종전의 수행과 기복에 치우쳤던 의식을 ‘보살행’을 할 수 있도록 의식을 전환해야 합니다. ‘보살행’이란 다른 사람의 무지를 타파해 주는 것은 몰론, 육체적·경제적인 궁핍을 벗어나도록 해준다든가, 부당하게 탄압받는 인권을 옹호해 주는 데까지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회에 살면서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받는 고통 곧 사회苦를 해결해주는 데까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령 법당을 짓는다거나 부처를 조성한다거나 탑을 쌓는다고 하면 공덕이 되는 것으로 알고 모금이 잘되는데,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일에는 인색합니다. 그런 일이 올바른 보살행이고, 공덕이 되는 것으로 의식이 전환되어야 합니다.

불교 자주화에 족쇄가 되고 있는 법조항은 어떤 것입니까?
 당국으로부터 재산관리에 대해 간섭받을 소지가 있는 법으로 ‘전통사찰보존법’과 ‘문화재 보호법’이 있습니다. 사찰 주지의 임명에 관한 문공부 ‘등록·승인’조항이 ‘신고’조항으로 바뀐 ‘전통사찰 보존법’은 불교재산관리법보다 발전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한시법입니다. 또 문화재를 관리, 보수하는 데 당국의 감독을 받도록 되어 있는 ‘문화재 보호법’은 상호보완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문화재의 80%를 소유하고 있는 불교계가 ‘문화재 보호법’에 의해 정부로부터 문화재 보수 지원을 받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 보수비를 받기 위해서는 당국에의 접근이 불가피하니 ‘호정권’적인 경향으로 끌려갈 부담이 있습니다. 불교 자주종단을 만들려면 민법상 보장된 재단법인체로 바꿔야 하는 데 그 과정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위해 정권과 결탁하여 불교의 자주화를 가로막고 교단을 분열시키려는 행위에 단호히 응징할 것”을 결의했고, 조계종 전국 신도회 회장의 사무실 폐쇄 등 일련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교단 안에서의 쇄신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까?
 종단에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종도들을 이용한다거나 불교를 정부에 예속시키는 행위는 부당합니다. 승려와 종도들의 의식이 깨어나면 그같은 일은 자연적으로 없어지고 그런 사람은 자연히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그런 일이 없도록 제동을 걸고 비판해야 하지만, 의식도 안깨인 상태에서 몇 사람의 물리적 행사로는 쇄신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젊은 승려들의 의식이 깨어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80년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재직 중에 계엄사의 의해 강제사직당했던 경험에 비추어 오늘의 젊은 불도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텐데요?
 지속적인 개혁의 목소리를 가져야지 성급하고 과격한 혁명적인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더 엄청난 폭력을 불러일으키고, 잘못하면 도리어 후퇴시킬 수도 있습니다. 사회개혁을 위해서 의식을 갖되 논리적으로 연구, 정리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비폭력적인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시국이 혼란스러울 때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의 시국관련 발언은 나름대로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집니다. 불교계 종정 추대가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깥에서 알려진 것처럼 종정추대 문제로는 종단이 큰 진통을 겪고 있지는 않습니다. 행정은 총무원장 중심제이기 때문에 종정 부재상태여도 행정에 지장은 없습니다. 종정은 ‘법’과 ‘진리’를 대표하는 정신적 구심점으로 필요하지만, 종정이 과연 시국 관련 발언을 하실지는 의문입니다. 앞으로 수행력도 있고 정신적으로 종도를 지도하며 국민 대중을 정신적으로 향도하는 역할까지 겸비한 ‘정신적인’ 종정이 추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사회에 눈을 뜨시게 되었습니까?
 80년 10·27법란을 겪은 뒤부터 관심이 구체화되었지만 그전에도 의식은 갖고 있었습니다. 사회 부조리와 모순이 심화되면 사회가 혼탁해질 뿐만 아니라 불교인·사찰까지도 피해를 입습니다. 이처럼 사회와 종교가 공동 운명체인데 불자들이 그런 점을 외면하고 사찰만 지키거나 교단일에만 치우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도 根本苦를 없애는 일뿐 아니라 그 당시 사회의 계급 제도를 타파하여 갈등, 인종간의 갈등, 국가간의 갈등을 해결해서 평등을 실현하려고 했습니다.

4일 외국어대학에서 발생한 정원식 총리서리 폭행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정치권력에 의한 구조적인 폭력도 배제해야 되지만 사회개혁을 위해 폭력에 의존하는 것도 배제해야 됩니다. 정총리 사건을 빌미로 정부에서 질서를 잡는 것은 좋지만 민주발전과 분배정의를 실현하는 개혁을 부단하게 가시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그런 개혁은 안하면서 공권력만 행사하면 그것은 부도덕한 공권력이므로 또다시 국민에게 불신받게 됩니다. 현정권은 반드시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부단하게 개혁을 가시화해야 됩니다.

정총리서리가 외국어대학에 간 행위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달 전에는 교수였지만, 그 당시는 국정을 요리해야 될 내각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더군다나 김귀정양의 죽음으로 학원과 정치권과 예리하게 대치되어 있는 상태인데, 그런 것도 지혜롭게 살피지 않고 단순히 과거에 교수·학생간의 약속이라는 순진한 생각만으로 강의하러 간 것은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간다고 하면 경호조처도 하고, 사건 발생시 수습 조처를 강구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시국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 아닌가 여겨집니다. 일단 국정을 담당한 내각 총수의 입장에서는 작은 일을 미루고, 비상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여론을 수렴해서 개혁조처를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위방불립, 난방불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위태로운 곳에는 가서는 안되고 어지러운 땅에서는 살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정치권과 학원가의 예리한 대치상황에 내각 총수가 경호조처도 없이 갔다는 것은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정총리서리 사건은 운동권 학생에 대한 사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런 가운데 전교조 교사 1천5백여명의 교직 박탈 또한 그에 못지 않은 폭력이 아니었느냐는 의견이 개진되기도 합니다.
 교직을 박탈당한 사실을 마음아프게 생각합니다. 정총리서리를 향한 학생들의 폭력도 있어서는 안되지만, 전교조 선생님들의 고통도 해소되도록 당국과 대화를 통해서 구제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사건으로 운동권 학생에 대한 여론이 나빠졌습니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해왔다고 보십니까“
 학생운동이 민주발전이나 사회개혁하는 데 있어서 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광주학생운동, 4·19운동, 6·10대항쟁에서 보았듯이 학생운동의 긍정적인 기여도는 인정하지만, 지나치게 과격해져 혼란으로 치닫는 것은 경계해야 됩니다.

강경대군 치사사건과 이번 사건을 놓고 보면 시민의 여론이 상황에 따라 쉽게 휩쓸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학생의 폭력이 부당하다는 국민의식은 다른 폭력도 부당하다는 인식으로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질서유지를 내세워 강권정치를 할 경우, 학생폭력을 비판하는 국민 여론은 바로 또 정권을 비판하는 데로 갈 것입니다. 민주발전이나 경제정의실현이나 사회복지실현을 부단하게 가시적으로 추진하면서 정당하게 공권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정권유지의 입장에서 공안정국으로 끌고 가면 여론은 또다시 돌아선다는 점을 정치지도자들은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로서 분배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자유민주주의국가이니 산술적으로 똑같이 분배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부의 편재를 막기 위해서는 가진 사람들의 의식개혁운동을 전개하면서 토지 공개념 입법강화, 금융실명, 과표 현실화, 세제개혁조처 등 제도적인 제동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경실련 통계로 보면 부동산 투기로 불로소득한 돈이 88년도에 2백20조원, 89년도에 3백조원, 90년도에 2백60조원이고 91년도엔 2백80조원이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1천만 노동자들의 연간 수입은 60조원입니다.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하는 사람을 보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근로자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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