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관여’인가 불의에 대한 비판인가
  • 편집국 ()
  • 승인 1990.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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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이에 따라 내정간섭으로 해석할 수 있는 디아스대주교의 발언과 천주교 내의 보혁갈등을 엿볼 수 있는 함세웅신부의 글 중에서 쟁점 부분을 뽑아 싣는다.

 “여러 주교님들께서는 교회법이 요구하는 바 교회 권위의 필요한 사전 인가도 없이 스스로 ‘가톨릭’이라 자처하는 일부 단체들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한 단체들은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흔히 주교님들의 사목적 권위를 감히 침해하려 하고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가톨릭공동체 자체 안에서도 오해를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 춘계 주교회의에서의 연설(89.3.7)

 “사제는 주교의 허락없이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됩니다. 사제는 또 어떤 정치적 행위에 연루되어서도 안됩니다. 文신부는 이 두가지 점을 간파했다고 생각합니다. (교황)성하께서는 문신부와 林양을 만날 계획이 없습니다. 문신부의 訪北이 바티칸의 원칙, 즉 사제가 지켜야 할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문신부의 행동은 바티칸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민주주의의 맹아기, 다시 말해 유치원생 정도라 볼 수 있죠. 그런데 마치 대학생인 것처럼 행동하려 합니다. 남의 말에 귀기울이는 문화,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자세가 아쉽습니다. 한국에 있어선 데모크라시(민주주의)가 데모크레이지(시위를 일삼는 것)로 바뀐 것 같아요.“ ― <중앙일보>와의 인터뷰(89.9.26)

 “일부 교회 인사들의 최근 행동과 발언들이 신자들과 예비신자들 가운데서 물의를 일으키고 심지어는 수도공동체들에까지 분열의 씨앗을 뿌렸으며, 한국사회 안에서 가톨릭교회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때때로 그들이 강론대와 제단마저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오용해왔다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 한국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 연설 (89.10.17)

 “한국의 한 성직단체가 성직자의 계급제도에 대립하여 일하고 있으며 불화를 심고 심지어 수녀회까지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 추계 한국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총회 연설(89.10)

 70년대 유신독재 상황에서 사제들은 믿음의 이름으로 이에 저항하며 나름대로 예수의 교훈을 따라 억울한 이들의 벗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쇄신행동에 익숙하지 못한 나이 든 분들과 교구장직을 맡은 몇몇 책임주교들은 정부 · 여당의 궤변과 뜻을 같이하여 사제들의 정치참여는 불가하다는 묘한 표현으로 사건의 진상과 사제들의 진의를 흐려놓곤 했다. 사제들의 정치관여는 분명 거부감을 주는 해위이다. 그런데 억울한 이를 위하여 불의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과연 정치관여인지 우리는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

 교황대사의 인터뷰 내용은 위험수위를 넘어 문규현신부, 임수경양의 방북문제와 관련된 사목적 대담이라기보다는 정부 · 여당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발언이었고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 것은 한국인의 민주화 요구를 유년기에 비유했고 아직 민주주의를 이룩할 정도로 성숙한 국민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교황대사는 누구인가? 그는 바티칸의 외교관이다. 외교관은 그 특성상 주재국의 국민과 운명을 함께 해야 한다. 더구나 교황대사는 외교관에 앞서 사복자이기에 여기에는 사목적 의무가 하나 더 부과되어 있다.

 교구란 허울 좋은 이름일 뿐 사실상 교회공동체의 기초적 기본단위는 본당이다. 교구라는 공동체 개념은 구체적인 경우 관념에 불과한 현실이다. 신학적으로는 교구가 교회공동체의 기본단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란 뜻이다… 오늘의 교구 및 교구장제도는 현실적으로 부적합할 뿐 아니라 성서적 공동체 실현을 위해서 때로는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깊이 재고해야 할 숙제이다.

 이상적 공동체 실현을 위한 신앙인의 노력은 끝없이 반복되는 쇄신운동이다. 따라서 敎階제도 또는 제도로서의 교회는 결코 평신도들의 자발적 운동과 자생적 노력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다양성은 교회의 본질적 특성 중의 하나이다. 최근 주교회의에서 몇차례 언급된 바 있는 ‘公認되지 않은 단체는 천주교란 말을 쓸 수 없다’는 주장은 이런 의미에서 시대착오적이며 퇴행적이다. ‘가톨릭’이란 (용어는) 결코 법적으로만 제재될 칭호가 아니다. 그것은 법 이전에 세례받은 신앙인이 선택한 공동체이며 만인이 공유할, 이름 그대로 보편적인 가치이다. ― ‘교회 쇄신을 위한 근원적 성찰-교회내의 민주화를 지향하며’ 《월간 사목》 90년 1월호에서 발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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