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락추구는 사회도피 욕망을 생산력으로
  • 김열규(서강대교수 · 국문학) ()
  • 승인 199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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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교육 · 군대 등 억제장치 不實로 시민정신 더욱 ‘위태’

 겨울 저녁, 서울의 서쪽 하늘에는 피멍이듯 노을이 끼고 암울한 스모그의 장막이 내린다. 날이면 날마다 마치 다시는 내일이 없을 듯이 한겨울 서울에는 어둠이 지고 밤이 온다. 그리고 인간의 욕정에 불을 당긴다.

 그럴 무렵, 우연히도 강남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천박한 네온의 불빛으로 해서 드러나는 것은 욕정의, 쾌락의 기호들이다. 그것은 즐비한 술집이요, 촘촘히 박힌 숙박업소요, 틈틈이 곁들어 있는 종교집회소들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깨닫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 강남에 가서 하는 짓이라고는, 마시고 잠자리하고 그리고 비는 일. 해서 그것이 강남에 몰려드는 시민들의 삶의 3박자라는 것, 바로 그것이다. 빌고 마시고 잠자리하고 한다고 순서를 바꾸어 말해도 상관이 없지만 이때, 딱한 것은 종교마저도 인간욕정을 부추기고 있는 듯이 느껴지는 점이다.

 하지만, 그 기묘한 삶의 3박자가 강남에서만 헐떡이고 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 천호대교 건너 네거리 일대, 영등포 로타리 근처, 신촌의 전 지역, 연신내 근처…. 보기를 들자면 장안의 한다 하는 거리는 모조리 블랙리스트에 올라야 한다.

 술과 성, 범죄, 더러는 마약에다 인신매매까지 득실대고 있는 거리에서 내일이 있는 것을 믿으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쾌락을 좇고 있다.

 다들 자포자기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억제되기 위해서도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욕망이 노다지로 풀어질 수 있는 것은 인간을 포기하거나 살기를 포기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탓이다.

 사회는 워낙 승화된, 억제되어서 승화된 욕정이나 욕망만이 사회화되도록 요구한다. 그리하여 욕망이 한 사회의 생산력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만 한 사회는 인간성을 지닌 사회다운 사회가 된다.

 지금 우리들에게 욕망과 욕정이 얼마만큼이나 억제되고 그리고 승화되어서 생산력이 되고 있을까? 이땅에서 가진다는 것, 누린다는 것, 그래서 사는 것 같이 산다는 것은 어느새엔가 욕망억제의 핀을 뽑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리하여 욕망을 순간으로 자기파괴의 폭탄으로 탈바꿈하게 만듦을 의미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우리들 각자에게 욕망억제, 욕정억제를 위한 장치가 얼마나 작동하고 있다고 믿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 사회의 욕망억제를 위한 대표적인 장치들, 말하자면 종교 · 교육 · 군대는 제대로 억제구실을 발휘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해도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욕망억제의 3대장치가 오히려 욕망들을 부추긴 한 때는 없었는지 되물어보고 싶다.

 무제한의 욕망에 밀린 향락과 사치는 자포자기의 몸짓이면서 아울러 절망적인 도피의 몸짓이다. 어떤 죄악의식, 차마 인두겁 쓰고는 못할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 못먹을 돈을 꿀꺽 삼켰다는 생각, 양심을 팔아넘겼다는 생각 등등… 명확하게 의식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마음의 한쪽 바다에 스물거리고 있는 이런 등속의 거리낌이 없고는, 그래서 그것들에게서 억척같이 도망치겠다는 충동 없이는, 사치와 향락으로 뒤범벅이 된 욕망의 나락에 자신을 메어칠 수는 없다. 그런 게 인간이다. 서울에 밤이 내리면 사람들은 필사적인 도망자의 발악이듯이 향락의 거리에 몰려든다. 낮에는 작심한 듯이 꺼림칙한 일들을 저지르고 그리고는 밤이면 억제되지 못한 욕망의 충동대로 성과 술의 마취를 찾아든다.

 인생의 절반은 밤이고 그 밤의 3분의 2 정도는 잠이다. 그리고 그 잠의 또 절반 가량은 꿈이다. 꿈에서 우리들은 밤마다 욕정의 정화, 욕망의 승화를 훈련받는다. 욕망을 억제하고 승화시키기 위해서도 우리들은 잠자고 그리고 꿈꾸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욕망은 채우기 위해서도 있지만 누르기 위해서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채움과 누름은 욕망이 지닌 두 다리와도 같다. 어느 한쪽이 잘려나가서는 욕망, 그 자체를 위해서도 이롭지 못하다.

 누름의 장치가 통으로 망가진 상태에서 욕망 그 자체가 망가져가고 있다. 인간욕망이 죄가 되고 파괴가 되고 패퇴가 되어가고 있다. 욕망이 성취동기가 되기를 그만두고 있다. 서울의 밤거리는 즐기고 있는 게 아니다. 망가져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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