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바람’ 쿠바장벽 넘을까
  • 여운연 편집위원보 ()
  • 승인 199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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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 ‘사회주의 死守’ 천명 불구 점진적 변화 가능성

 “쿠바는 독재정치의 치욕스런 사슬의 고리가 아니라 자유의 보루여야 한다.” 1953년 당시 20년간 쿠바의 실권을 장악해오던 독재자 바티스타 정권을 향해 혁명아 카스트로는 이렇게 외쳤다. 그로부터 6년후 바티스타 축출에 성공했던 카스트로는 금년들어 집권 31년째 장기독재의 아성을 고수하고 있다.

 ‘자유의 보루’를 사수하겠다던 그는 이제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마저 몰락시킨 자유화 바람이 쿠바를 혹 ‘오염’시키지나 않을까 집안단속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눈은 동구권의 反공산주의 여세가 대서양을 성큼 넘어 카스트로의 공산통치까지도 종식시킬지 모른다는 기대(?)로 쿠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동유럽국가들의 민주화 변혁이 절정을 이루었던 지난해 12월 카스트로는 한 대중연설에서 쿠바가 ‘사회주의 최후 수호자’로 남을 것임을 역설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동구국가들이 공산통치에서 탈피, 전세계가 미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될지라도 쿠바는 결코 ‘양키 제국주의’의 종속국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는 주변의 변혁에 초연한 반응을 보였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매춘 · 마약 · 도박 · 빈부격차 등 해악적 요소들을 수반케 된다고 지적하면서 그는 동구의 변화를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 방식으로 흐르고 있는 점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카스트로는 또 지난해 4월 고르바초프의 쿠바방문에 즈음해 “야자수가 소련에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쿠바의 사회주의는 소련의 그것과 똑같을 수 없다”며 페레스트로이카의 수용설득을 전면 거부했다. 중남미의 대부분 국가와는 달리 실제 선진국 수준의 복지정책으로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카스트로는 올해 신년사에선 “쿠바는 어떠한 문제도 타개해나갈 수 있는 정치 · 도덕적 기본요소를 구비하고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사회주의의 길에서 후퇴시킬 수 없다”고 밝혀 사회주의를 굳건히 고수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정통 사회주의체제의 결속을 촉구하는 제스처로 카스트로는 내달중 북경을 방문할 예정이다. 소련과의 밀접한 우호관계로 중국과는 30년 동안 소원해왔던 것이지만 지난해초 “마르크스 · 레닌주의 고수인가, 죽음인가”라며 카스트로가 정통 사회주의 고수를 주창하고, 북경 유혈진압사태 당시엔 중국당국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급속히 가까워져왔다.

 그러나 그의 초지일관 강경입장에도 불구하고 동유럽의 혁명적 변화는 쿠바와 카스트로를 어쩔 수 없이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근의 국제적 움직임은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은 쿠바경제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쿠바 대외무역의 80%가 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코메콘(동구경제상호원조회의)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코메콘이 엄격한 중앙계획경제로부터 시장중심의 무역제도로 전환케 될 경우, 쿠바는 어쩔 수 없이 경제적인 고립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군장교 일부 이탈 … 대학가도 술렁
 또한 지난 81~85년 2차5개년 계획 당시 연평균 3%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던 쿠바경제는 그후 연4년째 후퇴를 거듭해왔다. 카스트로가 지난 86년부터 개시한 이른바 ‘오류의 수정’캠페인이라는 정통 공산당노선의 통치방안을 계속 고수하는 한, 경기침체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전망이다. 경제적 침체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쿠바의 관영언론들이 소련과 동구권에서 전개되고 있는 움직임을 거의 숨김없이 보도함에 따라 더욱 불을 당겨주고 있다. 카스트로가 끊임없이 ‘도덕적 완벽성’을 추구하고 있음에도 고위관료들과 군장교들의 이탈현상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7월 마약밀매관련혐의로 군부실력자 아르날도 오초아 소장을 총살형에 처한사건도 실상은 마약관련보다 카스트로의 위험적 도전세력이란 점이 크게 작용됐던 것으로서 그의 집권 이래 ‘최대의 정치위기’ 였다. 또 이달초엔 아바나 대학생 2명이 야당정치조직 결성 및 동맹휴학 모의혐의로 체포됐다는 소문이 나도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쿠바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전면 거부하고 있긴 하나 역시 소련과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따라 그 변화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랜 맹방인 ‘쿠 · 소’ 양국관계는 지난해 여름 사회주의에 비판을 가했다는 2종의 스페인어판 소련출판물을 등록을 취소시키면서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연43억달러의 원조를 제공해오던 소련이 국내 경제형편을 이유로 쿠바에 대한 지원부담의 발을 점차 빼려하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여전히 美 동부해안의 군사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쿠바에 장거리 정찰기를 배치하고 또 카리브해안의 전략 해군기지로 이용하는 등 소련의 중요한 군사 · 정보 요충지란점 때문에 그 우호관계는 쉽사리 깨어질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모스크바-아바나가 비록 이념적 골이 깊에 패인다 해도 양국관계는 크게 변함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쿠바는 민주화혁명 이전의 몇몇 동유럽국가보다 차우셰스쿠 치하의 루마니아에 가까운 것으로 비교되고 있다. 그러나 쿠바가 독재자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해도 결코 루마니아와 같은 끔찍한 유혈사태까지 발생되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中南美문제 전문가들은 만약 국제사회가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에게 가했던 것과 같은 압력을 카스트로에게 요구하기 시작한다면, 쿠바의 내압과 함께 이런 외압이 합쳐져 보다 평화스러운 변화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란 낙관적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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