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목사의‘꿈’,여전히 먼 길
  • 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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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백인청년이 임신중인 아내의 관자놀이를 권총으로 쏘아 죽인 뒤 제 아랫배를 향해서도 방아쇠를 당긴 다음, 흑인이 범인이라고 경찰에 신고, 그러자 보스턴 경찰은 재빨리 흑인동네를 포위하여 한 흑인청년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신문과 방송들은 연일 이 살인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흑인 ‘용의자’와 흑인사회를 싸잡아 비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은 부인에게 걸려 있는 거액의 보험금을 탐낸 남편이 저지른 소행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일이 이렇게 되자 범인은 강물에 투신 자살을 함으로써 일단 막을 내렸다.

 민권운동가들은 미국사회의 흑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잠재의식이 얼마나 뿌리깊고 넓게 퍼져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보기가 이 사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20년전에는 ‘쿠클럭스 플랜’(KKK) 하나뿐이던 인종증오단체가 지금은 무려 2백50여개로 늘어난 현실에 대해 흑인 민권지도자들은 탄식한다. 과거에는 인종차별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렇지도 못하다고 이들은 안타까워한다.

 민권운동가이자 평화주의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평소에 말하기를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자식들이 피부색깔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 됨됨이에 따라 평가받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꿈이…”라고 하였는데, 그의 생일이 연방공휴일로 선포된 지 5년이 되는 지난 1월15일은 킹 목사가 살아 있었다면 회갑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22년전 백인 인종차별주의자의 총에 맞아 3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비폭력주의 혁명가, 그의 평등을 향한 꿈은 과연 지금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가. 얼핏 살피기에는 오늘날 미국의 흑인지위는 크게 향상된 것 같이 보인다. 사상 최초로 민선 흑인주지사가 나왔는가 하면 별을 4개나 단 합참의장  자리도 흑인이 맡고 있다. 대통령이 상원의 동의를 얻어서 임명하는 연방 고급 공무원직에 42명의 흑인이 등용되어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각료 중에도 보건후생부장관은 흑인이다.

 그러나 극소수의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흑인, 즉 2천9백80만명이 주택, 교육 및 취업에 있어 높은 차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흑인들의 극빈자수는 백인의 3배나 되고, 실업률도 백인의 3배에 이른다.

 <90년대 미국 흑인현황>을 쓴 데이빗 스윈튼 교수는 “지난 10년간 미국이 이룩한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백인소득과 비교한 흑인의 1인당 연간소득은 78년 55.7%에서 88년에는 59.5%로 거의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고 가족 평균수입의 경우는 오히려 78년 백인의 61.3%이던 것이 88년에는 58%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법률상으로는 평등이 보장된 사회이지만 실제로는 차별의 너울이 여기저기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 흑인을 둘러싸고 있는 미국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동안 백인들의 불만은 소수민족(흑인을 포함한)에 대해 정부가 지나친 특혜를 베풀어주고 있다는 것이며, 연방정부의 이른바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비난이 집중되고 있다.

 이 정책은 정부가 교육, 취업 및 기타 상업행위에 일정한 비율의 몫을 따로 떼어내어 소수민족과 여자들 처우문제에 이를 할당, 우선권을 인정해주도록 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백인들은 이 정책이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백인에 대한 역차별정책이 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백인들의 불만은 연방대법원에서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불리한 영향을 주는 판례가 나온 뒤부터 더욱 커지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일찍이 레이건행정부의 보수주의노선에 맞춘 보수적 우파성향이 짚은 판사들이 다수파를 이루고 있는데, 민권운동의 측면에서 볼 때 이들은 그동안의 모든 발전을 지난 60년대로 후퇴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많은 백인들이 학교의 흑 · 백 통합 교육같은 정책에는 대부분 찬성하면서도 그 원칙을 적용하는 일에는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말하자면 이상과 현실의 엄청난 괴리현상을 동시적으로 나타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여론조사에 나타난 흑 · 백 인종문제에 대한 지난 10년 동안의 변화는 거의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흑 · 백 통합교육에 찬성하는 백인들이 10년전에는 49%였으나 지금은 93%이고, 이웃에 흑인이 이사오지 못하게 할 권리가 있다는 백인이 그때는 61%였으나 지금은 23%로 줄었다. 그리고 만약 자기가 속해 있는 정당에서 유력한 흑인후보자가 대통령에 출마하면 그를 찍겠다는 백인이 37%에서 81%로 늘었으며, 흑 · 백간의 통혼을 반대하는 법이 있어야 한다는 백인의 분포는 61%에서 23%로 크게 줄었다.

 킹 목사의 꿈은 아직 다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만약 그가 무덤에서 나와 오늘의 현실을 보면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꿈이 아니다. 그것은 투쟁해서 쟁취해야 할 당당한 우리의 권리인 것이다”라는 악에 바친 제시 잭슨 목사의 말에 흑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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