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선거와 정치와…
  • 최일남(소설가·본지칼럼니스트) ()
  • 승인 1991.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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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충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지난주의 광역의회 의원 선거에서도 여성 당선자 수는 눈을 씻고 보아야 할 정도였다. 섭섭하다. 국회의원과도 다르다. 지역살림을 꾸려갈 의회에 여성들의 진출이 이처럼 미미해서 되겠는가를 서운해 하는 관점을 떠나, 여성과 선거는 필경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를 생각케 한다. 그나마 거지반 여당 아닌가.

지방의회가 되었건 국회가 되었건 간에 반드시 의원 자격으로 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홍일점' 수준의 소수로 참여하여 분투하는 것도 좋지만,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다양한 이익집단을 만든다든가 삶의 질을 높이는 활동에 가세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실질적일 수 있다. 그런 측면의 여성단체는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만한 기회를 맞아 각급 의회에 뛰어드는 모습도 많이 보고 싶었다. 다다익선의 놀라움을 통해 한 사회의 유연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산업폐기물 흘려보내듯 쓰는 돈
 하기 쉽고 듣기 좋은 소리일 법하다. 남녀 차별의식은 둘째요, 여성이 여성을 못미더워하는 풍토는 셋째다. 왕년의 장영자 같은 큰손이 아닌 바에야 3억이요 5억이요를 비오는 야음을 틈타 산업폐기물 버리듯 쓰는 돈이 없어서도 그짓 못하겠다는 거부의 손짓이 보이는 것 같다. 진창을 걷는 듯한 선거전을 두고 누군들 토악질의 역겨움을 느끼지 않았으리오다. 그 정도의 선거비용이 있으면 평생동안 편히 먹고산들 누가 탓하랴. 값있게 인심 쓰면서 깨끗한 일생을 보냈다는 칭송마저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쳤다고…. 이런 등돌림의 추세가 낮은 투표율로 나타났다고 다들 믿는다. 이런 때 여성의 의회 진출을 운위하는 것조차 허망할밖에 없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별다를 게 없다. 우리보다 사정이 좀 나을 따름이며, 더 못한 부분도 있다. 6년 전 가을,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페라로는, 당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겪은 선거운동의 어려움은 무엇이었느냐는 기자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 것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었다. 미국 역사상 여자 부통령 후보는 처음이었으므로 민주당 사람들마저 나를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맸다. 당신들 멍청한 신문기자도 쩔쩔매지 않았는가" (한국일보 85년 11월2일자 장명수 칼럼). 최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에디트 크레송을 역시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로 임명하여 내외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을망정, 여성 일반의 정치적 지위는 매우 낮다. 저 지난해 봄 그곳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녀평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변한 여성은 50%에 지나지 않았다. 여성장관 · 도지사도 더러더러 있고 유럽의회 의장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여타의 유럽제국에 비해 여권의 후진국을 때로 자처한다. 미테랑 대통령부인이 혼자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기도 한다는 소문은, 그러나 부럽다. 그런 ‘여성 후진국'의 대통령부인을 갖고 싶다.

마침내 만나는 곳은 ‘존경받는 인간'
그렇다고 '철의 여인'이니 '여왕벌'이니 소리를 듣던 대처가 아침마다 손수 남편 밥상을 차렸다는 사실을 들어 ‘그것 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대통령은 남편이지 내가 아니라는 인식과, 나는 수상이면서 남편의 아내라는 생각은 어디에선가 잘 맞아 떨어진다. 유하고 강한 양면이, 자기가 맡은 구실에 따라 충실히 이행되었을 뿐, 마침내 만나는 곳은 ‘존경받는 인간'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정치참여 의식은 이에 비해 아주 어중간한 인상이다. 남편의 출세를 ‘나도!'의 위치에서 부창부수로 거드는가 하면,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여성이기를 포기한 채 정치 출세주의에 시종하는 듯한 느낌을 심어주었다. 끝내는 그것이 편안함의 탐닉으로 치달아, 개혁보다는 현실 안주의 수구 쪽에 기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를테면 제헌국회 이래의 여성국회의원을 꼽아보자. 모두 42명인데, 그중 37명이 여당이었다. 여성의 보수 성향은 한결같이 생활이라는 ‘낙찰계 이기주의' 같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사회분위기와 안정이라는 이름의 우산 밑을 도리없이 선택하는 내력은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고 했다. 집권 여당은 항상 이점을 강조하며 파고든다. 막대한 재력과 행정지원과 巨樹의 毛根마냥 뻗어있는 조직을 활용하여, 시작이 곧 반인 프리미엄을 따먹게 마련이다.

아무튼 정치적 ‘절반의 실패'는 쓸쓸하고 재미없다.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길은 여성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첩경이다. 기초의회 의원선거를 계기로 한층 드세게 대두되었던 것이 민자당의 거부로 무산되었거니와, 이 요구는 지극히 당연하다. 희랍의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의 ‘여성 의회'를 떠올려보라. 의사당을 점거한 남장여인들이 “남자들은 무뢰한이오 도둑놈"이라고 외치며, 정권이양 법안을 강제통과시키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유쾌학지 아니한가. 결국 서로 남자를 차지하려다 산통을 깨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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