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띠’의 점괘
  • 안병찬 (편집인) ()
  • 승인 1991.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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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치의 특징은 오직 한 사람의 ‘천재'가 돌출하여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구가하는 데 있다. 그 전횡적인 강압풍토 아래서 정당은 ‘君臣父子의 당'이라는 모양을 갖게 된다. 적극분자 대표들은 그저 ‘충성! 충성!’의 다툼, ‘최고 ! 최고 !'의 아첨 경쟁을 일삼을 뿐이다. 착각을 하는 것도 집권적 전제를 행하는 자의 특징이다.

중앙아프리카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를 자칭하며 14년간 군림했던 장 베델 보카사가 망명지프랑스에서 86년 10뭘23일 제발로 중앙아프리카에 귀국한 것을 사람들은 지금도 이해할 수없는 일로 여긴다. 그는 착각했다. 어떻게 하든 고국의 수도 방기에만 돌아가면 공항에서부터 수많은 지지자들이 자기를 영접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이 독재자는 살인 · 잔학행위 · 대량착복 · 공공재산 횡령 등 14개 죄목으로 재판대에 끌려나왔다. 수도 방기에서 열린 제2회 공판(86년 12월)에서 푸른 군복차림으로 나온 보카사는 “나는 성자라고는 말하지 않는다"라고 진술하면서 그러나 자신의 통치기간 중 ‘불쾌한 일'이 일어났었다는 정도만 시인했다.

80년을 보내고 81년을 맞던 때, 송구영신의 가장 두드러진 소식은 아프리카 서쪽 끝에서 전해졌다. 세네갈 공화국의 수도 다카르에서 일어난 평화적 권력이양이었다.

국부인 레오폴드 세다르 상고르 대통령(당시 74세)이 스스로의 의지로 하야하면서 80년 섣달 그믐날 밤 전국 라디오 · 텔레비전 방송망을 통해 고별사를 한 것이다. “국민들이 당면한 과제 앞에 더욱 단결한다면, 그리고 복수정당체제의 민주주의와 기본적 자유를 존중해나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약속받은 미래가 될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독림한 세네갈을 20년간 통치해온 상고르 대통령은 고별의 말 가운데 자신을 종신대통령에 앉히려던 법안 상신서를 봉쇄했노라고 밝히고 있다.

‘5공화국 불멸'이란 착각 속의 1인 통치
이보다 불과 일주일 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방기법정은 자칭 황제 보카사의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했으니 식인 독재자와 종신제를 거부한 시인 대통령의 대조가 뚜렷했다.

그 당시 우리 실정도 상고르의 용퇴와 견주어 여간 대조적인 것이 아니었다. 80년도를 일관한 정치적 폭풍우와 폭력적 소용돌이를 거쳐 1인 권력체제를 구축한 전두환씨는 81년 신년사를 통해 “새해는 한 시대를 보내고 새 시대를 여는 제5공화국의 영광스런 원년으로 파악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제5공화국은 제6, 제7의 공화국이 또다시 탄생되어서는 안될 영구한 공화국이다"라고 주장했다.

그처럼 강압정치로 80년대를 연 전두환씨가 제6공화국에 이르러 시행된 시 · 도의회 의원선거에 참가하여 투표를 하는 장면은 희화적인기도 하다. 10여명이나 되는 수행원을 이끌고 서대문구 제2선거구 연희2동 제2투표소에 나온 전두환씨는 “30년만에 부활된 지방자치제인 만큼 이번 선거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봉사할 참된 일꾼들이 뽑히길 바란다"고 소감을 말했다는 것이다. ‘제5공화국의 불멸'이라는 착각에 빠져 1인 통치를 강행한 그가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방자치제는 1인의 집중적 專斷政治와 대비되는 것이다. 그것은 의회제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제 등 민주적 체계 속에서 시민참가를 고취하는 제도임은 말할 나위 없다.

노인정에 당선사례 금일봉 보낸 뜻은
이번 지방자치선거가 끝나자 이런 삽화도 떠오른다. 선거운동비용을 들이지 않은 한 무소속 후보는 투표의 개시를 몇 시간 앞둔 6월20일 새벽 어떤 유권자의 전화를 받았다. 운동원이 그 유권자 집에 찾아와서 “잔나비띠의 유권자가 제일 먼저 나가서 투표해주면 당선한다고 하니 꼭 투표해달라고 졸라대다니 교회집사인 우리를 조롱하느냐" 하는 항변이었다. 그 무소속 후보의 운동원 한 사람이 답답하고 초조한 나머지 점을 치니 ‘잔나비띠'의 점괘가 나와 그 행동을 한 것이었다. 한편 투표 결과가나와 당선이 확정된 한 여당 후보는 동네 노인정에 승리를 자축하여 ‘금일봉'을 보냈다고 한다. 봉사직인 지방자치단체 의원이 되고자 몇 억원의 돈을 선거운동비용으로 쓰고도 무슨 여력으로, 무슨 까닭으로 유권자에게 ‘당선사례금'을 보냈는지 저의가 수상하다.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사전 포석으로 짐작되는 행동이다.

이제 주민생활을 지방자치와 직결시키는 일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실험과제가 되었다.
≪주민생활과 지방자치≫(성심여대 사회과학연구소 이시재 교수외 지음)는 그러한 새로운 변화의 출발점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가의 물음에 대답하고 있는 책이다.

그것은 지방자치에 투사해야 할 주민생활로서 환경 · 청소 · 자원 · 문화 · 사회교육 · 학교교육 · 건강 · 복지 · 소비자보호 · 여성의 사회참여 · 근로자복지 · 자치행정 · 도시와 지역개발 등에 걸친 1백5개 세목을 뽑아 ‘참여와 발전을 위한 정책제언'으로 삼고 있다.

우리는 이제 “지방자치란 무엇인가" 하는 지방자치 원론의 장에서 벗어난 자리에 서 있다. 앞으로는 “지방자치를 통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물음에 답하여 실용적인 적용, 실제적인 응용을 해야 할 때인데 정당바람으로 전도가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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