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염두에 두지 않아”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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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문학상 수상작 <사다리가 놓인 창>의 작가 徐永恩

작가 徐永恩씨가 중편 <사다리가 놓인 창> (《현대문학》1월호)으로 계간《문학과 비평》이 주관하는 연암문학상을 수상한다. 이 작품에 대해 작가는 “가능하면 내 자신이 보는 삶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삶 그 자체가 드러내는 다양한 외형을 통해 독자들이 나름대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힌다.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먼 그대>에서 낙타의 이미지로 드러났던 도저한 정신주의가 변모하는 것일까. 내면에 금강석보다 단단한 삶에의 믿음을 간직하고, 아웃사이더로서 삶의 거대함과 맞서는 그의 소설 주인공들은 가한 테마를 던져왔다. 한 평론가는 그의 문학세계를 ‘정신적 모험주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절망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에 매달려왔지만 이제부터는 그간 추구해왔던 문학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문학은 나의 멍에가 아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폭넓은 삶, 그 다음이 문학이다”라고 밝히면서 작가는 “그런 점에서 이번 상은 다른 작가에게 주어졌어야 하는 상”이라고 수상소감을 대신한다.

<사다리가 놓인 창>은 삶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두 여성과 한 남자의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지방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한 ‘나’(정애)는 가족을 따라 서울로 이사, 대학교 앞에서 하숙을 치는 어머니의 눈초응ㄹ 받으며 지낸다. 하숙방을 늘리기 위해 정애와 여동생은 쓰던 방을 내주고 다락으로 밀려올라간다. 다락을 출입하기 위해 마당에서 다락의 작은 창으로 사다리가 놓인다. 현실에서의 추락이 사다리라는 수직적 이미지와 대비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여성주의 문학’의 범주에서 논의되는 것을 탐탁해 하지 않는 듯하다. “문학사적인 차원에서는 개념화될 수 있는 문제지만 나는 여성주의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쓰지는 않는다. 성차별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근본적 진실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소설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삶과 세상에 대한 시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보다 생생한 삶의 중심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그동안 사회·정치적인 문제에 소극적이었다”고 털어놓는 그는 개인의 성숙은 물론 사회 전체의 개선이라는 문제에 좀더 관심을 갖고 싶어한다. 시류에 편승하려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손잡을 수 있는 횡적인 힘”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면서 열린 마음과 그 탄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소설쓰기 이외에 그는 요즘 ‘한국문학박물관’에 보관할 문인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하다. 문인들의 흔치 않은 유물을 발견할 때마다 그는 “하나하나가 가혹한 시간의 흐름을 거슬르는 소중하고 새로운 작업”임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문학박물관은 서울 동승동에 부지를 마련하고 오는 4월 착공, 95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그는 지금 소설 <바다와 아들>을 쓰고 있다. 《문학과 비평》여름호에 실리는데, 삶의 순간 순간에서 의미를 찾는 아들과 삶의 의미를 집안에 축적하는 아버지를 비교, 교차시키겠다고 한다. 집은 인간의 삶에서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테마로 한 중편으로 완성될 예정이다. “독신으로 살았다면 집에 대한 시각이 달랐을 것이다. 결혼(3년전 작가 金東里씨와)을 한 뒤에야 집이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자각하게 되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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