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비 장단’에 춤추는 사치품 수입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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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만원짜리 외제스타킹 등 불티나게 팔려…2월말 현재 13억달러 국제수지 적자에 한몫

지난 2월27일, ㅅ백화점에서는 외국의 유명브랜드 수입품점 두 군데가 문을 열었다. 이미 지명도가 높은 이탈리아의 구찌점과 ‘소니아리키엘’이라는 프랑스 디자이너 부틱이 개점, 고급 외제품을 찾는 고객들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에서 파는 옷값은 과연 외제행세를 톡톡히 했다. 구찌브랜드가 붙은 모견 혼방 여성용투피스의 경우, 가격은 97만3천원이었다. 소니아리키엘 울저어지 투피스제품도 68만원이나 했다. 이렇게 비싼 제품을 사입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은 구찌점 주인의 간단한 응수로 해결돼 버렸다. “찾는 사람이 많아” 이렇게 유명백화점에서 본격적으로 전문점을 내게 되었다는 대답이다.

강남구 청담동에 사는 ㄱ부인(43)은 귀동냥과 다리품, 그리고 억세게 운도 좋아 부동산투기로 거액을 챙긴 신흥졸부군에 속한다. 갑자기 많은 돈을 벌게 되니 씀씀이도 헤플 수밖에 없다. 하루 걸러 한번꼴로 쇼핑을 나가는데 그곳엔 언제나 ㄱ부인을 자극하는 외제물건이 가득하다. 오늘은 페르시아산 실크 수직카핏을 사들였다. 가격은 무려 5백70만원. 며칠전에는 2천7백만원짜리 피에르발만의 모피코트를 샀다. 모피코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귀부인같다”는 판매직원의 말에 충동구매를 한 것이다. 한번 외제에 맛을 들이다보니 국산은 어딘가 촌스러워 보인다. ㄱ부인은 외제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며 80평의 집을 치장했다. 화장실 욕조는 법랑욕조로 바꾸고 수입거울을 달고 가구도 외제로 들여왔다. 그랜드피아노도 샀으며 실내등 장식품도 외제로 바꾸었다. 남편 승용차는 서독제 벤츠로 이미 재작년에 바꾸었으며 자신도 얼마전 스웨덴 볼보를 마련했다.


비생산적 수입구조 만드는 사치성 소비재

호화외제품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수천만원짜리 호화가구에서부터 대형냉장고 등 가전제품, 승용차, 골프용구 등의 레저용품, 화장품 등의 수입이 크게 늘고 있다. 심지어 개먹이, 향미수, 머리빗, 스타킹, 손수건 등 오만가지 잡동사니 외제수입품들이 생활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들어와 수입개방시대를 실감케 한다. 88년부터 급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소비재 수입은 지난해의 경우 총수입액 6백14억7천만달러의 10%에 해당하는 61억7천만달러에 달했다. 이는 88년보다 24%가 늘어난 규모이다. 특히 사치성이라 부를 수 있는 외제품이 포함된 소비재 수입증가율은 48%로 전체 소비재 수입증가를 주도한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수출이 침체국면을 맞고 있는데, 이같은 급격한 소비재 수입증가는 국제수지 압박요인으로도 가세,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 상공부에 따르면 올들어 2월말 현재 무역수지(잠정)는 13억6백만달러의 적자를 기록, 사치품과 불요불급한 외제품 급증이 적자폭을 늘리는 데 한 몫을 톡톡히 했다. 물론 아직도 소비재가 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남짓으로 별게 아니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급격한 소비재 수입은 자본재와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을 떨어뜨려 수입구조를 비생산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 외에도 계층간 위화감 조성이라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산된다. 이는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경제활력을 질식시키는 무서운 복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상공부는 소비재 수입급증 원인으로 수입 자유화 품목의 확대, 기본과세율 인하, 원화 절상, 과소비 분위기의 확산 등을 꼽고 있다. 수입자유화율은 지난해 95.5%에서 올해는 96.4%가 될 전망이어서 사실상 공산품은 완전개방된 것이나 다름없다. 평균 관세율은 88년 18.1%에서 지난해 12.7%로, 올해는 11.4%로 갈수록 떨어졌다. 또 최근에는 원화의 빠른 절하추세로 인한 조기수입, 이른바 ‘리드 앤 래그’현상이 심화됐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그동안 국민 소득수준 향상에 따른 소비구조의 고급화에도 있지만 불로소득 계층의 무분별한 과소비 행태 확산에 있다는 데 동의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유명백화점의 호화찬란한 외제품은 연일 들끓는 구매인파의 물결에 팔려나간다. 남대문시장 등의 수입상가와 고급아파트 근처 수입코너들도 연일 호황을 구가한다. 전세값 폭등에 마음 졸이며 쫓겨다녀야 하는 일반서민들에겐 아픔을 더해주는 풍속도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수입품은 그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요지경이다. 프랑스 랑방브랜드의 지갑·벨트세트가 20만원, 체코제 크리스탈 화병이 24만원, 이탈리아제 구찌핸드백은 35만원, 이브생로랑 순면 투피스잠옷은 1백40만원 등, 일반서민들을 현기증나게 할 정도의 가격인데도 매기는 왕성하다. 심지어 한두번 신고 버리는 스타킹이 14만원이고 브랜드와 국적불명의 외제 우산꽂이가 37만원, 영국제 커피잔은 개당 6만원이나 된다. 같은 제품이라도 이들 수입산들은 국내 제품 가격보다 심지어는 5~10배를 웃도는 것들도 있다.

턱없이 비싼 수입품가격은 폭리를 취하는 유통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상공부는 3월부터 수입상품에 수입가격표시제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의류, 가구, 시계 등 과소비를 조장하는 11개 품목에 대해 수입가격과 소매가격을 동시에 표시, 소비자가 두 가격을 비교하여 합리적인 소비행동을 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또 수입상품의 유통마진을 노출시켜 수입상 및 판매업소의 폭리를 막겠다는 의도도 깔고 있다. 이는 그동안 한국소비자보호원등 소비자단체에서 끊임없이 제기해온 사안으로, 소비자보호원 金錫喆연구위원은 “이 제도의 시행은 일단 긍정적이나 모든 소비재 수입물품에 확대 시행해야 하며 유통마진이 일정률을 상회할 경우 누진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살 깎아먹는’ 수입업체

돈벌이가 되면 무엇이든 수입하고 보자는 일부 대기업들의 행태도 문제다. 가전제품의 경우 국내 가전3사가 모두 미국산 대형냉장고를 수입하고 있다. 인켈 등 음향기기업체들도 소형카세트와 대형 컬러텔레비전을 들여왔다. 의류도 기술제휴를 하는 데서 더 나아가 완제품을 수입해 값비싼 외제품 선호심리에 편승, 가격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다. 외제차도 국내시장으로 질주해오고 있다. 지난해는 88년보다 59.3%나 증가한 9천75만달러어치가 수입됐다. 86년부터 수입자유화된 화장품, 88년 수입감시품목에서 해제된 가구, 지난해 7월부터 수입이 허용된 위스키를 비롯한 주류 등도 국내시장을 공략, 두드러지게 수입이 늘고 있는 품목들이다. 88년부터 수입개방이 가속화되면서 수입상도 양산됐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단순 수입상들보다 규격만 다른 자사제조품목을 앞다투어 수입하는 제조업체들이 수입상 대열에 끼어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가전제품, 주류 등 독과점 품목들의 제조업체들이 수입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수입자유화에 따른 국산품의 품질향상과 가격안정 기대도 앗아갈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제살 깎아먹기식’ 영업은 장기적으론 외국 거대기업의 국내시장 지배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이는 산업공동화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데 더욱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또 그동안 적잖게 대기업 보호를 위해 막아두었던 수입문이 어쩔 수 없이 열리면서 수입자유화의 경제적 효과도 다수의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몫이 될 공산이 커졌다.

86년부터 국제수지 흑자폭이 커지기 시작하자 정부는 적극적으로 수입개방 정책을 펴 왔다. 이는 통상마찰이 심화되는 국제교역 환경과 우리 경제의 외형이 커지면서 불가피했으며 당연한 추세이기도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같은 값으로 보다 질좋은 상품을 살 수 있다는 ‘선택권’을 향유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제 개방기조는 움직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문제는 호화외제품이 너무 급격히 늘어난다는 데 있으며 개방에 따른 효과가 일부 계층에 국한된다는 데 있다.

지난달 28일 文熹甲 대통령경제수석이 차관회의를 소집, 과소비 방지대책을 논의하는 등 정부에서도 과소비를 잡기 위해 나서고 있다. 주무부처인 상공부도 올들어 종합무역상사 등 수입관련 업계에 대한 건전 수입풍토 조성 행정지도를 5회에 걸쳐 실시했다. 또 경제단체별 결의대회를 촉구하는 홍보를 하는 등,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노력해온 것도 사실이다. 상공부 상역국 柳得煥국장은 “대외통상마찰을 고려, 수입개방정책은 일관성있게 추진하되 사치성 소비재의 무분별한 수입을 막을 수 있는 범부처적인 특소세 개편, 세무조사 강화 등 세제 금융상의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입과 韓永壽과장도  “업계에 대한 행정지도를 연중 실시하고 국산품과 외산품의 비교전시회 개최, 수입상품 유통가격표시제 확대실시 검토 등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과거와는 달리 사실상 통제수단이 거의 없다”고 지적하면서 국민과 기업들의 자제를 요청했다.


“분배제도에 개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치성 소비재의 급증으로 나타난 과소비현상의 책임을 정부에 돌리는 이들도 많다. 연세대 李榮善교수(경제학)는 경제활동의 귀착점은 소비이고 이는 성장을 유인하기 때문에 소비의 고급화와 확대추세를 단순히 비도덕적인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곤란하지만 왜 과소비라 불리는 소비행태가 만연되었느냐는 점에 주목한다. “오늘의 과소비 현상은 부동산투기, 향락산업 등에서 벌어들인 부의 생산성이 제조업생산과 저축에서 벌 수 있는 부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특히 불로소득은 소비의 구성조차도 불건전하게 만든다. 따라서 경제의 안정과 공평한 수익률 체계 확립처럼 중요한 과제는 없다. 부동산투자에서 오는 수익률과 저축에 대한 이자율이 비슷하게 될 때만이 저축도 늘어나게 되고 소비의 구성도 건전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분배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을 심는 과제도 과소비현상을 진화하는 길이 될 것이다.”

수입개방은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다. 문제는 소비자에게도 혜택을 주고 국제명분도 세울 수 있는 정책의 부재에 있다. 또 그것은 단지 무역정책에 국한시킬 사안도 아니다. 불로소득 계층의 과소비풍조와 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치성 소비재 수입급증 현상, 이를 초래한 경제 정책에 대한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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