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에 병든 서울대병원
  • 글 · 정기수 기자 사진 · 나명석 기자 ()
  • 승인 1991.07.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반인’ 수개월 대기에 ‘청탁’ 난무 ··· 입원환자들 “의료서비스도 엉망”

ㄱ씨 : 오른쪽 눈이 충혈되고 안구가 돌출하는 증세로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10일 후면 퇴원할 수 있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잘못돼 45일간 식물인간으로 사경을 헤매게 됐다. 연재 의식은 회복됐으나 오른쪽 눈 실명, 어깨 · 다리 마비, 언어장애등으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ㄴ씨 : 부인이 산기가 있어 밤 12시경 그동안 다니던 병원에 도착, 의사의 진찰을 받고 입원했다. 바로 진통이 심해졌으나 의사는 이미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4시간만에 양수가 터졌다. 간호보조원이 혼자서 무엇인가 조치를 취했다. 그로부터 2시간 후에야 의사가 나타나 수술을 시작했으나 태아는 주고 부인은 자궁이 파열됐다.

 ㄷ씨 : 두살난 아기가 감기를 앓고 피부병이 생기자 동네 의원에서 주사를 3대를 맞혔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아이는 주사를 맞은 뒤부터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며 제대로 걷지 못했다. 이 의원에서는 더이상 차도가 없어 유명한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사고’를 낸 의사는 이렇다할 설명없이  계속 치료비만 부담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병원을 찾는 외래환자의 55%, 입원환자의 29%가 동네 의원 같은 1차 진료기관에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들 때문에 대학병원이 홍역을 앓게 된다는 비판이 기회 있을때마다 제기되곤 한다. 그러나 한 소비자단체에 접수된 수많은 의료사고 가운데서 가려낸 위 세 사람의 불행한 사례는 환자들이 이름난 큰 병원으로 몰리는 이유는 반증하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하겠다.

 서울대학교병원은 그중에서도 몸이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치료받고 싶어하는 ‘국내 최고 병원’이다. 보다 정확하고 분명한 진단, 의료사고 위험이 없는 안전한 수술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모두 서울대병원으로 향한다. 감기환자에서부터, “서울대병원에서 진찰이나 한번 받고 죽자”는 중환자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수천명이 서울 종로구 연건동 창경궁 맞은 편의 서울대병원 언덕길을 오르고 있다.

 이제 새로운 뉴스가 아닌 장기간 ‘입원대기’는 그 때문에 갈수록 심각도를 더해간다. 5월말 현재 정형외과는 6~7개월을 기다려야 하며 비뇨기과는 3개월, 내과 일반외과 부인과 신경외과 등도 30~52일 도안 병상이 비는 날까지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22쪽 표 참조). 입원뿐 아니라 외래진료도 대기해야 하는데 환자가 많은 의사의 경우 2~3개월간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수위라도 알아야 입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지루한 기다림은 ‘최고 병원’이요의 대기라고 하기에는 너무긴 “도중에 죽을 수도 있는”세월이며, 또 그것이 ‘억울한’기다림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 대기 일수가 접수 순서, 중증 정도 등 납득할 수 있는 기준에 따라 정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서울대병원 식당아줌마나 수위라도 알아야 입원할 수 있다”는 것이 거의 ‘상식’으로 통하는 마당에 가만히 앉아서 원무부 전화 오기만을 기다린다면 그것은 순진무구한 짓이다. 전경환씨 특실 입원 사건(20쪽 관련기사 참조)은 ‘특권병동’, 서울대병원 안에서 고질화된 그러한 ‘상식’의 일례를 보여준 것이었다.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출산한 박모(29)씨는 응급실도 통하지 않고 산부인과 진료실로 직행, 진찰을 받은 뒤 지체없이 입원실로 들어가는 ‘특혜’를 맛보았다. 서울대병원 의사인 남편 친구를 통해 소개받은 산부인과 모교수의 ‘힘’ 덕택이었다. 박씨는 이교수와 미리 전화로 약속한 대로 원무부 등 어느 곳도 거치지 않고 그의 연구실로 직접 찾아갔다. 연구실 비서는 박씨를 진료실로 안내했다. 복도에 줄서 있는 수십명의 대기자들의 눈을 피해 반대편에 있는간호사실을 통해 들어가니 소개받은 교수가 거기 있었다. 교수는 진찰을 끝낸 뒤 ○○검사실에서 검사를 받고 있으라고 했다. 검사 도중 전화가 왔다. 검사 의사는 전화를 끊더니 박씨에게 “급하지 않은데 담당의사가 왜 당장 입원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하지요?”라고 말했다.

 박씨는 얼마 뒤, 간호사들이 없는 병상을 억지로 만들어내라는 소란을 편 끝에 입원할 수있었다. 박씨는 병상을 비우기 위해 한 임사부가 예정시간도 되기 전 ‘떠밀려’ 분만장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입원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이 “누구를 통했길래 그렇게 ‘초특급’이냐”고 물어 박씨는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환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도 다 그렇게 들어오긴 했지만 그 정도면 특별히 더 생각해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초고속’입원에 금품수수 의혹
 지방 모대학병원에서 골수암 진단을 받은 아들을 둔 김모(38)씨는 지난해 서울대병원에서 마지막 확인이라도 하고 싶어 개업의인 친구 최모씨에게 ‘급행’을 부탁했다. 최씨는 알고 지내는 서울대병원 일반직 간부를 통해 곧장 입원시켜주고t술도 받게 해주었다. 김씨는 ‘관행’을 어길 수도 없이 특혜를 베풀어준 간부에게 30만원을 전했다. 김씨의 아들이 사망한 지 한참 뒤에 이 얘기를 들은 최씨는 그 이후 다시는 입원청탁 ‘중개역’을 맞지 않고 있다.

 친척이 서울대병원 간호사여서 혜택을 본 ㅇ씨의 경우는 다른 환자들이 어떻게 해서 6~7개월씩 기다려야 하는지 그 까닭을 알수 있게 한다. 지난달 정형외과 수술을 받은 ㅇ씨가 처음 수술신청을 한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그동안 벌써 두차례 수술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으나 개인사정으로 연기 해왔다. 다른 대기 환자가 겨우 한번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기간에 간호사 친척을 둔 이 사람은 모두 세차례 수술제의를 받은 것이다.

 봉투수수는 위 경우처럼 같은 직원들 사이에도 그냥 넘길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모 일반직 과장은 금품요구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에 따르면 이 과장은 청탁을 받고 다른 병원에 입원중인 홙를 외래진료 절차도 거치지 않고 의사의 입원결정서를 받아 초고속으로 입원시겼다는 것이다. 이후 보호자에게 50만원을 요구했다는 투서가 있어 수사를 받았으나 “사실과 다르다”는 쪽으로 경찰은 결론지었다.

 이 사실을 노보를 통해 공개한 노조 간부들은 당사자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함에 따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돈 안주면 회진도 안돈다더라”라는 식의 근거없는 루머가 괜히 생기지 않았을 법한 서울대병원 안의 금품수수는 일상화 수준에 가깝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외래진료와 입원수속 업무를 처리하는 원무부 관계자 “진료와 입원 우선순위 결정은 버스 줄서는 것과 다르다”고 말한다. 발견 즉시 조처를 취해야 하는 질병이나 전염병, 다른 병원에서 긴급 후송된 응급환자 등 순서를 무시할 수밖에 없는 병원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무슨 부정이나 있는 것처럼”불신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결정은 결국 의사가 ‘임의로’한다는 데 끼어들기의 여지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앞의 몇가지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급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어떤 사람은 날짜를 세며 제 순서를 기다리고 어떤사람은 청탁 즉시 입원실을 차지한다. 7월1일자 ‘응급실 대기 환자 현황’(왼쪽 사본 참조) 오른쪽 위 어떤 환자 옆에 표시된 ‘검사과 ○○○’이란 이름은 이 직원이 그 환자를 특별히 부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3차진료기관에 바로 들어갈 때는 응급실을 통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이곳에는 가짜 응급환자, 즉 청탁 대기환자들이 수두룩한게 현실이다.

 서울대병원 교수(의사)나 간호사 의료기사 일반직원 등 “진료 또는 입원 순서를 조금이라도 앞당겨줄 수 있는” 사람치고 이런 청탁에 시달리지 않는 경우가 없다. 어느 레지던트는 “사실 큰 도움을 줄 수 없을 때가 더 많은데 주변에서는 막무가내로 부탁한다”며 “청탁전화 받는 것이 겁날 정도”라고 털어놓는다.

 청탁의 현장이 취재팀에 직접 목격되기도 했다. 지난 2일 원무부의 한 담당자와 얘기하는 도중 공교롭게도 한 장의 메모가 이 담당자에게 전달된 것이다. ‘-○○실장-이XX(응급실)’. “응급실에 이아무개가 들어와 있는데 모실장을 통한 환자이니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이 환자는 다음날 아침8시에 입원 결정이 난 것으로 확인됐다. 응급실 관계자는 “중증이기 때문에 빨리 조처한 것일뿐”이라고 밝혔다. 현황판의 이 환자 ‘비고’란에는 ‘위급’을 뜻하는 별표 2개가 그려져 있었다.

 서울대병원에 오는 ‘힘없는’환자들은 이처럼 ‘평등한 의료를 받을 환자의 권리’만 침해받는 것이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진료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환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최고 병원의 최고 의료 서비스가 아닌 최악의 ‘고통’이다. ≪시사저널≫에 편지를 보낸 서울대병원의 어느 평간호사는 그것을 “제일 위로받고 싶은 곳에서 당하는 불쾌한 기분, 모욕, 무시당한 느낌, 살벌함”이라고 표현했다. 자기 스스로 그러한 ‘가해자’의 한 사람이라고 밝힌 이 간호사는 그럴 수밖에 없는 서울대병원의 구조적 ‘병’을 국민에게 꼭 알려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물론 일류만 찾아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어렵게 하는 국민의 의식에도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환자와 일반 직원들은 서울대병원이 ‘환자 위주의 병원이 아니라 진료지늘 위한 병원’이란 점이 보다 심각한 문제라고 보고 있다. 지나치게 권위적인 의사들과 그것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관료적인 조직이 서울대병원을 서비스 측면에서나 의료의 질적인 면에서 모두 ‘최고’의 자리를 뺏기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기 급식 침구 등 병원시설의 열악한 현실도 “최고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창피한일”이지만 병원에 물들어 있는 ‘오만불손’한 태도는 “도대체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여기 왔는가”라는 생각을 갖게 할 저오라고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불평하다. 특히 보호자를 일제히 '내쫓고‘ 실시하는 회진은 환자들의 가장 큰 불만을 사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인턴 레지던트를 포함하여 수십명의 ‘가운’이 떼지어 나타나는 것도 환자를 편하게 하지는 않는 모습이려니와 “환자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영어가 섞인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엇인가 보고하고 지시하다 돌아가는”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회진방식은 환자를 오히려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환자에게 설명하지 않는 의료행위는 하나의 ‘임상실험’이지 돈을 받고 행하는 서비스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같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은 연구와 교육이 진료에 앞서는 서울대병원의 설립목적이 오랜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더욱 ‘반환자’쪽으로 굳어진 데 따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한달이 멀다 하고 떠나는 교수들의 학회참가로 말미암아 손꼽아 기다린 예약 환자들은 진료기회를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병원은 ‘교수들의 천국’으로서가 아니라 환자를 위해 존재하도록 해야 한다는, 새로운 대안 찾기가 전문가들 사이에 오래전부터 논의되어왔다.(24쪽 관련기사 참조).

몇몇 재벌병원 ‘최고 위치’ 위협
 병원측은 비현실적인 의료수가 등에 따른 어려운 살림이 환자에 대한 서비스를 높일 수 없게 하는 큰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직원들은 각종 의료기기와 약품 구입과정에서의 석연치 않은 내용을 지적하면서 “주인이 없는 회사여서 그렇지 도저히 적자가 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서울대병원은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 형식이 아닌 특수법인이며 이사회는 서울대총장 의학대장 치대학장 교육부차관 경제기획원차관 등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대병원이 환자의 불편은 클지 모르나 의료진은 최고라는 ‘자만’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2등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적지 않게 발견 되고 있다. 첨단 의료장비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요즘의 의료현실을 생각할 때 거액을 쏟아붓고 있는 몇몇 재벌 병원은 서울대병원에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이다. 인력도 서울대 수준에 육박하고 있는 이들 병원은 설계 자체부터 환자가 최우선 순위에 놓여져 있다.

 서울대병원 이진학 교수(안과)는 최근 발행된 <병원보>에서 “우리 병원은 이미 여러 부분에서 국내 최고의 위치를 빼앗겨버렸다”고 ‘선언’, 서울대병원 안팎에 큰 파문을 던졌다. 이교수는 다른 병원에서 오히려 앞서가고 있는 장기이식과 초음파 · 레이저 이용 치료 수준을 얘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서울대병원은 정말 최고인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