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좋은 세상 만났구나”
  • 편집국 ()
  • 승인 1991.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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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외국어대 조선어학과 사이구사 도시카스 교수 기고

 요즘 젊은 사람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가에 대답하기는 참 곤란하다. 동경 같은 데서 전철을 타면 젊은 사람도 많이 눈에 띄지만 뛰어나게 예뻐서 가까이 다가가면 으레 들리는 것은 한국말이고, 단체로 우르르 몰려오는 쪽을 보면 중국말, 선술집에 들어가면 일본말을 모르는 젊은이가 술과 안주를 나르고, 진짜 일본 사람을 가려내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진짜 일본 사람을 알려면 신문이나 잡지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동경에서는 이것이 실감나다. 활자나마 통해서 알 수 있는 일부 젊은이들은 참 재미있다. 조상 덕택에 의식주 걱정 없이 자라 고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젊음을 구가할 수 있다니. 사람이 귀해서 취직하려면 여러 회사가 경쟁해서 끌어가고, 첫 월급은 선배 월급보다 많다니 좋겠다. 좋은 세상을 만났구나. 일자리 걱정 없겠다, 돈의 시달림도 모르겠다, 먹는 것은 얼마든지 있겠다, 그러면 할 게 뭐있나. 스포츠나 좀 해서 땀 흘리고 술 먹고 연애하고, 또 뭐 있나, 좋겠다. 좋겠구나, 지상낙원 여기 있었구나.

 으레 지상낙원이란 산 사람은 못 사는 곳, 그런데 산 사람이 지상낙원에 사는 경우도 있다니 그 모습은 어떠한가. 거리에 앉아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 컴퓨터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물건 사러 헤매는 사람들, 그들이 몇 년 전만 해도 “안경 쓴 뻐드렁니 고릴라”로 불리던 일본 사람들의 아들 딸들이다. 이제는 영양섭취 잘해서 건강한 살찐 고기 덩어리의 무리로 격이 올랐다. 그 고기 덩어리들 세계에서는 여자가 활발해서 주도권 잡고 남자는 얌전하고 귀여운 것이 인기가 있다나. 잘한다. 행복하다고, 행복할 것이다. 자기들끼리 행복하다는 데 누가 참견할 권리가 있나,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라.

“무엇 때문에 사는지 안타까울 뿐"
 그런데 왜 그런 행복한 무리를 봐도 부러운 느낌이 하나도 안 들까. 저렇게 인생을 즐기고 젊음을 구가하고 있다는 데 왜 자꾸 불쌍한 생각만 일까. 여자가 활발해지고 남자가 얌전해졌다며. 새삼스럽게 무슨 말씀. 아득한 옛날을 모르시나. 남자 여자 구별없이 다 같이 벌판을 뛰어다니면서 사냥으로 살던 명랑한 시대가 있었다네. 그때는 여자들도 벌거벗고 활발하게 외치면서 맹수를 쫓아 뛰었을 거다.

 전에는 여성이 태양이었다는 말도 있다. 남자가 얌전해서 아버지 권위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그것이 벌써 언제 이야긴데. 동경을 □□라 불렀던 시대 서민들 가정에서는 일하러 나가는 남편들이 도시락을 손수 싸갔었다는데. 지금 달라져 가고 있다면 옛날을 향해서 되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 젊은이들이 그렇게 자유로울까. 학교에서는 손 드는 높이부터 고개 숙여 인사하는 각도까지 규칙으로 정한다면서.

일본 기업은 부자지만 국민은 가난
 지금 그들의 정열을 돋을 만한 세계가 사라진 지 오래다. 탐험할 미지의 세계는 이미 없다. 우주까지 사람 때가 묻었다. 어느 분야든 학문의 세계는 길이 막히고 있다. 마음을 위로할 자연이 어디 남아 있나. 동경에서는 잠자리가 사라진 지 오래고 이제는 매미도 울지 않는다. 어디를 보나 보이는 동물은 사람과 개, 고양이 그리고 방약무인한 까마귀떼. 그래도 돈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천만에, 어떤 한국 사람이 일본에 와서 더듬더듬 말했다. 일본이란 나라는 부자지만, 국민은 가난하다고. 사실을 나라가 부자라고도 말할 수 없다. 기업체만이 부자다. 미국보다도, 한국보다도 제한된 소수에게 부가 편중된 나라가 일본이다. 그대신 임금격차가 적은 나라. 재산은 가질 수 없어도 임금이 평등한 지상의 낙원.

 동유럽이 무너지고 세계에서 독재가 사라지는 마당에서, 설마 최후의 보루를 지키고자 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아닐 거다. 일본 사람의 민족성이란 게 있다면 그것이 그렇게 갑자기 변할 리가 없다. 사실 일본 사람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여태까지 일본은 아시아 각국의 견제가 있었으니까 겨우 지탱해왔으나, 이제 사연은 잘 모르지만 외로워질 것 가타. 참 좋은 때와 장소를 만난 여기 젊은이들을 보면 무엇 때문에 사는지 안타까운 느낌이 자꾸 든다.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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