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哲彦의 정국구상 개혁이냐 야망이냐
  • 박중환 기자 ()
  • 승인 199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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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만들기’에서 ‘대통령 이후’까지 깊숙이 개입, 주목과 질시 한몸에 내각제개헌·남북관계개선에 집념 … “보혁구도로 정치권 재조정 있을 듯”

지나친 관심인가, 빈정거림인가? 그에게는 유난히 많은 별칭이 따른다. 미국의 키신저를 본떠 ‘朴신저’라 부르는가 하면, 중국 위나라의 조조 밑에서 智略을 날렸던 司馬懿에 빗대는 이도 있다. 조선 中宗 때 체제내 개혁을 시도하다가, “趙씨가 왕이 되려 한다” (走肖爲王)는 누명을 쓰고 죽은 王道정치가 靜庵 趙光祖와 닮았다 해서 ‘현대판 정암’으로 부르는 현학파도 있다.

朴哲彦. 꿰뚫어 보는 듯한 눈매에, 꽉 다물고 있는 입술로 무척 야심만만한 인상을 풍기는 그가 지금 한국 정가의 표적 인물이 되고 있다.

앞서 인용된 별명들은 그의 돋보이는 위상에 대한 반사적 평가의 한가닥에 불과할 뿐, 그를 백안시하는 정적들도 그가 ‘6공화국 실세 중의 실세’, 廬泰愚대통령의 ‘오른팔’ 또는 ‘분신’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외교·안보는 물론이고 국정 전반에 걸쳐 그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그를 견제해왔던 여권의 일부 중진의원들마저 그와 가까워지려고 눈치를 보고, 몇몇 초선의원들은 연줄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총선·대통령선거 즈음 정계변화 가능성”

≪시사저널≫이 지난해 10월 창간에 즈음해서 국내 사회과학자 3백50명을 상대로 집계한 ‘한국을 움직이는 10인’의 여론조사에서 그는 여덟 번째 인물로 지목된 바 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지금, 같은 조사를 다시 한다면 그의 순위는 몇 번째가 될까. 올 연초 일본 <산케이신문>은 그를 ‘한국정치의 다음 세대지도자’중 한사람으로 꼽은 바 있다.

그의 정치적 위상은 공안정국 때 다소 흔들리기는 했으나 지난해 ‘12·15 대타협’을 기점으로 다시 떠올랐다. 그의 정치적 잠재력과 기량은 뭐니뭐니해도 노대통령의 7·7선언으로 표방됐던 남북관계개선과 3당통합·민주자유당의 출범에서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었다.

몇몇 측근은 최근 “그가 6공화국의 남아 있는 과제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남북관계개선”이라 강조했다고 전한다. 그는 또 내각제개헌에 대단한 집념을 갖고 있는데 “그 시기는 국민이 원할 때”라고 둘러서 답변했고, 그 자신은 “순수한 의원내각제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한다. 향후 정계구도와 관련, “앞으로 있을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 변화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정계개편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는 사실은 매우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그가 정작 “남아있는 과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전제한 남북관계개선에 대해서는 보안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함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정가에는 내년초 노대통령과 金日成주석과의 영수회담설이 나돌고 있다. 확인되지 않는 이런 이야기는 그럴듯한 ‘설득력’까지 뒷받침되고 있어 주목된다.


“남쪽이나 북쪽이나 기존관념 깨야”

김일성이 신격화되어 있는 북한의 분위기로 볼 때, 노대통령과 김일성이 동등한 자리에서 만나 회담을 한다는 것을 북측이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이 때문에 북한은 김일성의 권력을 어느 정도나마 金正日에게 넘기는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권력을 넘긴 뒤, 노대통령·김정일 회담을 추진하려는 듯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지난 2월22일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에서 제9기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예정보다 6개월이나 앞당긴 오는 4월22일 열기로 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분석대로 북한이 김정일을 노대통령의 회담상대로 내세울 경우, 한국쪽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에 대해 박장관의 한 측근은 “북한이나 우리나 특정한 누구와는 회담할 수 없다는 기존관념을 먼저 깨야 하며, 그래야만 남북간의 관계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서 “김정일이 노대통령과 상응하는 직위를 가지고 권한을 행사할 경우 우리쪽에서도 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측근의 지적은 김정일이 주석자리에 앉고, 회담결과를 실천할 만한 힘을 가졌다고 판단되면 노대통령·김정일간의 남북영수회담이 가능할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내년 봄 남북영수회담의 성사는 김정일의 주석직 승계와 양쪽의 분위기 조성여하에 따라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을 법하다.

이러한 예측은 박장관이 밝혔다는 북방정책의 수순인 “소련→중국→북한 순의 관계 정상화”와 시간상으로 맞아떨어지기 어렵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개방화에 미온적인 중국이 그 사이에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장관이 “금강산 공동개발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점으로 볼 때 머지않은 시기에 국민을 또다시 놀라게 할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가져볼 수 있다.

일본의 한국전문가인 고토우 다카오(五島隆夫)의 저서 ≪비밀접촉≫ (86년 출판)에 따르면, 박장관의 남북관계개선 의지는 83년부터 확고해 당시 전두환대통령과 張世東씨를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許談 전외상이 85년 9월4일부터 3일간 극비리에 서울을 방문하기에 앞서 뉴욕에서 韓時海 UN주재 북한대사를 만나 사전조정작업을 했다고 이 책은 적고 있다. 이 秘史의 사실 여부는 언젠가 밝혀지겠지만, 그가 남북관계개선 등 북방정책에 대단한 집념을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박장관이 구상하고 있는 또 다른 과제는 내각제로의 개헌이다. 개헌문제는 3당통합 발표 이후 노대통령도 시사한 바 있고, 개헌 가능 의석보다 16석을 더 확보한 민자당내의 기류도 이 문제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는 듯하다. 3당통합을 반대했던 한 중진은 “개헌은 정계개편의 후속수로 이미 준비되어 있던 것이며, 개편 후의 정치질서를 실질적으로 재조정하는 마무리 작업이 될 것”이라는 뼈있는 말을 했다.

개헌과 관련된 관심은 이제 그 실시시기와 내각제의 골격에 모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박장관은 개헌시기를 “국민이 원할 때”라고 밝혀 노대통령이 시사했던 것과 맥을 같이 했다. 그러나 그 골격에 대해서는 “순수내각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처음으로 그의 뜻을 밝혀, 3당통합과 관련해서 노대통령 퇴임 후 金泳三·金鍾泌씨와의 역할분담 가능성을 놓고 나돌았던 이원집정부 형태의 개헌 추측과는 거리를 두었다.

박장관이 정계의 향방과 관련해 “앞으로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속뜻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언급이 나왔던 당시의 분위기로 미루어, 그때쯤이면 인위적인 후속개편보다는 정계가 보혁구도로 자연스럽게 재조정될 것으로 본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료정치” “강한 추진력” 엇갈린 평가

박장관에 대한 세론은 그의 정치적 기량이나 외교적 수완보다 박철언 개인의 정치형태를 두고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정치학자들의 지적을 들어본다.

양건 교수(한양대·헌법학)는 “민주화는 정책결정의 과정과 절차가 공개된 가운데 이루어져야 정석”이라고 전제하고 “만약 사전 보안이 불가피했던 정책일 경우, 결정되고 난 뒤에 반드시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교수는 이어 “3당통합 과정에서 보았듯이 몇몇 특정 정치인이 밀실에서 결정해 발표한 뒤, 이것은 현실이라며 그 현실의 전제하에서만 논의하라는 식은 국민을 소외시켜 민주주의의 기본을 흐트러놓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교수는 한 예로 “햇빛법률(Sunshine Law)이라 불리는 정보공개법도 이런 맥락에서 입법되는 것”이라며 “이런 법률이나 규정은 우리에겐 없으나 헌법상 언론·출판·표현의 자유보장 조항 속에 그 취지가 살아 있다”고 비밀정치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이름 밝히기를 사양하는 한 교수(서울대·정치학)는 “박장관의 정치행태는 위로부터 창출된 권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관료정치의 폐단을 낳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보혁구도의 논리로 이루어진 3당통합은 충분한 이데올로기 논쟁이 없이 이루어졌고, 통합에 대한 정치적인 정당성 논의가 없이 밀실에서 갑작스럽게 추진돼 정당의 이익논쟁으로 비약되게 됐다”며 “결과적으로 5공화국의 정당성 시비와 마찬가지로 합당의 도덕성 논쟁을 불러들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3당의 합당이 밑으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일방적 개혁이라는 점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기 쉽다”며 박장관의 밀실정치 형태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민준기 교수(경희대·정치학)의 논리는 현실적이다. 그는 “정치는 정파의 핵심 멤버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그들의 원내 추종세력에게 알려 지지자들로부터 합의를 얻는 과정”이라고 규정하며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의 보안은 선진국가에서도 흔히 있다”고 말했다. 민교수는 박장관을 가리켜 “현실감각과 정세분석력이 뛰어나고 논리적이면서도 추진력이 강해 발전할 수 있는 이물”이라고 평가했다.

민교수는 3당통합에 대해 “기존의 4당체제가 원만히 운용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당간에 당리당략을 위한 지나친 경쟁 등으로 국민들에게 불안을 주었고, 분열된 야당의 재결합을 통한 정계개편이 이뤄지지 않아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했다.

박철언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해서 등장된 인물인가? 아니면 5공화국에서 6공화국으로 이어지는 한국적 특수상황에서 변칙적으로 부상된 인물인가? 이런 의문은 근래 한국 정치풍토에서 그와 유사한 인물조차 찾기 힘들다는데서 짚어봐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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