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選 직후 정계개편 구상 개헌은 ‘순수내각제’로
  • 박중웅 기자 ()
  • 승인 199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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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수호’ 고정관념 버리고 ‘중도개혁’ 추구해야 금강산 공동개발 다시 진행, ‘경제특구’로 지정하면 양쪽에 도움

박철언 정무장관은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사양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밝혔다. “나는 일꾼일 뿐입니다. 언론을 통해 나의 이미지를 만들고, 변명하고,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난 다음에는 모르지만….” 그가 여태껏 언론과 공식적인 인터뷰를 한 적은 단 한차례도 없다.

《시사저널》은 그와 수시로 만나 3당합당 배경과 민자당의 진로, 남북관계개선, 개헌등에 대해 격의없이 토론했다는 몇몇 측근들을 통해 朴장관의 意中을 종합, 인터뷰형식으로 재구성하였다.

● 시국관은?

정치가 정치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역사와 국민 편에서 국리민복을 위해 있어야 합니다. 廬泰愚대통령의 입장과 제가 노대통령을 보좌하면서 갖고 있던 생각입니다. 6·29선언→대통령선거→당선의 과정에서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이며, 이것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를 많이 생각했지요. 그 과제는 3가지로 집약되었습니다. △민주주의 정착 △국민대화합 △민족통합입니다. 민주발전은 민주주의의 뿌리내림과 경제발전이고, 국민대화합은 지역·세대·계층간 간격의 골을 해소하는 진정한 대화합입니다.

민족통합은 통일문제를 포함한 북방정책이지요. 민족자존의 시각에서 민족통합은 구체적이고 자주적으로 접근하고, 고비를 돌파하는 진취적인 도전과 모험을 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우리는 서방세계만을 상대하는 반쪽 외교였고, 특정 나라의 치마폭 밑에서 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미수교대륙을 포함해 온 세계를 상대로 진정한 자주외교를 펴야 하겠습니다. 남북문제는 한미관계의 시각보다는 냉전구조를 깨는 도전과 변화를 통해 성취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남아있는 가장 큰 과제입니다.

● 정계개편은 언제부터 구상했는지.

대통령선거 시기의 정치상황을 보면 4당체제에서 4당4색으로 지역적 적대감까지 있었고, 직선제의 문제점들이 노출되었지요. 대통령선거 직후에 4당의 대통합 구도를 중장기 국장운영 차원에서 연구하면서 처음 생각했습니다.

노대통령의 임기 5년을 시기적으로 3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초반은 출범후 1년6개월인 89년 8월말, 중반은 나머지 2년간인 91년 8월말까지, 종반은 이때부터 1년6개월간인 93년 2월까지였습니다. 초반은 구시대 청산 과업수행과 새로운 가치체계의 준비기가 되겠고, 중반은 대담한 민주개혁조치 등 노대통령의 경륜을 실천하는 시기, 종반은 노대통령 퇴임후(포스트 廬)에 대비한 제도적 준비를 구체화하는 기간으로 잡았습니다.

당시로는 4·26총선을 치르면 여당이 과반수가 넘는 다수안정세를 구축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면 필요시 정책연합을 통해서 종반기 초쯤에서 개헌하면서 정계를 개편하고 ‘포스트 廬’를 준비하리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4·26총선 결과 여소야대가 됐습니다. 그동안 대단히 불안했습니다. 앞으로 영영 3단계계획을 성취할 수 없는 위기의 끝에 가닿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에 걱정을 크게 했습니다.

그래서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3당과 여러차례 대화를 했습니다. 처음에 4당이 대연정 또는 대통합을 해서, 극우·급진·질이 좋지 못한 정치세력을 제외하고 중도민족민주 역량을 종합해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또 우리는 평민과의 연정이나 합당을 생각했고 그것이 안되면, 민주당과의 합당을 생각했습니다. 공화당은 평민 또는 민주당과 합당하면 최소한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공안정국이 몰아쳐, 형편이 대단히 어려워졌습니다. 평민당과의 대화채널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게 됐고, 저는 난도질당했지요. 그래서 일부에서 공화당, 민주당과의 통합논의가 제기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평민당과의 통합을 모색하는 것이 국민화합과 역사발전에 유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이 金元基평민당총무와 몇차례 티타임을 갖긴 했지만….

● 3당통합의 배경은?

김총무와는 , 그러니까 새해들어 金大中총재와의 청와대 개별영수회담이 있기 이틀 전인 1월9일 만났습니다. 연락을 하려 하니까 만나자고 전화가 왔더군요. 이 자리에서 1월 11일로 예정되어 있던 노태우·김대중회담의 중요성과 역사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정계개편과 관련해 대통령의 최종결단의 시기임을 강조했습니다.

나는 4당통합을 이야기했고, 평민과의 연정도 생각해보았으나 안되면 민주당과의 합당을 고려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합당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 확정된 것은 없었고, 있었다 해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없었지요. 그런데 김총무는 4당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고, 더욱이 민정당과 평민당은 노선이 다르고 光州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어 연정이나 통합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어요. 자르다시피 말씀하시더군요.

(이 부분에 대해 김총무는 민정·평민의 연정이나 통합은 光州문제가 매듭되지 않았고 지방의회도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기적으로 이르다며, 이런 문제가 해결된 뒤 영호남 통합차원에서 논의하자고 이야기했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는 다시 한번, 중요한 결단기이기 때문에 김대중총재에게 이야기해 회담에 임하기를 부탁했습니다. 노대통령에게는 김대중총재에게 다시 제의해보시라고 건의했습니다.

몇몇 청와대 핵심들은 반대하더군요. 노대통령은 김대중총재와의 회동때 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거부해 운만 뗀 단계에서 대화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합디다. 절대로 우리가 평민당을 소외시킨 것은 아닙니다.

● 평민당과 호남지역의 반발을 어떻게….

지역반발·지역감정을 평민=호남이라는 등식으로 보는 것은 무리이고, 이제 해소될 수 있는 틀이 마련됐다고 봅니다. 지금 당장에는 반발이 있을 것이라 이해하지만, 인사·지역개발에도 정부여당에서 특별한 신경을 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봉책이고, 기본적으로는 호남지역하고 하나로 화해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 앞으로의 정국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이번 3당통합은 장기적으로 보아 정국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입니다. 앞으로 총선·대전 시기를 전후해서 변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면해서는 호남에 좌절과 아픔을 주지 않았나 생각되지만, 4색의 지역당으로 분열되어 있던 것을 우선 3색이 한가지 색깔로 통합되는 발전과정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 大權에 도전할는지?

통합과정에 어떤 밀약도 없습니다. 앞으로는 밀약이나 각본에 의해 정치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든 안된다는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누구이든 미래에 대한 비전과 그것을 집행·경영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 국민에게 신망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자질을 가진다면 金泳三씨라고 배제될 수 없고, 누구도 국가통치권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저도 그런 분을 도와서 가능한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 민자당의 진로는?

민자당의 노선은 안정과 개혁을 동시에 요구하는 국민의 뜻을 만족시켜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민주당이 있어서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폭이 크고, 진통도 있을 것입니다. 진통을 피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데올로기문제는 지나간 문제입니다. 전통적인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려야 합니다. 노선은 중도개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의 북방정책은?

제가 할 일은 민족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전바위 세계외교라 할 수 있는 소련·중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완결짓고, 그 여세를 몰아 남북간 정상회담에 귀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남북문제 해결의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이 세가지가 병렬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서를 든다면 소련·중국·남북한의 순으로 진행될 것 같은데…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 또 당시 북방정책을 추진했던 한 사람으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북한에서 쌀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보내주는 것도 고려될 수 있을 법한데.

북쪽은 현재 아주 경색되어 있고, 가장 큰 문제는 경제난입니다. 그런 것들은 북쪽의 위신을 손상시키지 않는 가운데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강산 공동개발도 언론에서 박살을 내 중단됐습니다. 다시 진행시킬 계획입니다. 금강산을 경제특구로 지정해서 남북간에 왕래를 하고, 북쪽지역에서는 달러화를 쓰도록 하면 그들은 외채 어려움을 더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북쪽에 우리를 이해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고요. 그런데 이런 일들은 보안이 유지되는 가운데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북쪽에는 대화파가 미미합니다. 언론에 보도되면 강경파가 득세해 결과적으로 반통일로 가게 되는 것이지요.

● 박장관은 大權에 욕심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최근 西部硏이라는 월계수회 산하단체의 모임에서 이재황의원이 했던 발언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인상이 짙은데….

제가 세를 키운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재황의원의 발언 때문에 오해가 생겼지요. 사실 그런 모임은 그동안 수백번 했습니다. 요즘에는 오히려 수그러졌습니다. 연말이면 핵심인사들이 단체별로 모여왔는데 그때는 언론에서 눈여겨보지 않다가 요즘 보도를 하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88년 8월 이후부터는 모임을 공개적으로 해왔습니다. 그때는 기자들이 못봤겠지요.

또 이 의원이 그 자리에서 “국민적 단체로 정치를 감시하고…”라고 표현을 했다는데, 뒤에 알아보니 그 뜻은 유권자로서 정치인들을 지켜보자는 것이었답니다.

● 내각제 개헌은 기정사실처럼 되어가는데 내각제로 개헌한다면 어떤 골격을 구상하고 있습니까?

사견입니다만, 순수 내각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헌 시기는 국민 대다수가 원할 때가 될 것입니다. 기대하고 노력하지만 1백% 장담은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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