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치료받을 권리 있다”
  • 우정제 기자 ()
  • 승인 199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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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益煥목사 병원치료 실현위원회, NCC 등과 손잡고 ‘재소자 진료권 쟁취운동’ 전개

정밀건강진단을 위해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던 문익환(72)목사가 법원의 감정유치기간 만료일인 24일 안양교도소에 재수감됐다. 교도소측의 ‘입원 필요’ 진단 후 55일만에 어렵게 이뤄진 이번 검사 결과 문목사는 허혈성 심질환 이외에도 척추 및 갑상선 이상과 신장 결석 등의 병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수형생활을 계속해낼 수 있을지 가족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23일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문목사의 장남 문호근(43)씨는 문목사의 척추 이상이 수술을 요하는 중증이며 노쇠한 체력이 수술을 감당키 힘든 상태라고 담당의(순환기내과 이영우박사)의 소견을 전했다. 문목사는 현재 입원전의 부종은 많이 가라앉았으나 척추의 통증으로 기동이 매우 불편한 상태. 반듯이 눕기도 힘들도 부축없이는 5분도 서있지 못할 만큼 심한 허약증세를 보이고 있다. 자세한 병세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으나 1월말 담당의의 종합소견이 재판부(서울고법 형사5부ㆍ재판장 안문태 부장판사)에 통고된 뒤 구속집행정지 여부가 결정된다.

 “그동안 심전도측정기 이외에는 아무런 의료시설이 없는 곳에서(그것도 때로는 고장이 나  있더군요) 이뇨제로 부기를 가라앉혀왔습니다. 병명도 모르고 약을 투여한다는 게 가장 불안했었지요.…저희들의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진 않았지만 최고의료진에게 정확한 병의 원인들을 확인한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문호근씨는 지난번 50여일간의 가족농성 기간중 “엄청난 격려를 보내준 국민들”에게 그 감사를 돌린다. 지난해 12월 이래 각계인사 2백55명으로 구성된 ‘문목사 병원치료 실현을 위한 위원회’(공동대표 계훈제씨, 박형규목사, 문정현신부, 김진균교수)가 발족되어 열성적인 활동을 폈고 1천여명의 시민이 농성장을 찾았다. 또한 일반인 6천명, 목회자 2천명, 의료인 1백3명이 문목사의 병원치료를 탄원하는 서명에 참여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저희 가족은 재소자들의 진료권 확보가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그가 죄인이든 아니든 신속하게 치료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치료를 지연시키는 모든 구차스런 절차는 그 어떤 것이든 인권침해입니다.”

 그동안 병원치료를 요구하는 가족, 변호인 단측과 법원, 교도소, 병원측간에 오간 서류 왕래는 무려 12차례. 혹 ‘돌이킬 수 없는’ 병이 아닐까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던 가족들은 이제 문목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재소자 전체의 인권문제로 새로이 운동을 펴나가겠다고 한다.

 이런 취지에서 ‘문목사 병원치료 실현을 위한 위원회’는 지난 17일 ‘재소자 진료권 쟁취 대책위’를 구성, 재소자들의 진료권확보운동을 본격 전개하기로 했다. 이들은 취지문을 통해 “재소중 질병이 있어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오히려 꾀병으로 간주돼 구타당하거나 악화된 뒤에야 풀려나는 등 재소자의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돼 있지 않은 게 우리 교도소의 현실”이라며 교도소내 환자들의 진료를 제한하는 법적ㆍ제도적 모순을 해결하는 사업을 벌이겠다고 밝힌다. 대책위는 현재 실무진 구성의 준비단계에 있으며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인권위원회 및 민가협 등의 단체와 더불어 이 운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교도관의 진단ㆍ투약 관례화된 실정  

NCC인권위은 재소자 의료실태에 관한 기초자료가 전무한 우리 현실에서 가장 시급한 1차 조사사업으로 전국의 교도소를 방문할 예정이다. 그 시기는 1월말내지 2월초쯤으로 잡고 있는데 NCC인권위원 이우정씨는 출발부터 불어닥친 정계개편의 풍랑으로 요즘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놓는다.

 “여소야대의 정국 속에서 그나마 이런 모든 구상이 이루어졌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거대여당’으로 바뀌고 보니 앞으로 인권운동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눈초리가얼마나 더 차가워질지….”

 그는 인권운동하는 이들을 ‘찬밥’으로 모는 냉랭한 현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재소자에 대한 치료행위의 지연, 혹은 박탈은 생명권의 침해요 준살인행위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교도관의 진단과 투약이 관례화되어 있는 빈약한 교도소내 의료실태에 비추어 이들의 운동이 취지 그대로 “교도행정을 돕는 차원에서” 전개될 수 있도록 해야만 결실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보인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국의 긍정적 이해와 외적 여건조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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