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정치활동 억압되고 있다”
  • 김당 기자 ()
  • 승인 199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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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면위, 한국 인권상황 개선 촉구… 정부는 “양심수 한명도 없다” 반박

 “새해 들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편지를 받을 사람은 노태우 대통령일 것입니다.”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정초부터 한국정부에 ‘공개 도전장’을 띄운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한 관계자가 한 이 말은 한국 인권문제에 관해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의 보충설명에 따르면 ‘사면위’에서는 특정국가의 인권상황이 심각하게 나빠졌다고 판단되면 몇달 동안 집중적으로 그 나라의 인권문제를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이른바 ‘단기 캠페인’을 벌이는데 그 주된 방법은 언론매체를 이용한 홍보와 편지쓰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올해 들어 첫 단기 캠페인 대상국으로 지정된 만큼 캠페인기간(1월17일부터 4월15일까지) 동안에 전세계 70만 회원들이 열명에 한명꼴로 항의편지를 보낸다 해도 7만통은 족히 된다는 말이다. 물론 그중 일부는 인권 주무 부처인 법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의 책임자 몫이겠지만 그 대다수가 盧泰愚 대통령 앞으로 부쳐질 것이 뻔한 일이고 보면 연초에 받았을 연하장보다 훨씬 더 많은, 정중한 항의와 탄원을 담은 항공우편을 무더기로 받게 된다는 뜻이다.

 청와대에 항의편지나 탄원서가 얼마나 답지했는지를 모를 일이다. 사실 정부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편지보다 언론매체를 이용한 사면위의 홍보전에 대해서인 듯하다. 사면위에서 ‘한국: 억압과 고문으로 복귀?’라는 제목의 인권보고서와 함께 한국캠페인에 관한 보도자료를 지난 1월17일에 발표하자 외무부에서는 그 이틀 뒤에 반박논평을 낼 만큼 발빠르게 대응했다. 그 뒤로 1월25일에는 법무부에서도 외무부 논평과 거의 똑같은 논평을 냈다. 그러나 같은 날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그림 때문에 감옥이라니…’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한국에서 노태우 대통령 집권 초기의 ‘관용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으며 공안통치가 부활하고 있다고 보도하여 정부 반박논평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사면위가 한국을 캠페인 대상국으로 지정한 까닭은 보고서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지난 해 인권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한국이 억압과 고문으로 복귀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대량 검거사태와 새로운 고문사례는 지난 2년 동안 인권보호면에서 이루어진 진전을 역전시켰다는 것이다. 비슷한 주장은 앰네스티사무국에서 전세계 회원들에게 보낸 한국캠페인 ‘행동지침서’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8월까지 정치범 구속자 8백명 넘어” 

 “노태우 대통령은 88년 2월 자신의 취임식에서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를 구실삼아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등한시되던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강압과 밀실 안에서의 고문이 묵인 되던 날들도 이젠 지나갔습니다’라고 인권 개선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선언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89년 4월 이래로 노동운동이나 남북통일운동 등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평화적 정치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부정해왔다. 이와 같은 정치상황 때문에 수백명이 체포되었으며 지난해 8월까지 구속된 정치범수는 8백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곧 사면위에서는 ‘강압과 밀실 안에서의 고문이 묵인되던 날들’이 말로만 지나갔을 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면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본래 전두환 전대통령의 4ㆍ13 호헌담화 발표로 한창 구속자가 양산되던 87년에 한국캠페인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주최측에서 이른바 ‘민주대헌장’으로 일컫는 6ㆍ29선언으로 그 계획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뒤로 시국사범에 대한 사면과 석방조처로 인권상황이 개선되는 조짐이 보이긴 했으나 6공 들어 특히 지난해에만도 시국 및 공안사건 관련 구속자수가 1천명을 넘고, 그 상당수가 “간첩으로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장기수 2백명쯤이 여전히 풀려나질 않자 미루었던 캠페인을 재개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국제사면위 인권보고서에 대한 논평’을 통해 이는 “일부 사실이 잘못 인용되거나 한국의 실정법을 무시한 주장내지 권고”라고 밝히고 있다. 논평에 따르면 88년 새 정부 출범 뒤로 급속한 민주화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좌익폭력세력이 대두,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사태가 계속 발생함으로써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와 국민전체 권익보호를 위해 이같은 세력에 대해 법을 단호히 집행한 것을 두고 이를 민주화 후퇴나 인권상황의 역전으로 보는 사면위의 시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논평은 또 “이른바 양심수라는 개념의 죄수는 한국에 없으며 오히려 이들은 단지 국가존망에 위해를 가하고 실정법을 위반함으로써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자들 뿐”인데 “이들을 양심수로 일방 규정, 석방을 요구하는 것은 이와 같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주장”이라고 밝혔다. 논평은 또 고문 및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이는 일방적이고 때로는 악의적인 어느 한편의 주장을 충분한 검증없이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국언론들은 한국정부에 비우호적이되 사면위 주장에는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르 몽드〉지는 노대통령 집권 이후 2천명 이상이 공안사범으로 구속되었다고 전하면서 법무부 통계를 인용, 지난 86년중 5백41명에 이르던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자수가 88년에는 1백31명으로 크게 줄었으나 89년 들어 1월부터 9월중에만 2백36명으로 급증했다면서 한국에 공안통치가 부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사면위 보고서와 한국정부 논평에서 시비의 초점인 양심수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에 비롯된 논란거리가 아니다. 지난 86년 6월에도 그때 사면위에서 발행한 ‘한국 : 인권상황’이란 보고서와 관련, 당시 정해창 법무부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의 실정법 예컨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은 양심수가 아니라고 못박은 바 있다.

국가보안법보다 세계인권선언이 우선

 그 뒤로도 정부는 줄곧 ‘한국 교도소에 실정법을 위반한 범법자는 많아도 양심수는 한명도 없다’는 논리를 고수해 오고 있다. 그러나 사면위에서는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규약(A-B협약)에 위배되는 구속으로 인해 감옥에 갇힌 사람은 모두 양심수로 간주하고 있다. 앰네스티 대구 그룹 회원인 조효제(31)씨에 따르면 앰네스티에서도 국내 실정법을 원칙적으로는 인정하지만 보안법 같은 실정법이 세계인권선언이나 국제인권규약에 모순되는 경우, 국제적 인권규범을 당연히 우선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앰네스티에서 규정한 양심수란 자신의 신념, 피부색, 인종, 성별, 종교 때문에 투옥되어 있는 사람으로서 폭력을 사용하거나 옹호ㆍ지지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미 국제인권규약에 가입키로 하고 국회에 가입동의안을 제출한 정부에서 그런 ‘양심수가 한명도 없다’고 고집한다면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뿐이라는 말이다.

 장기수 문제에 대한 양쪽의 시간차도 양심수에 대한 양쪽의 개념 규정의 차이와 다를 바 없다. 사면위에서는 대체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산하의 장기수가족협의회(회장 서준식)에서 규정한 장기수 개념과 비숫하게 보고 있다. 곧 장기수를 7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은 양심소로 규정하는데 그 근거는 국가보안법에서 간첩죄에 대해 7년 이상 무기 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수가족협의회에서는 20년 이상 40년 가까이 수형중인 양심수의 경우, 이를 특히 초장기수라고 부른다.) 앰네스티에서는 장기 수형중인 정치범들의 실태를 특별히 조사하기 위해 조사반을 한국에 여러 차례 파견한 바 있는데 이들 조사반은 정부간행 백서 등 자료를 토대로 하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에서 펴내는 인권자료집,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의 인권보고서, 장기수가족협의회에서 모은 간첩사건조작증언자료집, 기타 인권단체들이 조사한 사례집 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견주어 정부에서는 공안사범 특히 ‘간첩’의 경우, 그 정확한 통계수치를 한번도 제대로 밝힌 적이 없다.

 그 스스로 앰네스티가 선정한 장기 수형 양심수였다가 풀려난 뒤로 장기수 석방을 위해 일하고 있는 장기수가족협의회 서준식 회장은 “앰네스티의 주장이나 권고는 곧 우리들의 주장이나 요구와 다를 바 없다”면서 “정부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해결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장기수 문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거대여당 3ㆍ1절 특사에 기대  

서준식씨를 비롯한 대다수 장기수 가족들은 이번 3당의 합당을 ‘보수 대야합’이라고 규정짓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신당이 3ㆍ1절에 풀 ‘보따리’에 기대를 걸고 있다. 물론 앰네스티에서도 그 보따리의 크기에 따라 대응전략을 바꿀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른바 국민화합의 차원에서 민가협 같은 ‘우는 아이한테 물리는 떡’으로 예상보다 훨씬 더 화끈한 대사면을 ‘한다면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결과도 예상치 않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보수 대야합’이란 한통속으로 뭉친 만큼 사면위 보고서의 제목처럼 우는 아이한테 재갈을 물리는 상황으로 복귀할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앰네스티의 도전장으로 비롯된 이번 인권 공방전의 결과는 ‘가지치기’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때아닌 엄동설한에 ‘접붙이기’를 시도한 6공이란 구새통이 꽃샘추위를 어찌 넘기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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