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남자세상 강간으로부터 도피는 험한길
  • 워싱턴·이석열 특파원 도쿄·채명석 객원편집위원 파 ()
  • 승인 1991.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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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25% 일생에 한번은 ‘끈직한 일’당해 일본, 청소년 성폭행 흉포화…프랑스 1년에 3만5천건

미국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발표한 범죄백서를 보면 89년에 미국 전국에서 9만4천5백4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돼 있다. 이것은 그전해에 비해 2.2% 늘어난 것이고, 80년보다 14% 증가한 것이다.

 폭력범죄인 강간은 강도사건 다음으로 가장 흔한 신체상해 범죄로 꼽히고 있는데, 체포된 범인의 나이를 보면 25?44세가 49.5%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18?24세로 29%, 18세이하는 19.3%이다.

 이러한 숫자는 강간을 당한 피해자의 경찰신고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가운데 신고를 한는 사람은 10명에 1명꼴밖에 되지 않고 범인 체포는 5%에 이르는 한심한 실정이라고 말한다. 미국인 여성 4명 중 1명이 일생에 한번은 강간을 당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대부분 강간은 피해자와 낯이 익은 남자가 저지르고, 생면부지의 지나가는 남자가 범인인 경우는 극히 드문 일로 알려져 있다. ‘아는 처지 강간’ 또는 ‘데이트 강간’으로 불리기 때문에 막상 강간인지 화간인지를 가려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여권운동가들은 어떤 형태든지 강제된 성행위는 모두 강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모든 억압은 곧 강간이라고 들고 나오는 극단론자들도 있다. 이들은 부부 사이에도 강간이 생기고 있는데, 꼭 폭력을 쓴다기보다 심리적 압력을 가해 생기는 일이 많다고 주장한다.

 한편 다민족 사회인 미국의 경우 성범죄는 인종주의와 같은 관계에 있다. 흑인이 백인 여성을 강간했을 때는 여지없이 처벌을 받는다.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남부지방에서는 백인 여자를 욕보인 흑인은 동네 사람들이 집단 폭행해서 목매달아 죽였다.

 강간에 대한 논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강간은 문제를 삼는 쪽과 삼지 않는 쪽으로 나뉜다. 서구역사에서 강간이 처벌대상이 된 경우는 처녀를 욕보였을때다. 처녀는 재산목록의 하나로 간주돼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강간범은 처녀 아버지에게 보상금을 지불하게 돼 있다.

 영미법은 강간을 방화범이나 강도 수준의 중형으로 다루고 있다. 강간범으로 죄가 확정되면 주마다 다르지만 대개 7년 이상 복역을 하게 된다.
 여권신장을 위한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미국 종교단체들과 사회단체들이 성폭행 희생자를 돕는 사업으로 도시마다 강간구조전화를 놓고 신고를 받아 법률상담을 해주고 있다. 수많은 민권단체들이 무료 법률상담과 변호를 맡아 해주기도 한다.

일본

 재작년 봄 일본에서는 이른바 ‘여고생 콘크리트 드럼통 살인사건’이 일어나 세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 범인은 살해된 여고생과 같은 또래인 10대 후반의 중상류층 자제들. 귀가하는 여고생을 납채해 자택2층의 아지트에 한달여를 가둬놓고 성폭행은 물론 피골이 상접해진 정도로 갖은 폭력을 가했다. 이 여고 3년생이 기진백진한 끝에 숨을 거두자 범인들은 시체를 드럼통에 집어넣고 콘크리트를 부어넣은 다음, 쓰레기 집적장에 내다버렸다.

 일본의 성폭행건수는 연간 약 1천8백건. 50년대부터 늘어나기 시작하던 강간건수가 65년 7천건을 최고치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일본변호사협회의 쓰노다유키코 변호사의 주장은 조금 다르다. 경찰에 신고된 성폭행건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 실제 발생건수는 엄청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쓰노다 변호사는 경찰이 인지한 성폭행건수가 적은 이유를 “일본의 그릇된 사회통념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강간의 책임이 1차적으로 피해자에게 있다고 보는 사회적 시각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또 미국 등과는 달리 신고기관이 잘 정비돼 있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신고를 꺼리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성폭행 범죄를 담당하는 곳은 각 경찰서의 형사과. 이것은 주고 흉악범이나 강력범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여성피해자의 발길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쓰노다 변호사는 미국 브라질 등과 같이 강간피해를 전담하는 여성 경찰을 이곳에 중점 배치하면 경찰의 강간인지 건수는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본다.

 이러한 사회통념은 성폭행범에 대한 사법적 제재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윤간 등 단순강간의 경우 2?15년형을 선고할수 있도록 돼 있으나 실제 판결결과를 보면 대개 2?3년형에 그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이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쓰노다 변호사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1대1일 때 적용되는 이른바 친고죄의 경우 사건 이후 6개월 이내에 고소하도록 돼 있는 법규정도 피해신고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여성민간단체가 도쿄 오사카에 강간구원센터를 연 것은 8년 전. 일본변호사협회 여성권리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센터의 전화상담 집계에 따르면, 성폭행을 당한 장소가 옥외보다는 옥내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낯선 상대보다는 안면이 있는 상대로부터 성폭행을 입은 경우가 많다. 이같은 결과는 조직폭력단에 의한 성범죄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는 일본경찰의 발표와도 부합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문제롤 둘러싸고 요즈음 일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는 오히려 직장에서의 성적 희롱문제이다. 한 여성단체가 1만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여성 10명 중 9명이 남성동료가 “엉덩이나 젖가슴을 만지는” 성적 희롱을 경험했다고 밝히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미국의 고용기회균등위원회(EEOC)와 같은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직장에서의 성적 희롱이 예삿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최근 이 성적 희롱을 방지하기 위한 법제정을 가이후 총이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은 인구 10만명당 성폭행 건수가 외견상 1.5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앞서말한 여고생 살해사건과 같이 청소년 성범죄의 흉악화가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

 프랑스에서도 성폭행은 만만치 않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1년에 신고되는 건수는 3천7백여건. 그중 경찰이 피의자 신문까지 하게 된 경우는 약 2천5백건. 그러나 경찰은 이것을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있으며, 성폭행 피해자들의 88%는 신고를 회피한다고 한다. 따라서 1년에 무려 3만5천건의 성폭행 사건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에디트 크레송 총리가 몇해전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남성들이 더러 난봉을 피워도 사회적으로 매장되지 않는 것이 프랑스의 풍토이다. 남녀간의 애정관계가 비교적 자유로울수록 성폭행 사건이 줄어들 법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신고건수 기준으로 볼 때, 70년대에는 1천건대이던 것이 80년대에는 2천건대로 접어들었으며, 88년에는 3천7백여건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여권운동단체들은 포르노 간행물 단속 등을 요구하며 가끔 항의시위를 벌인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주택에 침입한 강도들이 집단 성폭행을 하는 사례는 볼수 없다.

 여권운동단체들은 평범한 남성들이 성폭행을 자행하는 사례를 특히 규탄한다. “여성을 착취와 지배의 대상으로 삼는 남성 우위사회”가 그러한 범법자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반 시민의 무기력하고 냉담한 태도도 여권단체의 항의 대상이다. 지난 몇해 사이에 지하철 안에서 혹은 대로상에서 범행이 저질러졌는데도 목격자들이 본체만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은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권단체는 성폭행에 관한 비디오를 만들어 상영하기도 했으며, 피해자들이 익명으로 상담을 요청할 수 있는 수신인 지불 전화도 운용하고 있다.

 성폭행범에 대한 형량은 80년 12월 형법개정으로 늘어나 5년 내지 10년으로 되었다. 죄질이 나쁠 때는 형량이 10년 내지 20년으로 올라갈 수 있다. 15세 미만의 미성년이 피해자일때, 가해자가 보호자 입장에있을때, 집단 범행의 경우 등에는 무기징역이 선고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피해 여성들이 법 절차를 피하는 것이 문제다. 여성들은 재판과정에서 가해자와 대면하게 될 일, 가해자와 변호인에게 도리어 죄인 취급을 당할 일등이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재판에서는 흔히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다, 즉 강간이 아니라 화간이었다는 주장이 쟁점이 되는데 1960년 4월 “강요에 의한 동의는 강치가 없다”는 판례가 나왔다.

 영국에서는 13세기 후반에 약 10년간 성폭행이 경범죄로 취급된 적이 있었을 뿐 내내 중죄로 취급돼왔다. 16세기 후반에 형량이 늘어났으며, 1861년부터는 최고형으로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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