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80년대의 불복종 그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0.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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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빙벽》의 작가 高元政씨

 “열정은 결코 저축해둘 수 없는 것이다.”《현대문학》 올 1월호 ‘나의 새해설계’란에 작가 高元政(35)씨는 위와 같이 적어놓았다. 최근 대하소설《빙벽》(전10권) 가운데 제2부  5권을 펴낸 그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으로 팽팽해 보였다. 사무실 전용빌딩 한칸을 세낸 그의 ‘집필실’책상에는 며칠전에 나온 그의 새 창작집《칼 한자루의 사상》이 놓여 있었다.


 그가 매일 글을 쓰는 일은 정말 노동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는 어느 사석에서 자신을 ‘저술노동가’로 표현했었다. 서울 구로동 공구상가 근처에 있는, 그의 집필실 유리창앞에 서면, ‘여러분들이 잠든 밤에도 연구실은 불이 켜 있다’는 광고로 낯익은 제약회사가 바로  코앞에 보인다. 그 제약회사의 광고 카피는 우리 시대의 권력과 정치 상황을 알레고리라는  독특한 기법으로 해부해보이는 고원정의 문학세계를 문득 연상시킨다. 개인(진실)이 잠든 밤에도 전체주의(권력 · 정치)는 결코 잠들지 않고 작용한다는 비유는 지나친 것일까.

 “《빙벽》은 한국사회, 특히 80년대를 짓눌러온 모든 체제에 대한 절망과 회의 그리고 분노와 불복종의 기록입니다. 전체주의의 급류에 휩쓸려간 숱한 작은 작은 영혼들에게 이 글을 바치고자 합니다.” 《빙벽》은 80년대 신군부가 권력으로 탈바꿈하는 바로 그 시기의  군대내부를 소설의 주요무대로 설정하고, 철저한 개인주의자인 현철기소위와 허무주의자 박지섭 두 인물이 군사문화로 대표되는 권위주의에 정면으로 맞선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거대한 권위와 체제에 무참하게 무너진다. 그 무너짐을 통해 작가는 개인의 완벽한 자유가 가장  높은 진실임을 보여준다.

 제주도의 한 가족사가 80년대 초반의 군대와 오버랩되는 《빙벽》은 빠른 장면 전환과 속도감 있는 문체로 인해 ‘영화적으로’읽힌다. 그의 속도감 있는 문체는 독자들을 소설속으로 끌어들여 꼼짝못하게 하는 대신, 소설의 구석구석을 천착하는 책읽기의 묘미를 빼앗아 간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작가는 “문체의 단점을 고치는 것보다 장점을 살려나갈 생각”이라고 말한다.

 <憂國> 연작 10편을 묶어 최근에 펴낸 그의 소설 《칼 한자루의 사상》은 전체주의와 개인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드러내면서, 권력의 추함과 개인 · 인간이 우선해야 한다는 테마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빙벽》과 공통점을 갖지만, 《빙벽》에 비해 《칼 한자루의 사상》은  고도의 상징적인 장치를 펼쳐보인다는 점에서 다르다. 앞으로 2권 정도의 분량으로 계속 써나갈 <憂國> 연작은 “정치권뿐 아니라 우리들 개개인들이 수시로 얽매이는 대의명분, 정치지향성에 대한 비판적 야유”이다.

 그는 매일 아침 9시에 집필실로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한다. 그의 ‘엄청난 저술노동량’을 염려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는 “쓰고 있는 순간에만 내 영혼은 거칠 것 없이 자유롭다”라고 말한다. 작가 고원정씨는 1955년 제주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 소설의 침체기였던 80년대를 극복하고 90년대의 한국문학을 이끌어 갈 대형작가 가운데 한사람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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