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꿰뚫어 만나는 두 ‘응어리’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4.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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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5월광장 어머니들’ 한국에…‘인권’ 되새기는 계기 될 듯

지구촌에서 우리나라의 정반대편에 자리한 나라는 남미의 아르헨티나이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나라 현대사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흥미롭게도 닮은 점이 무척 많다. 잦은 군부 쿠데타와 군사 통치 기간에 빚어진 인권 유린의 아픈 역사, 숱한 어려움 끝에 국민적 열망으로 얻어낸 민선 정부 등은 두 나라가 60~90년대를 헤쳐온 닮은꼴 역사를 상징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양국 민선 정부 모두 개혁 정치와 경제 선진화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지난해 8월 한국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뒤 약속이나 한 듯 아르헨티나도 한달 뒤에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두 나라의 ‘닮은꼴 행진’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군부 통치 기간에 빚어진 갖가지 인권 유린의 피해자들이 철저한 과거 청산을 부르짖으며 멍든 가슴을 쓰다듬고 있는 점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런 점 때문에 두 나라는 지금도 국제인권단체들로부터 공통된 관심 대상이다.

 그 아르헨티나가 이번에 ‘인권’이라는 틀로 한국과 만나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피해자 인권단체이자 국제적으로 인권문제의 상징으로까지 불리는 ‘5월광장 어머니회’가 오는 6월7일 열흘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한다. 박형규 목사, 김승훈 신부, 조계종 탄성 총무원장, 홍성우 변호사를 공동대표로 한 각계 인사 3백여 명의 초청에 따른 것이다.

지금도 매주 목요일 모여 침묵 시위
 아르헨티나 5월광장 어머니회는 80년대부터 국제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피해자 인권단체로 인식되어 왔지만, 이번 이들의 한국방문은 그 극적인 의미 때문에 새롭게 국내외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한국 방문기간에 군사정권 시절 자식을 잃거나 감옥에 보냈던 비슷한 처지의 한국 어머니들과 만나 국경을 초월한 ‘어머니의 고통’을 나눌 계획이기 때문이다. 민가협 · 유가협(유가족협의회), 5 · 18광주항쟁유족회 등에 소속된 어머니들은 요즘 아르헨티나 5월광장 어머니들을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5월광장 어머니회는 그 국제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낯설다. 워낙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일이기도 했거니와 그동안 우리 내부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한 마당에 다른 나라의 그것에까지 눈 돌릴 여유가 없는 탓이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74년부터 이른바 ‘더러운 전쟁’을 치렀다. 더러운 전쟁이란, 아르헨티나 군부가 저지른 대대적인 반정부 세력 소탕작전에 국제 사회가 붙인 이름이다. 비델라 장군을 대통령으로 한 아르헨티나 군부는 이 기간에 가공할 수법으로 반정부 세력을 탄압했다. 그 결과 정부 공식 통계로만도 83년까지 약 9천명이 실종되고 2천명이 비밀 매장되거나 수장된 시체로 발견됐다. 민간 차원의 조사로는 실종자가 3만명을 웃돌았다.

 이처럼 잔혹한 인권 유린이 한창이던 77년 4월 실종된 자식과 며느리, 손자 들을 찾아 헤매던 어머니 14명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독립 기념 장소 5월광장에 처음 모였다. 엄혹한 군부의 공포 정치가 자기네의 만행에 관해 국민의 눈 · 귀 · 입을 완전히 봉해버린 때였다. 실종자 어머니 14명은 5월광장에 나타난 이후 몇 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말없이 광장을 도는 일을 매일 되풀이했다. 5명 이상이 모이면 거리 곳곳에 배치된 군이 강제 해산했기 때문이다. 연일 계속된 어머니들의 침묵 행진을 두고 당시 아르헨티나 군부는 언론에 그들을 미친 여자로 취급하라는 보도 지침을 내렸다.

 자식을 빼앗긴 어머니들의 한은 차츰 용기로 변했고, 얼마후 이들은 자식들이 실종 전에 입었던 흰옷에 자식 이름을 쓰고 머리에 둘렀다. 이렇게 되자 당황한 군부가 이들 중 일부를 납치하는 바람에 어머니들 가운데도 실종자가 생겨났다. 그러나 진실을 알리고 자식을 찾기 위한 어머니들의 몸부림은 꺾일 줄 몰랐다. 이들은 자식들 이름에 덧붙여 실종된 어머니들 이름까지 같이 써서 머리에 둘렀고, 실종자가 늘어남에 따라 원을 도는 어머니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 전국적으로 8천여 명에 달했다. 이들의 용기는 폭정에 숨죽인 아르헨티나의 양심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 ‘5월광장의 미친 여자들’은 어느새 ‘5월광장의 어머니들’로 바뀌었다.

 가공할 인권 말살과 이에 항거하는 어머니들의 행진 소식은 7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월드컵을 계기로 전세계에 퍼져나갔다. 월드컵 취재차 방문한 한 네덜란드 기자에 의해 5월광장의 ‘이상한’ 행렬이 유럽에 알려졌고, 당시 2위를 차지한 네덜라늗 축구팀은 시상대에서 ‘우리는 살인마가 주는 상을 받을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하는 월드컵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후 국제 여론의 지지를 업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치욕스런 군부 학정을 종식하고 83년 알폰신을 대통령으로 한 민선 정부를 세웠다. 알폰신은 집권후 군부 통치 기간에 자행된 인권 유린 실태를 조사한 뒤 비델라 전 대통령을 포함한 9명을 구속해 종신형을 내렸다. 그러나 군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알폰신 집권 기간에 쿠데타가 세차례나 일어났다. 모두 ‘군의 과거 행위에 보복하지 말라’며 일으킨 쿠데타였다.

 불안한 정정 속에 89년 알폰신 정부는 새로 등장한 메넴에게 정권을 이양했다. 메넴 정부는 대화합이라는 명분으로 과거 인권을 유린한 범죄자도 특별 사면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 유배를 마치고 하산할 즈음인 90년 12월 비델라 등 아르헨티나의 인권 범죄자들도 모두 석방되었다.

두 나라 불행한 과거 어루만지는 자리로
 이에 반발한 5월광장 어머니 회원들은 90년 이후 ‘당신은 과거 우리 자식을을 죽인 고문자와 살인자 들이 어디서 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라는 긴 제목의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3시30분이면 어김없이 5월광장에 나타나는 3천여명의 어머니들 모습은 아르헨티나가 안고 있는 군부 통치의 치유할 수 없는 후유증이다.

 5월광장 어머니회 활동은 세계의 양심에도 일대 경종을 울렸다. 92년에는 유럽의회가 주는 ‘사하로프 양심의 자유상’을 수상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내 광장에 5월광장 어머니 동상이 제막됐으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어머니회를 지원하는 국제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 수많은 국제법 학자들과 인권학자들도 어머니회가 제기한 ‘인권범죄자에 대한 사면의 부당성’을 심각하게 연구 · 검토해 유엔에 보고서를 올렸다. 그 결과 지난해 유엔인권위원회는 ‘인권범죄자 불처벌(impunity)' 이 인권 범죄를 지속 · 반복시키는 핵심적인 문제점이라고 규정하고 주요안건으로 상정하기에 이르렀다. 5월광장 어머니회는 아르헨티나를 뛰어넘어 어느새 세계적인 인권단체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들의 이번 방한은 많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양국이 비슷하게 겪었던 과거 군부통치 기간의 불행한 상처들이 국경을 뛰어넘어 어루만져지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고난받은 양국의 어머니들은 사라진 자식들 이야기, 눈물 없이 살 수 없었던 암울한 시대 이야기, 그리고 인권이 보장되는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다채롭게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과거 청산 문제에 대해 보이고 있는 양국 민선 정부들의 유사한 입장 때문에 극적인 만남이라는 상징성 이상으로 주목받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해 대한변협 공보이사로 있는 박원순 변호사는 “진정한 국제화란 다른 나라에 물건을 많이 파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질과 인간성 보장이라는 인류 공동 관심사에서도 국제적으로 낙오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그들의 방한은 한국 정부의 권력형 인권 범죄 처리 방식이 국제적으로 검토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어쨌든 올 6월은 아르헨티나 5월광장 어머니들을 통해 우리의 해묵은 논란 대상인 과거 청산 문제가 새롭게 반추되는 한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丁喜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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